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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이야기 다섯번째

결국 원자폭탄은 투하되었다.

by 늘 담담하게


1945년 7월 25일. 트루먼 대통령은 원폭 투하 명령을 승인했다. 이로서 사실상 히로시마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이 명령은 육군참모총장대리를 통해 육군 전략 항공군 사령관에 전달되었다. 이 명령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원폭 공격 명령서

1. 제20항 공대 제509 혼성 군단은 1945년 8월 3일경 이후 날씨가 허락하는 대로 목표: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중 하나에 최초의 특수 폭탄을 육안 공격에 의해 투하한다. 이 폭탄의 폭발 효과를 관측하고 기록할 목적으로, 육군성에서 파견한 군과 민간 과학자 요원을 운반할 여분의 폭격기를 폭탄 탑재기에 수행하도록 한다. 이러한 관측기는 폭탄의 폭발 점에서 몇 마일 떨어져 머물기로 한다.


2. 계획 요원에 의한 준비가 되는 대로 추진 목표 위에 추가 폭탄을 투하한다. 위에 열거한 이외의 목표에 관해서는 추후 지시를 준다.


3. 이 무기의 대일 사용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발표할 권한은 육군 장관 및 미국 대통령만이 보유한다. 전선 사령관은 이 주제에 관한 성명이나 정보의 발표는 사전 특별한 허가 없이는 해서는 안된다. 일체의 보도 기사는 육군성에 보내 특별한 검열을 받기로 한다.


4. 위의 명령은 미합중국 육군 장관과 참모 총장의 승인 하에, 그 지시에 따라 귀관에 대한 응답하고. 귀관은 이 명령서의 사본 1통을 맥아더 장군에, 또 1통을 니미츠 제독에 송달하도록 한다.


이 명령이 전달된 후 8월 2일 괌에 있는 제20 항공군 사령부에서 티니안섬의 제509 혼성군단으로 야전 명령 13호가 전달되었다. 이 명령서는 어떤 부대가 어떤 경로를 통해 공격을 해야 할지, 그리고 이 공격에 동원되는 폭격기들의 각자 임무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당일 히로시마가 공격하기 어려울 경우, 제2목 표는 고쿠라, 제3목 표는 나가사키로 변경, 공격하도록 명령서에는 기재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격에 대한 지침들이 하나둘 전달되는 동안 8월 5일 21시 20분 제509 혼성부대의 관측용 B-29기가 히로시마 상공을 비행한 뒤 다음날의 히로시마의 날씨는 양호라고 티니안으로 보고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8월 5일 제509 혼성군단 사령부에서 작전 명령 35호가 발령되었다. 원폭투하의 최종 명령서였다.




(8월 5일에 내려진 최종 명령서)


이 명령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전 명령 35호


작전일:1945년 8월 6일


상황 설명:이하를 참조한다


이륙:기상 관측기는 02:00(경)/공격기는 03:00(경)[시간은 모두 마리아나 표준시)


기상 시간:기상반은 22:30/공격 팀은 23:30


식사 시간:23:15에서 0115


필요 휴대 음식:기상반은 22:30에 39끼/공격 팀은 00:30에 52끼


트럭:기상반은 00:15에 3대/공격 팀은 01:15에 4대



중략



연료:82호기-7000갤런/기타 전기-7400갤런


탄약:전기가 각기 1000발. 폭탄:특수(원폭(리틀 보이)]


카메라:82호기와 90호기에는 K18, 기타 장치는 구두 지시에 의함.


종교상 의식:가톨릭은 2200에/개신교는 2230에 실행함



상황 설명:


기상 관측기 일반 상황 설명은 23:00에, 탑승원 휴게실에서 실시. 임무별 상황 설명은 23:30에 다음과 같다


기장과 조종사는 탑승원 휴게실에서/항법사와 레이더 담당은 도서실에서/무선 통신사는 통신실에서/항공 기관사는 작전실에서 실시


23:30에 식사. 00:15에 트럭


공격 임무


일반 상황 설명은 2400에 탑승원 휴게실에서 실시, 임무별 상황 설명은 0030에 다음과 같다


기장과 조종사는 탑승원 휴게실에서/항법사와 레이더 담당은 도서실에서/무선 통신사는 통신실에서/항공 기관사는 작전실에서 실시


00:30에 식사

01:15에 트럭


8월 6일 공격에 동원된 B-29 모두 7대였다. 첫 번째 폭격기는 Straight Flush였다.


스트레이트 플러쉬의 마크


실제 스트레이트 플러쉬의 모습이다.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에놀라게이에 앞서 히로시마의 기상상태를 확인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폭격기는 Jabit III , 이 폭격기는 제2 목표인 고쿠라의 기상을 확인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세 번째 폭격기는 Full House , 제3 목표인 나가사키의 기상을 확인하는 임무였다. 네 번째 폭격기가 원폭을 투하하는 에놀라게이, 다섯 번째 폭격기는 The Great Artiste 원폭 투하 후 폭풍을 측정하는 임무.



여섯 번째 폭격기는 Necessary Evil 공격을 관측하고 사진을 찍는 임무, 마지막 일곱 번째 폭격기는 예비공격기 Top Secret이다.



