아Q정전
주인공 아 Q는 이름조차 제대로 없는 가난한 민중으로, 늘 타인의 조롱과 무시 속에 살아간다. 그는 매번 ‘정신 승리’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위로한다. 혁명가로 오해받아 사형에 처해지지만,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이 왜 죽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소설은 아 Q를 아둔하고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하지만, 나는 그 해석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본 아 Q는 어리석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너무 잘 알았던 인물에 가깝다. 그는 현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달관했으며, 그 끝에서 ‘정신 승리’를 선택했다. 아무리 애써도 달라질 것이 없는 세상에서, 정신 승리는 의외로 현실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흔히 조롱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 말은, 어떤 이들에게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본 아 Q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끝까지 버텨낸 강인한 인물이었다.
아 Q가 정신 승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개인적 성격이 아니라, 그가 살던 사회에 있다. 그는 가난했고, 무식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차별받았다. 사회는 아 Q 같은 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했고, 오히려 그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우월함을 확인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아 Q는 점점 고립되었고, 정신 승리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출구였다.
이러한 사회는 아 Q 한 사람만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무기력한 민중은 조롱받았고, 저항하면 억압당했으며, 희망을 말하면 처벌받았다. 지식인들조차 아 Q 같은 존재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중적인 기준 속에서 그는 끝내 외면당했고, 혁명가라는 누명을 쓴 채 죽음에 이른다. 이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구조적 비극에 가깝다.
오늘날의 세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사람이 불공정한 현실 앞에서 체념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아 Q와 다르다. 우리에게는 ‘정신 승리’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 정신 승리는 잠시의 위안일 수는 있지만, 그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하고 바꾸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지만, 그 불공평함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 Q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아 Q가 끝내하지 못했던,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