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테 자매들 이야기
2021년도 작품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들 중 매들린이 죽고 난 뒤, 조촐한 장례식에서 추도사로 낭송되는 시가 있었다.
앤 브론테의 죽음에 대해라는 제목으로 샬럿 브론테가 쓴 시이다. 영화에서 첫 번째 연을 낭송한다.
On the Death of Anne Brontë
BY CHARLOTTE BRONTË
There's little joy in life for me,
And little terror in the grave;
I 've lived the parting hour to see
Of one I would have died to save.
Calmly to watch the failing breath,
Wishing each sigh might be the last;
Longing to see the shade of death
O'er those belovèd features cast.
The cloud, the stillness that must part
The darling of my life from me;
And then to thank God from my heart,
To thank Him well and fervently;
Although I knew that we had lost
The hope and glory of our life;
And now, benighted, tempest-tossed,
Must bear alone the weary strife.
영화상의 해석을 보면 "인생에는 기쁨이 거의 없고 무덤에는 두려움이 거의 없다. 이별의 시간은 죽었을 이를 만나기 위해 살아왔노라 "이다.
실제 브론테 자매는 세 명이었는데, 영화상의 이모들(애나 메이, 플로렌스, 마틸드)도 세 명이다. 브론테 자매는 알다시피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안타까움이 많은 영국의 작가들이다.
샬럿 브론테 Charlotte Brontë (1816-55), 에밀리 브론테 Emily Brontë (1818-48), 앤 브론테 Anne Brontë (1820-49) 생몰연도를 봐도, 샬럿 브론테는 38세 때, 두 살아래 에밀리 브론테는 30세, 앤 브론테는 29세에 세상을 떠났다.
언뜻 보면 샬럿이 장녀인 것 같지만 실제 위로 두 언니(마리아, 엘리자베스)가 있었지만 역시 일찍 죽었고, 바로 아래 남동생 브란웰이 있었지만 그 역시 에밀리 브론테가 죽었던 1848년 9월에 죽었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에밀리는 그해 12월에 죽었다.
이 그림은 1834년에 남동생 브란웰이 그린 초상화로 왼쪽부터 앤, 에밀리, 샬럿이다
샬럿 브론테의 초상화, 1850년경에 그려진 것이다.
그녀는 성공회 사제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란웰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나 언니들이 일찍 죽어서 (위의 두 언니와 그녀, 에밀리는 성직자 자녀 학교에 보내졌으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위의 두 언니는 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맏이로 자랐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신 탓에 동생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다고. 이에 에밀리는 샬럿을 골려주며 반항했지만 막내인 앤은 얌전히 순응했다고 한다.
브론테 자매들의 생존 당시 그들 중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던 작가로 그녀가 쓴 제인 에어가 특히 출간 당시부터 높은 인기를 끈 명작으로 평가되며 아직까지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으나, 사후에는 당대에는 엄청난 비난과 혹평을 면치 못 했던 폭풍의 언덕의 작가인 동생 에밀리 브론테 쪽이 문학적으로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글을 쓰기 전에 브뤼셀에서 영어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때문에 샬럿의 소설에는 교사인 등장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제인 에어도 그렇고 제인 에어를 집필하기 전 썼던 '교수'와 마지막 작품 '빌레트'에도 교사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세 작품 다 샬럿의 자전적 소설이다.
동생들이 다 사망한 후 동생들의 유품을 정리하고 그들을 회상하는 글을 쓰기도 하면서 브론테 자매에 관한 자료들을 남겼다. 이후 아버지와 단 둘이 목사관에 살면서 셜리와 빌레트 등 몇 권의 책을 더 집필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후임 목사로 수련 중이던 3살 연하인 아더 벨 니콜스(1819~1906)의 열렬한 구애를 받고 현대의 기준으로도 꽤나 늦은 나이인 38세에 결혼했으나 1년도 안 지난 그 이듬해에 39세 생일을 3주 앞둔 1855년 3월 31일 태아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임신 중에 여러 병이 겹쳤다는데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다. 다만 샬럿의 체구가 굉장히 왜소한 데다 그녀의 형제자매들처럼 병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말렸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좋지 못한 몸이 임신하면서 더 약해져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샬럿의 동료 문인인 엘리자베스 개스킬의 기록에 따르면 샬럿은 임신을 확인한 직후부터 극심한 구토와 현기증으로 고생하느라 식사를 거의 못 했다고 한다. 따라서 입덧으로 고생하다 영양실조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겨우 38살밖에 못 살았지만 형제자매들에 비하면 가장 장수했다. 씁쓸하게도 어머니도 똑같이 38세로 죽었고 남동생 브란웰이 31살, 에밀리가 30살, 앤이 29살 젊은 나이에 숨졌으며 위로 태어난 언니 둘은 겨우 10살 남짓한 무렵에 숨져서 유년기에 삶을 마감했다.
