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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의 선율을 '보고서'

시사회 후기로, 스포가 있습니다.

by 아론

수연은 초등학교 6학년, 할머니와 살고 있으며 어머니와 아버지는 없다. 다만 어디선가 주운 여성의 사진을 어머니라 여기고 몸에 지닌다.




재개발 지역에 사는 할머니와 수연의 집은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주려는 할머니와 눈치 빠르고 싹싹한 수연이 밥냄새가 자욱한 아침처럼 채워간다.


하지만 이윽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는 이웃 아주머니와 세상에 혼자 남은 수연을 보호하려는 사회복지사만이 있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쥔 채 차로 이동하는 수연. 사회 복지사는 내심 수연을 위한다고 내뱉는 말들이지만, '앞으로' 따위는 수연에게 중요치 않다. 당장은.


아직 삶과 죽음을 알기에 너무 어리다. 수연은 홀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마을의 정자를 지나다 멈추어 참을 서성인다. 멍하니 그저 나무를 바라본다.





가영은 수연의 학교 친구로, 왕따를 당하고 있다.

가영의 아버지는 퇴근 후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낸다,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수연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지만, 상황이 변하자 사람도 변했다. 가영은 수연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마치, 계급의 피라미드에서 우위를 점한 듯이 홀로 남은 수연에게 집에서 나가라 하지만, 수연은 가영의 약점인 왕따에 대해 가영의 어머니께 말하겠다 하며 상황을 뒤집는다.


가영의 어머니는 수연을 맞아주지만 차갑다. 게다가 수연에게 설명보다는 강압적으로 재개발되는 집의 입주권 문제에 관여하려 든다.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수연은 입주권이나 집보다, 따뜻한 가족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억지로 '남'의 집에 얹혀살고 싶지는 않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수연, 동네의 교회 목사 부부의 아들인 우영은 수연에게 접근한다


우영의 아버지는 자애로운 듯한 교회 목사지만 강압적인 성격을 가졌고, 훨씬 젊어 보이는 어머니는 우영을 감 싸도는 성격의 어머니다.


엇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수연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추행을 저지르고 친구들과 집에 찾아오기까지 한다. 수연은 경찰에 신고한다.


누가 봐도 선 넘은 행동이지만 수연을 위해주는 이들은 없다. 당연히 부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경찰관들의, '부모님 어디 계시니'라는 질문마저 수연에겐 상처다.


이후 돌아오는 건 우영이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뿐. 수연은 점점 혼자라는 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멀리 있던 거울에 천천히 다가가 본인의 얼굴을 살피듯이.




사회복지사는 공감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돕는다.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미성년자인 수연은 보육원이나 입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잠시라도 수연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면 어땠을까. 수연은 보육원에 가기 싫다. 가족이 필요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나오는 길에 선율이라는 아이를 공개 입양한 부부의 유튜브를 발견한다. 아이와 함께 하는 브이로그 형식의 영상들이 게시되어 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아이는 부모와 대화하지 않지만 부모는 무척 따뜻하다. 하지만 수연의 눈에는 그저 부러움만이 담겨있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위치를 찾아보니 마침 수연의 집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수연은 선율을 찾아 길을 나선다.


선율이의 유치원 하원길에 수연은 몰래 선율을 따라간다. 그러다 선율의 비밀 아지트를 발견한다.

그곳에는 아픈 곤충을 보살피는 선율이 가 있었다.




수연을 바라보는 선율은 마치 수연과 비슷한 나이대로 의심될 정도로 똑똑하고 영리하다. 영상과 사뭇 다르지만, 수연은 선율에게 잘 보이려 애쓴다.


선율은 수연이 몰래 따라붙은 것도 알고 있지만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수연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듯이 보여 수연은 함께 선율의 집까지 가기로 한다.


그러다 선율의 어머니를 만난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는 말에 수연은 머뭇거리고, 선율은 언니가 나를 구해주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선율의 어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수연을 집으로 초대하고 수연은 생각대로 되어가는 상황에 몹시 기쁘다.


선율의 집에 도착한 이후, 선율은 말을 멈추었다. 혼자 조용히 퍼즐만을 맞추는 수연. 선율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대화를 많이 하지만, 선율은 침묵 속에서 지낸다.


수연은 선율의 어머니와 친해지고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알게 되고, 이후 선물로 음식을 들고 가는 등 점수를 따려 노력한다.


선율의 어머니는 이에 감동한 눈치이고, 취향과 성격도 수연과 비슷하다고 한다. 선율의 아버지도 함께한 자리에서 수연은 결국 선율이 가족에게 본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가족이 되기로 한다.


수연은 조금씩 이상함을 느낀다. 선율의 하원길에는 항상 혼자였다는 점, 선율의 아버지가 '우리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라는 말을 하는 등.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오후, 선율과 단 둘이 있는 동안에 선율에게 집에서 말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다. 선율은 '엄마가 이러면 좋아한다.'라는 답을 한다.


이후 선율의 부모님은 점점 모습을 감춘다. 잠시 선율과 밖에 나간 사이 어떤 남성이 집에 찾아온 모습을 보고 선율을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혼자였던 현실로 돌아왔다. 볶음밥이나 찌개가 아닌 차가운 식빵 한 조각으로 밥을 때우고, 선율은 마치 이 공간이 자기가 보살피던 곤충의 집과 같다는 말을 한다.


뉴스에서 한 부부가 아이를 학대하고 내팽개쳐둔 정황을 발견해 추적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선율이의 공개입양 유튜브는 모든 영상이 내려간다.




사회복지사가 출근한다. 동료는 그녀에게 행방불명되었던 수연의 할아버지를 찾았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수연은 중학교에 입학한다.


수연은 선율을 찾는다. 보육원에서 그네를 타던 선율은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뛰어가다 언덕 위의 수연을 응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가는 길에 들리는 영화의 평은 '난해하다, 이렇게 애매하게 끝나면 어떻게 하나.'였지만 아마 그 답은 영화관을 나서는 길에 붙은 격언이 답해주지 않을까.



난 무척 마음에 들었다. 보는 내내 부담스럽게 등장인물에 가깝게 들이대는 카메라 앵글은 마치, 그 상황의 냄새와 감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굳이 이렇게 까지'라는 말로, 덮고 싶을 정도의 적나라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배우들이 빛났고, 보는 내내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장면이 즐비했다.


등장인물들의 부모들은 마치, 인과관계에 얽혀 만들어진 생명체가 자식이라는 듯이 적확하게 표현되어 이해를 더해주었다.


더욱이 씁쓸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판타지는 없었다. 만약 선율의 부모님이 무지개였다면 수연은 무지개의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였달까.


수연은 무지개가 간절했다. 하지만 비도, 우산도 없다. 인과관계에 벗어난 수연은 다른 인물들의 표적이 된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힘겹게 나아간다.


감독이 심어 놓은 피사체들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었다. 총이 등장했다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는 안톤 체호프의 말처럼 모든 총은 격발 되었다.


그 총알은 선율과 수연을 관통해 내게 박혔다. 그리고, 다른 관객들에게도 박혀 생각의 바다에 잠기게 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작품의 한계가 되듯, '수연의 선율' 영화는 관객의 상상력을 확장시켜 주었다. 무척 한국적이게, 무척 노골적으로.


Imstagram : @dabe_movie 덕분에 감사히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영화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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