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가 말했어. 이야기 속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최근 『1Q84』라는 소설에서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만났다.
어떤 사물이든 이야기 속에 등장했다면, 반드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원어민과 25분간 전화로 외국어 수업을 하고 있다.
최근, “요즘 걱정거리나 고민 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순간,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두려움과 떨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2주 전, 훈련소 수료식 날, 마음이 꽤나 개운했다.
마음속 짐처럼 느껴졌던, 3주간 사회와 단절된 시간을 마치고 나니
왠지 뭐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보낸 3주는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고,
돌이켜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늘 어떤 시작 앞에서 그 시간이 걸림돌이 되었다.
회사에서도, 사랑에서도.
회사에서는 1년 9개월의 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소속 팀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 팀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성장에 목말라 있던 내게 딱 맞는 곳이었다.
하지만 곧 떠날 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어정쩡한 위치만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있어서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경력 단절의 부담감과, 3주간 사회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자신감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족쇄를 단 코끼리처럼,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등장했지만, 나는 쏘지 못했다.
그저 덜덜 떨며 바라보기만 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겨도,
그저 ‘친절한 사람’으로만 남았다.
예전과는 다른 나의 모습에 당황했고, 실망스러웠다.
생각이 많아졌고, 주변 커플들을 질투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한 채 그들을 시기했다.
내가 가진 두려움의 근원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문제는 '바라보는 시선'에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물체는 크고, 멀리 있는 것은 작아 보인다.
당장 겪는 일이, 앞으로 겪어야 할 것들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다른 자세로 앉아 삶을 바라보기로 했다.
불편한 감정 속에 잠시 머물러 보기로 했다.
불편하다면, 결국엔 편해지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 갑갑하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생각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시그널’이라는 것을.
극과 극이 맞닿아 있듯,
벼랑 끝과 안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