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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엘 Jun 28. 2023

그땐 그 꽃다발이 얄미웠어

브런치 합격 에피소드

살짝 상자를 열어봤다. 소담스럽게 피어나 알록달록 어우러진 꽃다발이 가지런히 누워있다. 색감이 곱고 고왔다.

왠지 활짝 활짝 핀 꽃잎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이내 바로 꽃다발이 담긴 상자를 닫아 버렸다. 닫아버린 것도 모자라 주방 뒷베란다 어디쯤에 툭 던져 놓고 말았다.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름대로의 열심으로 밤잠을 줄여가면서 글을 지었다. 문장을 근사하게 뽑아내기 위해 고심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사실 여태껏 손을 놓고 있다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동경했던 글쓰기를 떠올리려 애를 썼다. 심사에 통과하고 싶어서.

그러고 나면, 브런치라는 매력적인 공간에서 본격적으로 작가처럼 글을 마음껏 써보리라 뜬구름 같은 상상을 했다.


역시 마음만 들뜬 애송이에게 한방 먹이듯 두 번을 떨어지고 세 번째 만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부담될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누구보다 속으로 응원했을 남편은 두 번째로 작가신청을 넣어놓고 결과가 나오는 날 꽃다발을 사들고 들어왔다. 그것도 거창한 상자포장과 함께.

두 번째엔 느낌이 좋다며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단다.

남편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했을까 나중에 생각이 들었다.


머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남편과 꽃다발 둘 다 얄미웠다.

오후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첨엔 좌절했다가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화가 나다가 자책도 해보고, 감정이 이리저리 날이 서 날뛰고 있던 터였다.

누구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담고 있던 서러움이 폭발하기 직전, 보기도 싫은 꽃다발 상자는 어딘가 구석에 던져지고 오히려 인정해 주고 믿어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그걸 왜 사 오냐는 둥 말이 나오는 대로 툴툴거렸다.




탈락한다는 것은 아직 감정이 여리고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만 아픈 줄 알았다. 그러나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결과였다.

학창 시절에도 패배의 쓴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자라왔던 거 같고(기억이 안나는 건가!), 아이들을 낳고 육아에 살림하는 동안 무뎌질 대로 무뎌진  알았던 내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들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사십 중반이 되어서 브런치에 불합격했다고 우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창피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을 하며 가족들에게 애써 웃음을 짓고 있을 때 아이들과 남편은 괜찮다며 꼭 합격할 거라고 진심으로 믿고 위로를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작년에 둘째 아이가 수학 단원평가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하기 싫어하지 않고 나름 열심히 문제를 풀어보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런데 시험을 망치고 와서, 공부했는데 왜 이렇게 많이 틀렸냐며 다그치고 나무랐던 기억이 이제야 떠올랐다.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아이도 자기 깜냥대로 열심히 했다. 똑같은 상황이다.

나는 글쓰기 시험에서 떨어지고, 아이는 수학 시험에서 고개를 떨궜다. 둘 다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럴 때 나는 남편과 아이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았는데, 가뜩이나 의기소침해져 있는 아이에게 나는 기를 더 죽였다.

내가 브런치에 떨어졌을 때, 남편과 아이들이 나처럼 했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시도도 하지 못하고 탈락자가 되고 말았을 것이란 걸 나는 안다.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들과 열성으로 응원을 보내주는 얘들아가 없었다면 지금 이렇게 이곳에 글을 발행할 수 없다는 걸. 눈치 없이 앞선 꽃다발이 믿음의 증거였다는걸.


마침내, 성취해 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었을 때의 결과물이다.


학기 초에 아이가 반장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다.

공약도 생각하고 써서 외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풀이 죽어서 올 줄 알았는데 씩씩하다.


"해 보겠다고 나간 용기가 진짜 멋진거야~현이 대단해!"

"괜찮아, 잘했어. 2학기도 있고 내년도 있고, 하고 싶으면 또 나가면 돼. 그치?"

"응"

호들갑을 떨며 칭찬세례를 퍼부었다. 현이가 씩 웃었다.


한참 뒤에야 잊혀졌던 꽃다발은 빛을 보았다.

시들지도 않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은은한 꽃향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남편이 사다준 믿음의 꽃다발을 나도 종종 아이들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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