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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 Apr 03. 2024

최선을 다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요새 부쩍 몸이 안 좋아졌다. 독감인가 싶어 검사를 받아봤지만 음성이다. 약을 처방받고 밀린 공부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일찍 몸을 눕혔다.


약을 먹었을 때만 좋아지는 걸 보니 몸이 확실히 안 좋아지긴 했다. 미팅 중 몽롱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노트에 적었다. '아플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러다 소개팅이 잡혔다. 신기하게도 회사에서 주관하는 소개팅에, 상대방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태로 만나는 소개팅이었다.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이 떠올라 설렜다.


연락을 하고 장소를 잡다가, 너무 늦게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어떤 사람인지 빨리 알고 싶은 애달픈 마음으로 연락 다음 날 보기로 했다.


당일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약을 삼키고 미팅이 끝나자마자 병원에 들러 수액을 꽂았다. 평소에 '이 돈이면 치킨 5마리를 사 먹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약봉투만 쥔 채 떠났던 '그 수액'이다.


몸에 들어가니 한결 나았다. '돈이 좋긴 하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사무실로 올라갔다. 몽롱한 정신상태와 간지러운 목구멍을 숨긴 채.




퇴근 후 계획은 이랬다. 5시에 헬스장에 들러 씻고 피부를 정돈한 뒤 6시에 미용실을 들리고 7시에 도착한다. 예상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설레는 마음은 약속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야단 떨었다.


첫인상도 괜찮았고 험한 말도 입에 담지 않는 착한 사람이었다. 다만 내 상태가 좋지 않아 평상시와 텐션이 조금 달랐다. 일부러 조금 시끌한 이자카야를 골랐지만 다음 멘트가 떠오르지 않아 적막이 자주 흘렀다.


최대한의 예의와 공감과 반응으로 이어갔다.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짧은 술잔을 뒤로, 자리를 나섰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애프터 신청을 언제 해야 할까?' 두 생각에 어지러웠다.


다음 주에 봤다면 좋은 컨디션이겠지만 간격이 루즈했을 것이고, 오늘 본다면 나로서 최선을 다했다. 조심히 던진 주사위의 눈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연락을 기다리되, 어떤 답장이 오길 바라지 말자. 나로서는 최선의 오늘을 살았다. 이제 쓰러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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