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식단을 직접 만들며 알게 된 영양, 조리, 정성의 가치
4월 1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 우리는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4월 2일 오전 9시 4분, 의료 개입을 최소화한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날부터 4월 8일까지 우리는 병원에서 모자동실을 하며 하루하루를 함께했다.
출산 직후, 아내는 몸을 겨우 일으켜 수유를 하며, 세끼 나오는 병원식에 숟가락을 들었다. 아이에게 영양은 줘야 하니 수유를 하기 위해 먹었다. 건강식이라지만, 매일 나오는 미역국, 샐러드엔 단맛 나는 소스, 자주 등장하는 튀김까지. 먹는 일이 회복의 시작이어야 하는데, 입맛을 잃은 아내에겐 오히려 부담처럼 보였다. 이 계기가 홀푸드 식재료에 관심은 있었지만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내가 출산 후 처음으로 ‘병원 밥’을 먹은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병원밥이 나빴던 건 아니다. 샐러드도 나왔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까지 나름의 균형을 갖춘 식단이었다. 하지만 매일 나오는 샐러드 소스에는 설탕, 올리고당 외 내가 모르는 첨가물들이 들어있는 샐러드 소스가 들어갔으며, 튀김도 거의 매일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유난스러운 우리 부부가 한 가지 힘들었던 것을 고르라면 식사였다고 얘기할 수 있다.
나는 튀김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기름의 종류를 먼저 살핀다. 염증을 낮추고 산패 없는 기름, 즉 질 좋은 지방이어야 모유수유하는 엄마는 안심할 수 있다. 이런 기름을 병원 급식 단가에 맞춰 쓰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안다. 물론 내가 모유수유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선 누군가 정성껏 차려준 튀김이라면, 그 순간만큼은 기름 이야기를 잠시 내려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삭하게 먹는다. 몸에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군가 정성껏 내어준 음식이라면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식사는 아니어도, 그 순간의 진심과 환대는 영양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때로는 완벽한 영양보다 마음을 다해 준비된 음식 앞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런 날엔, 기름보다 사람의 온기를 먼저 받아들인다.
한때 지방은 심혈관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금기시되었지만, 최근엔 지방도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로 재평가받고 있다. 물론 건강한 지방이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 돼지기름이라도 어떻게 자라고 어떤 사료를 먹고 자란 돼지의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기름 얘기가 길어졌지만, 결국 핵심은 내가 먹이는 음식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진 것이다. 좋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하나를 고르더라도 냉압착 방식, 산도(0.8 이하), 어두운 유리병 포장, 수확 시기, 유기농 인증 여부, 심지어 용량까지 따져가며 구매를 하고 있다.
출산은 아기와 함께하는 시작이자, 누군가의 회복의 시작이기도 하다. 모유수유가 시작되면서 아내에겐 하루 세 끼는 물론, 밤중 간식도 필요해졌다. 매일 챙겨주진 못하지만, 배고파할 때는 꼭 뭔가를 준비하려 한다. 무엇이 도움이 되고, 무엇은 피해야 할지 하나씩 알아갔다. 이젠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책임감이라는 감정이 함께 따라온다.
거창한 요리는 못 한다. 육아도 함께하고, 아내를 서포트하고, 틈틈이 내 공부도 이어가야 하기에 복잡한 조리 과정엔 시간을 쏟기 어렵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은 오히려 단순하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식재료, 가능한 덜 가공된 홀푸드 재료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가장 단순한 재료일수록, 그 안의 영양과 안전을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는 편리하지만, 그 안의 정체불명 첨가물은 수유 중인 아내와 아이에게 망설임을 남긴다. 적은 재료, 간단한 조리법, 명확한 출처. 이 세 가지만 지켜도 거창하지 않아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충분히 가능하다.
장인어른이 해남에서 보내주시는 제철 채소, 장모님이 손수 만들어 보내주시는 간편한 반찬들. 그 모든 재료를 감사히 받아, 버리지 않고 정성껏 요리한다. 장모님의 음식도 맛있지만, 아내에게 매일 다양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해서도 요리하는 것뿐이다. 아내의 입맛에 맞춰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 가족만의 식탁을 만드는 것 같다.
요즘은 집밥을 꼭 해 먹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식당, 배달앱, 밀키트까지 선택지는 널려 있다. 그런 시대에 굳이 매일 식사를 직접 차리는 일이 비효율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다. 가치를 알고 나니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다. 시간과 손길을 들여 누군가 나를 위해 요리해 주는 사랑. 그 따뜻한 사랑을 지금 나는 아내에게 건네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아내가 기꺼이 받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지친 육아 속에서도 나를 다시 일으키는 작은 기쁨이 된다.
어릴 적엔 엄마가 매일 해주시던 집밥이 그냥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심지어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매번 차리고 치우고, 또 준비하는 그 수고로움을, 왜 굳이 반복하실까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아내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식재료 하나하나를 고르고 공부하다 보니 내가 집을 떠나오기 전까지
아침, 점심, 저녁—모든 식사를 빠짐없이 차려주셨던 그 시간이 얼마나 큰 헌신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기억도 떠오른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점심을 주기적으로 돈 주고 사 먹는 경험을 했다. 그때 처음으로 국밥이나 쌀국수 같은 음식들을 식당에서 접하며 '사 먹는 게 편하다.'는 가치관이 생겼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누군가 매일 내 밥을 준비해 줬다는 사실이 당연해서 고마움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랑은,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곳에 있었음을.
건강한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히 ‘요리’가 아니다. 식재료가 어떻게 길러지고, 가공되고, 포장되어 오는지를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식재료를 선택하고, 어떤 조리법을 쓰고, 어떤 양념을 쓰느냐는 결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곧 우리 가족의 건강과 연결된다.
그리고 나는 그 결정을, 매일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회복을 돕는 일이라면, 이 유난은 언제든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