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라면을 끓이며

by 김혜련

라면을 끓이며


김혜련


어느 날 밤 문득

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시간을

곡선으로 한없이 구부리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충동이

나에게 찾아왔다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숙면 중인 냄비의 아가리를 벌려

막무가내로 찬물을 먹이고

그 물이 냄비 내장 속에서

보글보글 끓어 넘치기를

발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가

굽어질 대로 굽어진

라면의 알몸을 영접하고

나도 모르게 무릎 꿇고 감탄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알몸을

끓는 물에 던지며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의 알몸을 부러워할 것 같은

부끄러운 예감이 든다고 독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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