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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어요를 '보고서'

주관적인 영화 리뷰 (스포일러 주의)

by 아론

만화가인 아내 '하루'와 컴퓨터 유통회사에 일하는 남편 '츠레'의 이야기.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영화는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의 일상을 보여준다. 더한 것 없이 고스란히, 그렇기에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매일 강박적으로 요일 별 도시락을 싸고 넥타이까지 선별해 놓는 츠레는 착하고 순둥순둥한 남편이다. 회사에서는 털털하게 사는 직장동료를 부러워하고 무심한 상사와 자신의 무지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고객과의 전화에 상처가 덧나고 곪아 우울증으로 터지게 된다.


실수가 늘고 일상이 삐걱대자 아내인 하루의 권유로 병원에 들렀고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된다.


병원에 방문한 장면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의사가 상담 중인데 뒤에서 간호사가 계속 서성이게 공간이 트여 있다는 장면이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환자의 입장에서 매우 불편했을 터, 일본에서 병원을 가본 적이 없기에 한국과 문화가 다른가 싶었지만 배려심이 부족한 의사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휴대폰은 무서워요. 느닷없이 울리잖아요.

우울증을 진단받은 츠레는 급격히 건강이 악화된다. 우울증은 정신만이 아닌 온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많은 이들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가장 가까운 아내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병세는 악화된다.


부부의 집에서 키우는 이구아나처럼 파충류가 되고 싶다는 멘트가 가슴에 남았다. 디테일하다고 해야 할까, 사소한 부분에 딴지 거는 츠레와 무덤덤하면서 매사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하루의 대화에 다툼이 잦아진다. 하루가 츠레를 이해하기 위해 검색도 해보고 공부도 해보지만 마음의 벽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았다.


의도적으로 공간을 분리해 거실에서 깔깔대며 웃는 츠레와 방 안에서 등이 아프다며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츠레라던지, 방 안에서 일기를 쓰다 아내가 들어오면 황급히 자는 척을 하는 장면들 속에서 폐쇄된 감정의 문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졌다.




햇살은 조금씩 방안 깊숙이 들어오잖니.

츠레는 우울증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하루가 연재 중이던 만화가 종료되며 생활도 힘들어진다. 부모님께 증상을 토로하며 함께 걱정하고 힘들어하는 장면에서 단순히 개인의 병이 아닌 가족 모두가 관심을 갖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하루의 부모님의 따뜻한 말들, 그에 반해 츠레의 형은 오래간만에 방문한 동생의 집에서 아내에게 츠레를 비난한다. 가부장적인 대사와 츠레가 나약해서 병에 걸렸다는 둥, 앞에서 실실 웃던 츠레는 형이 떠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모든 잘못을 본인에게 돌린다.


진전이 보일 즈음 다시 1보 전진, 2보 후퇴한 하루지만 꿋꿋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남편의 병세를 알리며 연재를 맡던 편집자에게 일자리를 구걸한다. 다행히도 우울증을 앓았던 편집자의 옛 상사는 일러스트 작업을 맡긴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고맙게 받아온 일거리지만 마감에 쫓기던 하루는 츠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부부의 이름을 잘못 기재한 부분을 수정해 달라며 칭얼대는 츠레에게 가만히 있으라며 하루가 소리를 지르자 축 처진 어깨로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앉아있던 츠레는 다행히도 하루가 작업을 마칠 즈음 자살을 시도한다.


모든 상황이 자신의 잘못으로 느껴지는 츠레, 그를 한 없이 이해하려는 하루의 투박하면서 소중함. 그 과정에서 부부가 각자 적던 일기장은 빼곡하게 채워진다. 츠레는 글을, 하루는 그림을 적어가다 일러스트 작업을 맡긴 편집자의 상사가 충고한다. '작가는 본인이 원하는 작업을 해야지' 그 말에 하루는 겪고 있는 일상을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초특가, 초라하지 말자, 특별해지려 하지 말자, 가능한 일을 하자.


작품은 안정적으로 생계를 채워주었고, 부부는 전업 작가로 생계를 이어간다. 츠레에게는 우울증에 대한 강연 섭외 연락도 받게 된다. 용기를 내 선 강연장에서 츠레는 마음의 문을 열고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울증에 대해 '초특가'라는 3글자를 모토로 걸고 강연을 이어간다.


초라하지 말고, 특별해지려 하지 말고, 가능한 일을 하자는 소박함에 삶의 소중함을 다시 느낀 츠레는 회사에서 시달리던 고객을 직접 마주한다. 그 또한 우울증에 시달렸음을 추측케 하는 '작품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뒤로 박수 소리와 함께 고객은 강연장을 떠난다.




이 작품을 2번 보았는데, 2년 전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처음 찾았다. 유튜브에서 우울증에 관한 영상을 찾다 보게 된 리뷰에서 영화를 풀버전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날은 내가 마음에 들어 연락을 시작한 이성과 첫 만남을 갖는 전 날이었다. 하루와는 정 반대의 독자적인 삶을 추구하는 그녀였고, 나는 츠레와 닮아있었다. 연락도 뜸하고 본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그녀와 나는 이어지지 못했다.


무덤덤한 척 지냈지만 상실감이 나의 우울을 더 악화시켰다. 명상도 해보고 글도 적었지만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나도 같은 동반자가 함께했더라면 조금 나아졌을까.


작품에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를 아내로 표현했지만, 사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자신이다. 결국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과, 내가 몰랐던 감정과 상처들을 보듬어 주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이 우울증을 이겨내는 방법이며 우울이 내게 주고 간 선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박하면서 낱낱이 우울증에 대해 보여주는 작품, 언젠가 우울의 파도가 다시 덮치려 할 때 찾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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