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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이 불어오는 곳 Nov 09. 2020

나는 육아휴직을 독일에서 보냈다 6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아빠의 이야기

6) 해바라기

 여름이 되면 사람들은 햇빛으로 나와 앉는다. 특히 식당에 가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햇빛이 비치는 야외에 앉아 있고 식당 안은 한산하다. 식당 안에는 에어콘이 없어 덥기 때문에 밖에 나가기도 하겠지만, 햇빛이 귀한 곳이 살다보니 유럽사람들은 햇빛에 일광욕 하기를 즐긴다. 그래도 나는 햇빛에 그을리는 것이 싫어 어떻게 해서든지 그늘로 가려고 노력했는데, 이곳에서 겨울을 두 번 지내고 보니 유럽 사람들의 햇빛사랑을 이해하겠다. 뮌헨은 독일의 남쪽지방이지만, 위도는 48도로 서울(37도)보다 11도 북쪽에 있다. 그러다 보니, 겨울에는 오후 4시면 컴컴해지는데, 우울하고 햇빛 없는 겨울을 지내고 나면 햇빛을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평생 여기서 산 사람들은 특히나 그럴 것이다. 운동할 때에도 팔다리 심지어 얼굴까지 막아버리는 한국사람들은 유럽의 이런 스타일이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난 독일 사람 중에는 종종 한국의 아줌마들이 운동할 때 햇빛 가리는 마스크를 쓴다던데 진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한국인의 유별난 햇빛차단은 여기서도 유명한가 본다. 

여름에는 제법 덥고 햇빛이 강하다.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에 있으면 그다지 덥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햇빛에 앉아 있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덥기도 했다. 그런 더위 속에서도 여전히 햇빛을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이지만 너무도 길고 우울한 겨울로 인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철학적인 성격을 띠게 된 것 같다. 


 7) 패스트푸드

한번은 아들 친구를 데리고 아이들과 수영장에 간적이 있었다. 학교 끝나고 가는 길이기에 배 고플 것 같아서 가는 길에 맥도날드나 버거킹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이 아이 왈 “음... 지금까지 패스트푸드는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는데 오늘 한번 먹어보죠.”하는 거다. 남의 집 귀한 아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패스트푸드를 먹일 자신은 없어서, 결국 수영장에서 피자를 사먹었다. 그런데 수영장 피자는 되고, 맥도날드는 안되는 건가? 내가 보면 다 같은 패스트푸드인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맥도날드나 버거킹 같은 곳을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아서 안먹는다 하였는데, 조금만 더 이야기 해 보면 패스트푸드는 저소득층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패스트푸드가 고급은 아니어도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인데, 독일에서는 저소득층이 먹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그래도 우리 식구는 자주 집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식사를 했다. 


8) 줄 설 필요가 없어요

 독일의 인구는 8천만명이고,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배인 357천㎢이다. 한국은 국토의 70%가 사람이 살기 어려운 산악지대이기에 30%에 해당하는 평야지역, 특히 수도권에 2천만명이 몰려 살고 있다. 나는 독일과 한국의 국토 형태 차이가 민족의 성격과 경제발달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유럽평원에 위치한 독일은 16개 자치주의 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살았던 바이에른주에서는“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난 바이에른 사람이예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바이에른 사람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프로이센에 의해 독일이 통일되기 까지 유럽은 작은 나라들의 집합이었다. 각 나라별로 수도가 있었고 지금은 이런 곳들이 독일 각 주의 주도가 되어 있다. 뮌헨 또한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다. 땅은 넓고 평야 지역인데다가 16개 나라의 수도가 따로 있었으니 인구가 분산되어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형태는 지금까지 내려와서 각 주도에 인구가 몰려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서울에 몰려 있는 정도가 아니다. 즉, 인구밀도가 상당히 낮다. 그래서 독일 생활하면서 줄을 서서 무엇인가를 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떤 아이스크림 집에 줄을 10m 정도 서 있길래 궁금해서 그냥 줄서서 먹어 본적은 있었고, 그 이외에는 기억이 없다. 사실 왜 줄 서서 먹어야 하는 집인지 이해가 안됐다. 맛있는 집은 아니었다. 전철을 타도 자리에 앉아 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트램이나 버스에도 거의 항상 자리가 남아 있었다. 어떤 상황을 생각할 때는 인구밀도가 낮다 라는 것을 전제로 생각하면 이해되는 것이 많았다. 

집에서 1시간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스키장에 처음 갔을 때 좀 놀란 것이 있었다. 장비를 빌리고 리프트를 타기 위해 올라 갔는데 줄이 없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때가 크리스마스 무렵이어서 사람이 적은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사람이 없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방문했지만 줄을 서서 타지는 않았다. 내려오면 다시 리프트를 타기위해 1분 정도 기다렸을 뿐이다. 나중에는 힘이 들어 못 타겠다 싶어 2시간 정도 타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리프트 줄이 길어 반나절에 3번 정도 스키를 타면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았던가! 지금도 독일의 스키장을 생각하면 최대한 많이 갈 걸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워터파크에도 사람이 많지 않고, 등산로에도 사람이 없고, 심지어 넓은 천연잔디 축구장이 곳곳에 있을뿐더러 주말에도 비어 있다. 전철의 배치시간 간격도 넓고 버스도 자주 있지 않았다. 서울에서만 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독일의 지형, 역사, 인구분포 등을 종합해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평야가 많지 않은 한국도 지방으로 분산되어 산다면 조금이라도 경쟁이 줄어 들겠지만, 일자리와 교육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의 경쟁은 심화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경쟁의 심화를 해결할 묘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9) 영어의 대표는 영국, 그러나 모두의 것

