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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고서'

주관적인 영화 리뷰 (스포일러 주의)

by 아론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영규(권해효)는 수십 년간 아름다운 이름을 각인해 대중들에 이름이 각인된 명장이다. 수많은 수상경력과 뉴스 기사들에 이어 다큐멘터리까지 촬영을 시작하며 막을 올린다.


영규의 아들 동환(박정민)은 아버지와 젊은 PD 지현 (김수진)을 물끄러미 본다. 반면 영규는 어딘가를 쳐다본다. 그가 유일하게 선글라스를 벗을 수 있는 곳은 집이다. 한창 촬영 중인 공방 '청풍'은 불편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지현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과 같이 듣기에 거북한 말들로 영규를 괴롭힌다. 본인의 영상을 위해 영규와 동환의 삶을 이용하는 듯한 그녀의 말들은 영규와 함께 관객도 거북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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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촬영이 이어지던 때, 동환에게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다. '어머니가 발견되었으니 확인해 달라'는 전화. 어머니는 동환이 갓난쟁이 일 때 돌아가셨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백골로 영안실에 누워있다. 그녀에게 남은 건 말소된 주민등록증뿐, 그 흔한 증명사진조차 없이 그녀는 수십 년간 야산에 묻혀있었다.


장례식이 열렸지만 지인이 많지 않았다. 지현은 동환에게 장례식도 방송에 넣겠다고 말하지만 동환은 싫음에도 반박하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 영희 (신현빈)의 가족들이 찾아온다.


넋을 기림이 아닌 영희 몫의 유산을 위해 온 그들은 동환의 상속 포기 각서를 쓰겠다는 말이 떨어지고서야 조용해진다. 동환은 사진도 없이 치르는 장례식이 안타까워 사진을 요청하지만 그들은 영희가 어렸을 때 도망갔다는 말만 반복한다.


약 40년 전에 영희는 집을 떠났다. 아버지의 외도를 본 어린 영희는 가족들에게 말했고 영희의 어머니는 영희를 때렸다. 참을 수 없는 폭력에 영희는 패물을 들고 집을 떠나 방황하다 의류 공장 '청풍'에 시다로 취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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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의 냄새를 맡은 지현은 영희의 뒷조사를 하고, 동환은 끌려다니며 옛이야기를 듣는다. 영희에 대한 진술들은 하나같이 '못생겼다.'로 좁혀진다. 그런 영희는 묵묵히 일했다.


하루는, 감독관이 1분 만에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성화를 내지만 줄이 너무 길어 시간이 부족했던 영희는 바지에 지려버린다. 이후 '똥걸레'라는 별명이 붙는다.


하지만 영희는 꿋꿋하게 일한다. 그리고 공장 앞에서 영규를 만나고, 호감을 가지며 대화를 이어가다 주변의 부추김에 탄력을 받은 영규의 대시에 결혼까지 골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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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의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이용하고 놀려먹기만 했다. 한 번도 세상 구경 못한 그에게 손과 귀가 곧 눈이다. 부추긴 주변 이들은 못난 얼굴의 영희를 절세미인이라 추켜 세워 영규를 안달 못하게 만든다.


동환이 태어난 후 친구가 집에 찾아와 사실을 말하자, 영규는 지난날의 서러움과 이용당했다는 억울함으로 분노에 휩싸인다.


게다가 영희는 선배 재봉사가 사장 주상(임성재)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에 참지 않고 전단지를 만들어 폭로한다. 영규는 도장 가게를 내게 해준 주상에게 구박을 당하고 영희를 나무란다.




영규는 억울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실체가 영희로 투영되자 분노의 화살은 영희에게 향한다.


주상은 깡패들에게 본인의 치부를 드러낸 영희를 오밤중 폭행하도록 지시한다. 영희는 다음 날 다시 주상에게 달려든다. 동환은 그런 영희가 밉지만, 영희가 힘을 얻은 이유는 동환의 진실을 알기 전 따뜻했던 말과 행동이었다.


눈이 돌아간 영규는 영희를 목 졸라 죽이고 야산에 버린다. 주상의 지시로 다시 움직인 깡패들은 영규를 보지만, 영규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영희를 묻어 40년의 세월 동안 그녀를 방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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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환은 늙어버린 청풍의 사장과 직원들과 지현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의 민낯을 알게 된다. 영규는 다그치는 동환에게 본인처럼 되기를 강요한다.


그간 촬영한 자료를 가져간 동환은 지현에게 기존에 하던 대로 방송에 내보내길 당부하고, 지현은 동환과 영규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들은 결국 같은 얼굴을 가졌다.


지현은 마지막 선물로 주상에게서 받아 낸 영희의 얼굴을 건넨다. 동환은 그제야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미 늦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영규의 도장 가게 이름과 주상의 의류 공장 이름은 모두 '청풍'이다. 영희의 과거를 여행하는 스토리 속에, 다양한 장면들이 복선으로 작용한다. 과거 이야기 중에 영희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데, 오히려 보여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영희는 관상에서 안좋은 것들만 가득한 얼굴처럼 보이지만 그렇게까지 못생겨보이지 않아 몰입이 반감되었다.


약 2시간 동안 함께 달려온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 정도인가' 싶을 정도. 게다가 영희의 죽음에 감춰진 내막 또한 너무나 예측이 가능했다.


배우 박정민의 1인 2역과 더불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흡입력이 무척 강했지만, 씁쓸한 이야기 속 개운함은 적었고 뒷맛이 아쉬웠다. 재미있었지만, 여운은 적은 느낌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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