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 『장릉(長陵)』
인조는 조선의 제16대 임금으로 추존된 원종과 인헌왕후 구 씨의 첫째 아들로 선조 28년(1595)에 임진왜란 중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능양군에 봉해졌으며, 1623년 서인 정권과 함께 광해군을 폐위한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다. 조선 왕조의 네 번째 반정인 인조반정으로 큰 아버지인 광해군과 그 지지 세력인 북인 일파를 대거 축출하면서 왕위에 올랐다. 원래 권력의 세계는 피도 눈물도 없음을 우리는 역대 여러 나라에서 여러 왕의 이야기에서도 본 적이 있다.
인조는 왕위에 오른 후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摠戎廳)과 수어청(守禦廳)을 새로 만들었다. 그러나 즉위 초에 반정 공신 보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수습하였고, 당시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라가 성장하는 시기를 인식하지 못하여 척화파와 주화파가 대립하기도 하였다.
결국 인조 5년(1627) 정묘호란이 일어났고, 다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으나 결국은 청나라에 항복하며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후 인조 27년(1649)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 왕인 효종이 왕위에 오른 후 묘호를 열조(烈祖)라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묘호를 仁祖(인조)라 하였다.
인열왕후 한 씨는 선조 27년(1594)에 강원 원주에서 태어났다. 광해군 2년(1610)에 능양군과 가례를 올려 청성현부인에 봉해졌으며, 1623년에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인조 사이에서 6남 1녀를 낳았으며, 인조 13년(1635) 창경궁 여휘당 산실청에서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 씨의 능으로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 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636년에 파주 운천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자리도 미리 공사하였다. 이후 인조 27년(1649)에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뱀과 전갈이 능 주위에 무리를 이루고 석물 틈에 집을 짓는 변이 계속되자 영조 7년(1731)에 현재의 자리로 천장 하면서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특히 옛 장릉의 석물과 천장 하면서 다시 세운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재실, 금천교, 홍살문, 향로와 어로,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향로와 어로는 숙종의 명릉처럼 양옆에 변로를 깔았다. 능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혼유석은 합장릉의 형태로 2좌를 배치하였다. 특히 천장 하면서 병풍석을 둘렀는데, 병풍석에는 기존의 구름 문양과 십이지신상을 대신하여 모란꽃과 연꽃 문양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참고로, 장릉이라는 능호는 조선왕릉 중에 총 세 군데에서 사용되고 있으니 사용된 한자의 뜻을 통해 잘 구별할 필요가 있다.
장릉(章陵) : 조선의 추존왕 원종과 추존 왕비 인헌왕후를 모신 쌍릉으로, 이 왕릉은 글 장(章) 자를 사용한다. (경기도 김포)
장릉(莊陵) :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을 모신 단릉으로, 이 왕릉은 장중할 장(莊) 자를 사용한다. (강원도 영월)
장릉(長陵) : 조선 16대 임금 인조와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를 모신 합장릉으로, 이 왕릉은 길다 長(장) 자를 사용한다. (경기도 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