6남매나 되었지만 모두들 일찍 죽어서 샬럿이 죽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만 홀로 남았는데 패트릭은 다른 식구들과 달리 1861년 84살로 세상을 떠나며 장수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그 유명한 소설 폭풍의 언덕을 쓴 작가이다.
1833년 브란웰이 그린 에밀리 브론테의 초상화인데, 이것이 앤을 그린 것인지, 에밀리를 그린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자매들 중 키가 가장 컸으며 눈 색은 어두운 청색이었다. 막내 앤과는 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녔으며 뛰어나진 않지만 음악에도 소질을 보였다. 주로 연주하는 악기는 피아노였다.
어렸을 적부터 남들 몰래 글을 쓰고 있었다가 집안 정리를 하던 언니 샬럿이 우연히 에밀리가 쓴 글들을 보고 작가 데뷔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에밀리는 남이 쓴 글을 왜 멋대로 보냐며 격하게 화를 내며 거절했다. 그 광경을 본 동생 앤이 자신도 글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매들이 같이 작가 데뷔를 준비한다.
그녀에 대하여 본인이 남긴 기록은 두 통의 편지와 앤과 같이 쓴 일기장. 오빠 브란웰 브론테가 남긴 일기장에 가끔 쓰인 그녀 이야기밖에 남아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기록은 그녀의 언니인 샬럿 브론테와 앤 브론테,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의 스승이자 샬럿 브론테가 오랫동안 연모했던 콘스탄틴 에제, 샬럿 브론테의 친구들과 그녀의 마을 주민의 증언, 그리고 샬럿 브론테의 사후, 브론테 자매들의 전기를 쓴 동시대 작가 엘리자베스 게스킬의 기록이 전부여서 그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녀의 언니 샬럿 브론테와 샬럿 브론테가 연모했고 평생 잊지 못했던 스승 콘스탄틴 에제와, 샬럿의 친구들이 남긴 기록들과 에밀리 브론테 본인과 동생인 앤의 기록들을 보면 그녀의 성격은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침없고 야성적이며 자기주장과 자존심이 강했고 또 다른 자매들에 비해 공상과 사색이 많았고, 그녀의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고 한다.
샬럿은 에밀리를 회상하며 "말수도 없고 속도 모르겠다며 어디에서도 내 동생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고, 또 한편으로 에밀리가 고향인 요크셔의 황량한 황야와 거센 바람을 너무나 사랑해 에밀리 사후, 그녀가 개정해서 출판한 폭풍의 언덕의 머리말에서 "이 책의 지은이는 황야에서 태어나 황야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녀에게 고향 황야의 언덕은, 하나의 광경이라 하기에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였다. 그곳에 사는 들새나 그곳에서 자라나는 히스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그로 인해 생명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후에 영국의 전설적인 여성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평소 황야를 예찬한 아버지와 또 그녀가 매우 존경했던 에밀리 브론테의 영향을 받아 자신도 황야를 동경해 에밀리 브론테의 고향인 요크셔 주의 하워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샬럿은 또 에밀리가 자유를 매우 중시한 면에 대해서는 "에밀리는 황야를 사랑했다. 그토록 어두운 저 황야에도, 그녀가 보기에는 장미보다 더 빛나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녀는 납빛 산허리의 오목한 부분을 낙원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스산함과 쓸쓸함 속에서 수없는 마음의 기쁨을 발견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것은 자유였다. 자유야말로 에밀리의 콧속을 지나 흐르는 숨결이었고 그녀는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를 중시했다. 그러나 그녀의 시집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그만큼 목숨을 걸고 올바르게 사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면모도 분명히 있었다. 즉, 그 누구 못지않게 자유를 갈망했지만, 그만큼 목숨을 걸고서라도 올바르게 사는 것 역시 매우 중시했다는 것. 그래서 유부남이었던 에제를 사랑해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로, 그리고 편지로 계속 전하며 애태웠던 샬럿 브론테(하지만 에제는 그녀의 고백을 단호히 뿌리쳤다고 한다.)에 비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고, 그래서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그녀는 정신적 순결을 간직했고, 그녀보다 엄격하고, 그녀보다 용감하고, 그녀보다 올곧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고까지 말했다.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모두를 가르쳤던 콘스탄틴 에제는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남자로, 그것도 위대한 항해사로 태어났어야 했다."라고 말했고, 또 그는 샬럿 브론테보다 에밀리 브론테를 더 높이 평가해 "에밀리 브론테의 논리성과 논쟁 능력은 남자에 견주어도 뛰어나고, 여자에게는 참으로 드문 것이나 그녀의 완고한 성격 때문에 그녀의 재능이 손상되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키우는 동물들을 법도에 맞게 다루면서도 가족처럼 매우 아꼈고, 또 어느 날 한 떠돌이 개에게 물을 주려다 팔을 물려 상처를 입었고, 이후 혹시나 광견병에 걸린 개가 아니었을까 싶어 불에 달군 프라이팬을 상처에 대어 지지면서도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견뎠다고 한다. 때로는 권총 사격을 해서, 소령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샬럿은 에밀리 브론테를 커다란 황소에 비유하기도 했다. 샬럿이 지은 소설인 셜리는 바로 에밀리 브론테를 모델로 지은 소설이다. 샬럿의 사후 자신의 전기를 쓴 엘리자베스 게스킬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셜리는 "에밀리가 만일 건강하고 부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를 가정하고 만든 소설이라 한다.
