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이내 바로 꽃다발이 담긴 상자를 닫아 버렸다.닫아버린 것도 모자라 주방 뒷베란다 어디쯤에 툭 던져 놓고 말았다.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름대로의 열심으로 밤잠을 줄여가면서 글을 지었다. 문장을 근사하게 뽑아내기 위해 고심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사실 여태껏 손을 놓고 있다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동경했던 글쓰기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심사에 통과하고 싶어서.
그러고 나면, 브런치라는 매력적인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작가처럼 글을 마음껏 써보리라 뜬구름 같은 상상을 했다.
역시 마음만 들뜬 애송이에게 한방 먹이듯 두 번을 떨어지고 세 번째 만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부담될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속으로 응원했을 남편은 두 번째로 작가신청을 넣어놓고 결과가 나오는 날 꽃다발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것도 거창한 상자포장과 함께.
두 번째엔 느낌이 좋다며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단다.
남편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했을까 나중에 생각이 들었다.
머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남편과 꽃다발 둘 다 얄미웠다.
오후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첨엔 좌절했다가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화가 나다가 자책도 해보고, 감정이 이리저리 날이 서 날뛰고 있던 터였다.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담고 있던 서러움이 폭발하기 직전, 보기도 싫은 꽃다발 상자는 어딘가 구석에 던져지고 오히려 인정해 주고 믿어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그걸 왜 사 오냐는 둥 말이 나오는 대로 툴툴거렸다.
탈락한다는 것은 아직 감정이 여리고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만 아픈 줄 알았다. 그러나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결과였다.
학창 시절에도 패배의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자라왔던 거 같고(기억이 안나는 건가!),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살림하는 동안 무뎌질 대로 무뎌진 줄 알았던 내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들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이렇게 사십 중반이 되어서 브런치에 불합격했다고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창피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을 하며 가족들에게 애써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아이들과 남편은 괜찮다며 꼭 합격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위로를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작년에 둘째 아이가 수학 단원평가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하기싫어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문제를 풀어보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시험을 망치고 와서, 공부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틀렸냐며 다그치고 나무랐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아이도 자기 깜냥대로 열심히 했다.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글쓰기 시험에서 떨어지고, 아이는 수학 시험에서 고개를 떨궜다. 둘 다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럴 때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았는데, 가뜩이나 의기소침해져 있는 아이에게 나는 기를 더 죽였다.
내가 브런치에 떨어졌을 때, 남편과 아이들이 나처럼 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도 하지 못하고 탈락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란 걸 나는 안다.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과 열성으로 응원을 보내주는 얘들아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이곳에 글을 발행할 수 없다는 걸.눈치 없이 앞선 꽃다발이 믿음의 증거였다는걸.
마침내, 성취해 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을 때의 결과물이다.
학기 초에 아이가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공약도 생각하고 써서 외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풀이 죽어서 올 줄 알았는데 씩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