처음 독일에 와서 전철을 타고 뮌헨시내로 가게 되었다. 독일 전철은 우리나라처럼 개찰구가 있어 검표를 하고 들어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그냥 표를 가지고 탔다가 검표원이 불시에 전철 안에서 검사를 하는 시스템이다. 내가 있던 슈타른베르그역에서는 역무원이 없고 전철 플랫폼에서 기계로 표를 사야 하는 시스템 이었다. 처음 표를 살 때는 당연히 독일어를 몰라서 언어를 영어로 선택하여 구매 했다. 구매를 위해 언어 선택을 할 때는 해당언어의 대표국가 국기를 선택해야 했는데, 왠지 낯선 국기를 선택해야 했다. 영국 국기였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는 미국영어에 익숙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미국을 서양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여기 와서 조금 놀란 것은 영어의 대표를 미국이 아니라 영국으로 표기된다는 것이었다. 주차권 정산기 같은 기계에서도 영어는 영국 국기를 선택해야 했다. 어느 곳에서도 미국국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 유럽에서 언어에서 만큼은 지워져 있는 미국의 영향력에 새삼 ‘영어의 英자가 영국하고 같은 거였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국이 유럽에서는 더 친숙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주차장 요금기계에서 요금을 먼저 내려 하는데 언어선택 하는 기능이 있었다. 한국기와 미국기 두 개가 그려져 있었다. 유럽에서 생각하는 영어는 영국이라는 사실이 새삼 기억이 났다.

 독일에 살면서 영국, 독일, 러시아, 스페인, 북유럽, 동남아, 중국, 일본 등 많은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 발음이 달랐다. 영어를 썩 잘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각자가 이야기하는 영어발음이 상당히 어려웠다. 그나마 미국발음이 내가 알아듣기 가장 편한 발음이었다. 하지만 알게 된 것은 이제 영어는 영국이나 미국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의 언어라는 것이었다. 내가 비록 콩글리시로 이야기 하더라도 일상의 생활에서는 서로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항시 어눌한 발음과 문법 때문에 소심하게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영어에 조금이나마 위안과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세계 각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발음대로 이야기하고 문법에 맞지 않게 이야기 하면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발음에 노력은 하되 우선은 말을 내뱉으면 된다. 각 나라의 형편에 맞게 조금씩 달라져 있는 영어를 들으며 이제 영어는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콩글리시도 영어 중 하나라고 감히 생각한다.


 10) 흡연과 음주운전에 관대한 문화

 독일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흡연과 음주에 관대한 편이었다. 20년 전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는 사무실에서 상사들이 담배를 피우곤 했다. 특히 야근을 하면서는 사무실 전체가 뿌옇게 되도록 담배를 피웠다. 집에 돌아와 보면 피우지 않은 내 몸에서도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무실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한국에서 흡연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흡연을 했다. 흡연율로만 따지면 우리나라는 성인 기준 약30%, 독일은 약26%로 독일이 더 적기는 하지만, 흡연을 하는 사람을 보는 빈도는 독일이 훨씬 많다. 식당이나 거리나 어느 곳에서도 흡연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이 담배를 덜 핀다는 착시현상을 보이게 된다. 물론 식당 내부에서는 피우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식당근처에서는 자제해 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는데 저렇게 피우고 싶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워낙 좋아하기에 식사나 음료로 맥주를 먹곤 한다. 물보다 맥주 가격이 저렴한 경우도 많았다. 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도 맥주 한 두잔을 마시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와 자전거를 몰고 거리로 나갔다. 내가 ‘맥주 드셨는데 운전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면 ‘멀쩡한데요. 전혀 문제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물론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경우도 뮌헨 같은 경우는 큰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때 하는 것을 보았을 뿐 거의 하지 않았다. 나도 2년간 살면서 음주운전 단속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독일은 어디든 각 지역별로 맥주를 팔았다. 뮌헨 같은 경우도 뮌헨 지역의 맥주가 따로 있었고, 호프브로이하우스라는 유명한 맥주집이 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방문해 보았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 맥주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집 근처에는 안덱스수도원이 있었는데, 이 수도원에서 제조한 맥주가 유명했다. 손님들이 오시면 꼭 안덱스 수도원을 방문했었는데 동양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 그 곳에서 동양인을 본 적이 없었다. 독일의 유별난 맥주 사랑은 석회질이 많은 물 때문이라고 했다. 음용하기에는 물이 좋지 않았기에 맥주를 만들어 일종의 정화를 거친 것이다. 독일 물이 좋지 않은 것은 살면서 많이 경험했다. 하루가 지나면 뿌옇게 생기는 물때와 머리를 감을 때마다 수북히 빠지는 머리털을 보며 독일 물에는 석회질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맥주는 독일인의 숙명인 것 같다.  


 11) 집 화장실에 배수구가 없어요 

다른 서구 나라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화장실에도 배수구가 없었다. 처음에는 화장실 바닥에 배수구가 없으니 샤워 이후나 청소를 할 때 바닥에 물을 뿌릴 수 없어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점차 화장실 사용에 익숙해 지면서는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의외로 편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장실에 배수구가 없다보니 욕조에서 샤워를 할 때는 꼭 샤워용 커튼을 치고 샤워를 해야 했다. 가끔 한국에서 손님들이 오시면 평소 습관대로 커튼을 치지 않고 샤워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어 몇 번 고생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화장실을 쓰면서 청소는 편하나 물기가 남게 되는 바닥을 보며 어느 곳이 더 안락한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국에서 쓰는 화장실도 바닥에 물기가 없도록 깨끗이 사용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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