이렇게 강하고 올곧은 에밀리 브론테에 관해 폭풍의 언덕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 중 하나라고 극찬한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에밀리 브론테에 대해 "그녀는 정신적 순결을 간직했고, 그녀보다 엄격하고, 그녀보다 용감하고, 그녀보다 올곧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가 꼭 이렇게 한편으로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면모와 또 한편으로는 강하고 야성적이고, 지적인 면모 외에 의외로 활달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샬럿의 지인인 엘렌 너시가 브론테 집안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집안에서는 매우 다가가기 어려운 에밀리가 들판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즐거워하고, 어린아이처럼 물속 올챙이와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해 폭풍의 언덕에서의 캐서린 언쇼의 모습이 있어, 그녀가 폭풍의 언덕을 쓰면서 캐서린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그 누구 못지않게 자유를 중시한 면모도 상당히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폭풍의 언덕의 모티브가 된 자신의 고향 하워스를 무척 사랑하여서 그곳을 떠난 석 달간 향수병 때문에 몸이 야위기도 했다. 아무튼 평생 모태솔로로 살았고, 또 결정적으로 폭풍의 언덕의 내용과 문체가 너무나 거칠다 보니 폭풍의 언덕을 여자가 썼을 리 없다는 얼빠진 주장이 진지하게 나왔지만 이는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녀의 이름으로 출간된 유일한 작품으로는 폭풍의 언덕이 있다. 그밖에 1844년에 언니인 샬럿 브론테, 동생인 앤 브론테와 함께 공동 시집인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냈지만 출간 당시에는 겨우 2권이 팔릴 정도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에밀리 브론테는 30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하여, 29세 때 발표한 소설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 지금은 세계 문학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찬사 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지독하게 욕을 먹고 심지어 그녀가 쓴 소설이 아니라는 의심도 받았는데, 오빠인 브론웰 브론테(1817~1848)가 썼다느니, 여자가 쓴 소설이 아니라는 의심도 받았다. 하지만 에밀리는 샬럿이 말했던 것처럼 겉으로는 얌전했을지언정 속으로는 강하고 대담한 면모를 지녔었다. 그 내면을 그대로 작품에 옮겼더니 그토록 야성적이면서도 복잡한 작품이 탄생했고 시대를 너무 앞서 간 나머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훗날, 같은 영국의 전설적인 작가들인 서머셋 몸, 버지니아 울프 등이 폭풍의 언덕을 극찬하였고 현재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적인 명작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리어왕, 모비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 노벨연구소 최고의 책 중 하나, Observer 선정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책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서머셋 몸은 자신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들 중 하나로 뽑기도 했다.
