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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 불어오는 곳 Oct 04. 2020

나는 육아휴직을 독일에서 보냈다 4

2) 마트가 어려워요

처음에는 독일에서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알지 못해 독일에 올 때 한국에서 참치, 스팸 등의 통조림제품과 김, 카레 등의 간편식을 캐리어 가득 가져왔었다. 독일에는 참치나 스팸이 없는 줄 알았다. 마트에 다니다 보니 몇 개월 지나서 이 곳에도 참치와 스팸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무거운 통조림을 항공으로 운반하느라 수하물 무게 많이 나간 것을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웃음이 나온다. 한국에서 수입해서 먹은 것이다. 

 독일의 마트는 조금 세분화되어 있다고 해야 겠다. 한국은 대형마트에 가면 식품, 의류, 생필품, 가전제품까지 모두 한 번에 살수 있기에 한국에서는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했었다. 그런데 독일에는 한국식 대형마트는 없다. 식품점(EDEKA, ALDI, REWE, LIDL 등)과 생필품(MULLER, DM 등), 가전제품 상가 등이 따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편의점도 없기 때문에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마트를 찾아가야 한다. 물론 마트별로 교집합이 되는 품목이 있기는 했다. 식품점에서도 샴퓨나 비누 등은 팔고 생필품점에서도 과자 등은 판매한다. 처음 식품점에 갔을 때는 무엇을 사야할지 몰랐다. 독일어는 번역을 해 봐도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고 모양을 보고 식품을 사기는 하는데 무슨 맛인지 모르고 샀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여러 번 버리기도 했다. 아이들 간식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치즈를 사려 했지만, 한국에서 익히 보던 주황색 체다슬라이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 앞에는 엄청난 종류의 치즈가 놓여 있었는데 무엇이 좋은지 몰라 이것 저것 사보았다. 어떤 것은 냄새가 많이 나고, 어떤 것은 너무 짜고 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다가 입맛에 맞는 치즈를 발견하고 그 후부터는 그것만 사서 먹었다. 남자가 살림을 하려 하니 아는 것이 없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요리를 할 줄 모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팸이라도 먹이려고 한국에서 무겁게 가져왔었는데 마트 구석 어디에 놓여 있었다. 맛을 보니 한국식하고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제법 맛있었다. 그것을 몰라 스팸을 사려고 아시아 마트에 가서 향신료가 들어간 중국식 스팸을 사보기도 했었다. 

 독일에서 6개월 정도 지나면서 식품점은 제법 구조도 알게 되고 먹을 만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인터넷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마트에 주문하는 것도 알게 되어 김치, 쌀, 불고기용 고기 등은 거기서 구입해서 먹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정육점에 가면 냉동고기가 아닌 냉장고기를 판매한다. 삼겹살과 비슷한 베이컨용 돼지고기를 사서 먹어 보니 냉동고기와 냉장고기 맛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냉장고기가 훨씬 맛있고 부드럽고 냄새도 않났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필요한 만큼 사서 당일에 모두 먹도록 했다.

 독일의 빵이 맛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빵은 주식이 아닌 간식이기 때문에 대부분 설탕이 들어가 단맛이 난다. 나는 단팥빵을 좋아해서 아침에 출근 할 때는 단팥빵 하나와 두유를 먹고 출근했었다. 독일에서 빵을 사려 하니 내가 익숙했던 단맛이 있는 빵이 없었다. 그리고 빵집에서는 식빵을 팔지 않았다. 나는 독일빵이 맛이 없었다. 빵은 달아야 한다는 입맛의 선입견이 있어서 본고장의 빵이 맛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서양사람이 우리나라 밥이 맛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곡물빵, 버터프레즐, 크라상 등 맛있는 빵들을 발견했고 그 이후 매주 주말에는 아침을 빵으로 먹었다. 빵가게 아주머니하고도 친해져서 독일어, 영어 섞어가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슈타른베르그역 근처 뮬러 빵집

 빵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상한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생일에는 제과점에 전시된 케익 중 원하는 것을 사서 축하해 주곤 한다. 그런데 독일은 케익 정도로 큰 빵은 미리 주문을 해야 했다. 만들어 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주문이 있을 때만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일 때 종종 학교에 케익이나 머핀을 학급에 보내곤 했다. 그것이 일종의 문화였다. 서양 아주머니들은 그 정도는 집에서 구워서 보냈다. 한 학급이 15명 내외이기 때문에 집에서 머핀을 만들어 보낸다는데 나는 도저히 빵까지는 굽지 못하겠다. 그래서 주변 빵집에서 사서 보내려고 가보면 15개 정도의 양이 없었다. 그래서 몇 군데 빵집을 돌며 같은 모양의 머핀을 수집하여 모아서 보내기도 하고 며칠전 빵집에 미리 주문해서 필요한 날 가지러 가곤 했다. 하여튼 빵의 나라에서 빵을 미리 주문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좀 생소했다. 

 

 3) 요리의 세계에 입문하다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것 밖에 모르던 내가 아이들을 먹여야 하는 상황에 오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국에서는 정신없이 지내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막상 독일에 와 보니 당장 먹는 것 부터가 문제였다. 장모님이 오시기 전 학교에 10개월을 먼저 다녔던 아이들은 집 근처에 사시는 이모님의 도움으로 지냈다.

아빠가 해준 새우볶음밥

이모님은 간호사로 독일에 오셔서 독일분과 결혼하시고 몇 십년 째 이곳에 살고 계셨다. 자식들 모두 훌륭하게 키우시고 독일에서의 어려움을 견뎌내신 분이시다. 한국사람을 도와주신다는 생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맡으셔서 아들 둘을 먼저 돌봐 주셨다. 이모님 이후에 장모님이 3개월 가량 계셨고, 그 뒤에 내가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게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내가 정성을 다해 초라하게(?) 만든 밥을 내 놓았을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다. 

처음에는 그냥 볶음밥 위주로 해 주었는데, 이 녀석들이 제법 잘 먹었다. “그렇지. 내가 제법 요리에 소질이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아들 두 놈의 먹성이 워낙 좋았고, 점심에 나오는 학교 급식의 질이 너무 낮았던 것이다. 배고픈 상태에서 먹으니 무엇이든 맛이 있었던 것이다. 시장을 반찬으로 한 덕에 큰 무리 없이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요사이는 인터넷에 요리에 대한 레시피가 잘 올라와 있다. 이런 것을 주로 참조하여 음식을 만들었고 쉽게 할 수 있는 간편한 요리를 중심으로 식단을 짜서 아이들과 아내에게 공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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