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꽃마리

by 김혜련

꽃마리


김혜련


새벽어둠을 밀봉하여

트레이닝복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

오늘도 나는 동천을 걷는다


그 얼굴 작은 여린 여자는

지난겨울 모진 추위와 싸우느라

살점 하나 없는

실지렁이처럼 삐쩍 말라 있다


외로웠는가

외로워서 밤새 울었는가

작은 얼굴에 맺힌 눈물방울이

새벽운동에 진심인 내 발목을 붙잡고

말을 건다 아주 절박하게


저기요 저기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초면에 염치없고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제 말 한 번만 들어주세요

딱 이 년만 나 좀 데려다 함께 살아요


낯가림이 심한 나

못 들은 척 귀를 털고 달리는데

그 여린 여자 바람소리로 울부짖으며

내 머리카락을 당기네


예, 말이요 나 좀 살려주세요

이 작은 얼굴을 이 가냘픈 몸을

출장 나와 헛짓하는 지독한 겨울이 갑질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짓이기고 짓밟아요

지난 세월 그저 참고 살았는데

이젠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딱 이 년만 같이 살아줘요

밥 달라 사랑 달라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그저 상처로 옹이진 몸과 마음

태엽 풀어내듯 조용히 풀게요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당신 나한테 왜 이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마음이 모질지 못한 나는 결국

그 여린 여자의 흙 묻은 발등을 조심스럽게 감싸

우리 아파트 베란다로 데려왔다

또 어디서 저런 이상한 여잘 데려왔냐며

호통 칠 남편이 두려워 까치발이 되었네


밀봉한 어둠이 사르르 녹아

트레이닝복 호주머니가 흥건히 젖고

오늘도 나는 아침운동에 진심과 사랑을 더한다



작가의 이전글<시> 주름잎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