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그 남자.
저 골목길 아래 벚꽃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데 곧 벚꽃이 필 것 같아.. 당신.. 우리 처음으로 벚꽃 구경 가던 날 기억나? 바람이 불어와 벚꽃잎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리던 날... 당신의 그 하늘거리던 스커트...
아마 벚꽃의 색과 같았던 것 같은데... 당신의 코트도 그랬어... 그때 당신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서.. 그것을 사가지고 오다가.. 길 건너에 있는 당신을 보았거든..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어..
어쩌면 이 사람이 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우리의 만남은 인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내가 태어나서... 그 벚꽃 나무 아래 함께 서 있을 때까지... 내가 지나온 그 긴 시간들은 당신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을까?.. 우리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당신과 내가... 언급했던 영화 첨밀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두 사람이 좋아했던 등려군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나오는 것을 이교가 먼저 보고 있고 그 뒤로 소군이 지나가다가... 다시 다가와... 옆에 서고...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데... 우리의 만남은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그렇게 만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놀라다가... 웃음 짓는.... 그 장면... 나와 당신도... 그렇게 만나지 않았을까....
그 여자
첨밀밀?.... 그 마지막 장면... 기억해.... 그런데... 두 사람이 서 있다가 먼저 고개를 돌린 사람은... 이교였지 아마.
음... 나도 그런 것 같아... 우리가 서로의 삶을 살다가 마주쳤고.... 당신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지만 어쩌면... 이교처럼... 내가 고개를 돌려서 당신을 봤기 때문에.. 우리가 맺어지지 않았을까...
아니다.. 우린 어쩌면 더.. 오래전에 맺어질 인연이었는지 몰라. 이교와 소군도... 처음 그들이 홍콩에 올 때,.. 같은 열차에 서로를 등지고 있었잖아... 그때는 그냥 몰랐던 거지..
벚꽃 구경.... 원래 난 벚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때까지 벚꽃구경을 간 적도 없었어.. 그런데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라서... 아직은 서먹하기도 하고 그냥 당신이 가자고 해서 간 건데. 그날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들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어.. 당신이 그랬었던가....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 5센티미터라고..
그러면 우리가 벚꽃아래 서기까지 삶의 속도는 어느 정도였을까? 당신이 그날 말했던 말 중에 지금까지 웃음이 나오는 거 있었어.. 괜히 저음의 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쭈욱 이렇게 벚꽃을 같이 볼까요라고...
얼마나 웃겼던지... 있잖아 나... 그날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어...
차갑기만 한 내 삶에서... 온기라고는 별로 없는 내 메마른 삶에서 그 아름다운 벚꽃 풍경을 보며 난 처음으로 평화롭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당신을 보았지... 아이스크림을 가지고 조심조심 걸어오는 당신의 모습..
그게 날 움직였어. 당신을 좀 더 만나봐야겠다... 아니 이 사람과 더 같이 걸어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왔어. 난 후회하지 않아... 그날의 느낌... 그날의 내 결정...
이제 벚꽃이 곧 필텐데... 이번에 우리 먹을 것과 돗자리도 챙겨가자. 그래서 하루 종일 벚꽃을 바라보며... 우리의 인연에 대해서... 우리의 만남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의 행복함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너와 나의 인연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또한 나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남녀의 인연이란
그래서 눈부시게 두렵고
아름다운 기적이다.
- 최인호의《인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