폭풍의 언덕을 쓰기 전 자매들과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을 출판했는데 에밀리의 시가 가장 시인으로서 재능이 돋보인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중에 죄수,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노라, 상상력에 기대어, 추억, 늙은 금욕주의자 등이 유명한데, 이중 내 영혼은 비겁하지 않노라는 19세기 대표 여류 시인인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의 애송시였고, 에밀리 디킨슨의 사망 시 그녀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장에서 낭송된 시가 되었다. 이 시집들에서 그녀는 위에서 이야기한 '자유로우면서도 올바르게 사는 것'을 매우 동경했고, 또 죽음에 대한 남다른 의식 혹은, 동경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병에 시달리던 그녀는 오빠 브론웰과 같은 연도에 죽었다. 1848년 9월 24일 결핵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던 오빠 브론웰이 죽은 후 삶의 의욕을 잃어 오빠의 장례식 때 걸린 감기가 급속도로 악화돼 이후 결핵이 되어 죽음에 이른다. 이후 자신의 흔적을 대부분 없애고 천천히 죽어갔다. 이 과정에서 일기라든지 공책에 적어둔 많은 글들이 불태워 사라져서 영원히 에밀리 브론테 연구에 어려움이 남게 되었다. 그야말로 평생 써오던 글들을 거의 다 태워버렸기 때문에 그녀에 대하여 연구하려고 해도 자료가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언니인 샬럿이 남긴 글에선 에밀리도 브론웰처럼 11월 들어 얼굴빛이 창백해지고 "나도 머지않았어……."라고 이제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대놓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쓰여 있다. 이후 날이 갈수록 에밀리는 죽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죽어가는 거의 3달 동안 계속되는 기침, 호흡곤란, 가슴의 통증에도 괴로움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치료도 전혀 받지 않고, 묵묵히 평소의 일과를 소화하려고 했다. 의사를 불러오겠다는 언니의 말에 "싫어요! 싫어!"라고 단번에 거절하기 일쑤였다. 사실, 당시에 치료받으려고 해도 불치병이나 다름없었던 결핵이라 의사를 불러와야 별수 없었다. 이미 오빠가 결핵으로 죽어가던 걸 생생하게 보면서도 의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요양이나 하라든지 그런 걸 권하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치료받을 방법이 없음을 그녀도 알고 죽을 날을 받아들인 거였다.
1848년 12월 19일 아침, 언니 샬럿은 죽어가는 에밀리의 상태를 글로 남겼는데 창백한 얼굴로 곧 죽을 얼굴이라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고 안타까워하는 글이었다. 그날 아침, 에밀리 브론테는 언제나처럼 7시에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단장을 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늘 하는 바느질감을 손에 들려고 했었고, 그날 아침 샬럿은 눈 덮인 황야로 나가 에밀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히스의 작은 가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말라버린 가지를 겨우 발견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증상이 극도로 악화된 에밀리는 눈이 벌써 희미해져 히스 가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샬럿에게 처음으로 "언니…… 의사 선생님을 불러도 좋아요."라고 말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그렇게 1848년 12월 19일 오후 2시쯤 거실 소파 위에서 그렇게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여러모로 아쉬움을 많이 남긴 채로.
에밀리 브론테의 장례식에는 늙은 아버지 패트릭과 샬럿, 앤의 두 명의 자매 외에 에밀리가 평소에 귀여워했던 개 키퍼가 함께 했다. 키퍼는 에밀리의 죽음을 안 듯 교회 안에서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고, 장례식이 끝나 목사관으로 돌아간 키퍼는 에밀리의 방 앞에 웅크리고 앉아 몇 날 며칠 동안 슬프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브론테 가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아 에밀리가 죽은 지 여섯 달도 안 돼 막내 앤 브론테도 만 29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샬럿이 1855년까지 살았던 것이 남매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 장수한 사례였다.
1834년 언니 샬럿이 그린 앤의 스케치
브론테자매의 막내로서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애그니스 그레이》(1847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1848년)이 있다. 이 두 작품 모두 영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그녀가 한 살이었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죽었는데, 자궁암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앤의 죽음은 오빠, 브란웰의 죽음에 이어 언니 에밀리가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크리스마스에 독감에 걸렸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그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앤은 2월에 다소 나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위치의 변화와 신선한 바다 공기가 그녀에게 이득이 될지 알아보기 위해 스카버러로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에 대해 샬롯은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을 것을 우려하여 여행에 반대했으나 의사의 승인과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앤의 확신에 마음이 바뀌었다.
1849년 5월 24일 앤은 샬롯과 엘렌 너시와 함께 스카버러로 출발했다. 그들은 가는 길에 요크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여기서 그들은 휠체어를 타고 앤을 쇼핑을 하고 요크 민스터를 방문했다. 앤은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5월 27일 일요일, 앤은 샬롯에게 스카버러에 남아 있는 대신 집으로 돌아가 죽는 것이 더 쉬울지 물었다. 다음날 한 의사의 진찰을 받고 죽음이 임박했다고 말했다. 앤은 조용히 그 소식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엘렌과 샬롯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표현하고, 샬롯에게 "용기를 가져요"라고 고 속삭였다. 그런 후 앤은 1849년 5월 28일 월요일 오후 2시경에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1년도 안된 사이에, 브론테 집안의 세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삶에 대해 여러 글을 읽어보며 한결같이 느껴지는 것은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것....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 시대의 환경이 그들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들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문학사에 길이 남을, 아니면 문학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성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나만의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