운명의 8월 6일이 밝았다. 그날 0시 37분 맨 먼저 기상 관측의 임무를 지닌 B-29 3기가 이륙했다. 스트레이트 플러시호는 히로시마에, 쟈빗 3 세호는 고쿠라로, 풀 하우스호는 나가사키가 목표였다. 0시 51 분에는 예비 기인 탑 시크릿 호가 이오지마로 향했다. 이어서 1시 45분 Mk-1 핵폭탄 리틀 보이를 탑재한 에놀라게이가 A 활주로 끝에서 이륙했다. 그 이륙 2분 후 1시 47 분, 원폭의 위력을 기록할 과학 관측기 ( 그레이트 아티스트 호)가, 다시 2분 후 1시 49 분에는 사진 촬영기 ( 네세서리 이블 호)도 이륙했다. 티니안 섬에서 히로시마까지는 약 7시간의 비행시간이 걸렸다.



티니언 섬에서 이륙한 후 각 폭격기는 산개비행을 하다가 이오지마 상공 2,440 미터에서 재 집합한 후 일본 본토로 향했다. 에놀라게이가 시코쿠 상공에 도달하자 대령 월리엄 파슨스가 이륙 시 문제가 있을 것에 대비해 분리해 뒀던 원폭 리틀보이를 장착했고, 보조를 담당하던 모리스 젭슨 소위가 히로시마에 도착하기 30분 전에 안전장치를 분리했다. 작업을 마친 무기 담당 파슨스가 티베츠 기장에게 "무기의 활성화 완료"라고 보고 하자, 기장은 "확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기장은 기내 방송에서 "제군, 우리가 나르고 있는 무기는 세계 최초의 원자 폭탄이다"라고 폭탄의 정체를 처음 승무원 전원에게 밝혔다. 에놀라게이는 시코쿠 상공을 통과하는 동안 일본군의 레이더에 포착되었고 이어서 1대의 일본군 전투기가 공격해 왔지만 에놀라게이는 그 공격을 무사히 피하고 히로시마로의 비행을 계속했다.



7 시가 넘어 에놀라게이 보다 먼저 출발했던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히로시마 상공에 도달했다. 히로시마 상공을 선회하며, 기상 상태를 관측한 스트레이트 플러쉬는 기상 상태가 양호하다고 보고 했다.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일본군이 포착하고 주고쿠 군관구 사령부에서 7시 9 분에 경계경보가 발령되었지만, 그대로 히로시마 상공을 통과 이탈했기 때문에 7시 31 분에 공습경보는 해제되었다.



그날 아침 히로시마의 사람들은 이른 아침에 내린 공습경보에 의아해했다. 이상하리만치 공습이 없던 히로시마에 갑작스럽게 내려진 공습경보는 생소했기에, 그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다. 더구나, 공습경보가 바로 해제되자, 사람들은 마음을 놓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고, 히로시마에 주둔한 군대에서는 아침 조회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8 시경, B-29 3대가 일본 측에 의해 포착되었다. 이어서 8시 13 분 주고쿠 관구 사령부는 경계경보 발령을 결정했지만 각 기관에 경보 전달이 늦었다.



8시 9 분, 에놀라게이호는 히로시마 시내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주고쿠 군관구 사령부가 경보 발령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에놀라 게이는 히로시마 상공에 도달했다. 고도는 31,600 ft (9,632 m). 먼저 원폭에 의한 풍압 등의 관측용 라디오 존데 를 매달은 낙하산 3개를 낙하시켰다. 푸른 하늘에 눈에 띄는 이 낙하산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민들에게 목격되었다. 이때 측정용 라지오존테를 설치한 낙하산을 원폭으로 오인했기 때문에 뒤에 "원폭은 낙하산에 붙여 투하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8시 12 분, 에놀라 게이가 공격 시점 (IP)에 도달한 것을 항법 전문가 커크 육군 대위가 확인했다. 기계는 자동 모드로 전환되었다. 폭격수가 노든 조준기에 고도 · 대지 속도 · 풍향 · 기온 · 습도 등을 입력하고 투하 목표 (AP)를 아이오이바시 相生橋 에 맞췄다. 相生橋는 히로시마의 중앙을 흐르는 오타강太田川 이 분기하는 지점에 걸린 T 자형 다리였다. 이 다리의 특이한 모양은 상공에서도 그 특징이 잘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목표로 선정됐다.


(오늘날의 아이오이바시의 모습이다.)
아이오이바시 표지석.
이 다리는 드물게도 T자형이다.


1945년 8월 6일 원폭 투하 전의 히로시마의 중심부의 항공사진이다. 동심원의 정중앙 부분이 원폭의 폭심지이고 그 왼쪽 조금 위에 T자 모양의 아이오이바시가 보인다.

이 사진은 원폭 투하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1988년에 촬영된 항공사진, 아이오이바시가 선명하게 보인다.


8시 15 분 17초 마침내 원폭 리틀 보이가 자동 투하되었다. 3 기의 B-29는 투하 후 열선과 폭풍의 직격에 의한 추락을 피하기 위해 진로를 155도 급선회했다. 다시 수동 조종으로 전환한 티베츠는 B-29를 기체를 급강하시켰다. 리틀보이는 폭탄창을 떠나자마자 옆으로 회전, 흔들흔들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꼬리 안정 날개가 공기를 잡고 포물선을 그리며 약 43초 동안 낙하 한 후 아이오이바시 相生橋 보다 약간 동남쪽의 병원 부근 고도 약 600 미터 상공에서 핵분열 폭발을 일으켰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이었다. 그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의 아침은, 평온했으나, 한 발의 폭탄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그날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 지옥을 보여준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8g46lQIpXI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이 투하된 장면을 재현해 낸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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