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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rew J Jan 11. 2021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이 된다.

누군가는 독립을 하면서, 누군가는 취직을 하면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서 어른이 되곤 하지만, 만약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마냥 탐탁지 않게 느껴질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된 날은 2016년 여름이었다.

그 해의 여름은 그때의 눅진한 기억 때문일지는 몰라도 매우 덥고, 습했었다.


15년에 군대를 전역한 후 1년 반 동안 복학생 생활을 나름 최선을 다해서 했던 나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당시 학과에서 꽤나 인정해주던 공모전 수상으로 20대 중반의 청춘을 빛나게 보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강의실에 조금씩 조금은 쾌쾌하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기 시작할 때쯤,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그 나이 때의 약간의 귀여운 허세가 있는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당시 친한 동기와 같이 2학기 개강 직전에 떠날 일본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 


친구와 떠나는 해외여행이라는 설렘에 하루에 빙수를 100개도 넘게 만들어도 힘든 줄 모르던 그때, 그렇게 불행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나는 가끔 불행은 중력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처 내게 다가온 불행의 실체를 알기도 전에 불행은 이미 내 주위 공기를 무겁게 하고, 나를 불행의 한가운데로 잡아당긴다. 


그날도 그랬다. 알바를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집은 평소보다 뭔가 조금 어두워 보였고,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TV가 꺼져있는 거실에서 서로 다른 곳을 보며 한숨을 쉬고 계시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집에 무언가 잘못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전말은 이러했다. 원래 다니시던 나름 큰 회사에서 쫓기듯 나온 아버지는 3개월의 휴식 기간을 견디지 못하셨고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이란 이미지를 견디지 못한 것이리라) 일부 금액을 투자하며 지인의 작은 회사에 입사해 새로운 일을 하고 계셨다.


새로운 사업을 하던 그 지인의 회사는 자금 융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버지는 기존보다 훨씬 작은 보수를 받아야 했지만 추진 중인 사업이 수익이 날 경우 스탁 옵션 형식으로 돈을 받기로 했기에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 회사는 생각보다 자금 상황이 훨씬 엉망진창인 회사였고, 여러 사람들의 투자금으로 대출금을 막기가 더 이상 어려워지자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그 업체 사장이 회사 파산 신청을 할 테니 투자금은 돌려줄 수 없다며 나자빠진 것이다.


꽤나 큰 금액이었던 투자금을 하나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물론, 패배했다는, 그리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은 은퇴할 나이가 점점 다가오던 아버지에게는 큰 타격이었던지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허리 디스크가 터져 우리 가족에게 그가 가장 필요한 시점에 아버지는 허리 수술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와 아머니의 시간이었다.

돈을 떼어먹겠다는 그들에게 돈을 달라고 설득, 아니 구걸을 하기 위해 매일 같이 회사와 업체 사장의 집을 찾아갔다.


그 사기꾼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 대표와 이사에게 고소하겠다고 협박도 하고 (물론 그들은 당당하게 그러라고 대답했다), 애걸복걸도 했다. 


두 동생을 위해 대학도 포기하고 20살부터 남대문에서 옷 장사를 했던 나의 강한 어머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도 마음이 아팠지만, 내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간이 사무실에 초라하게 놓아져 있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그는 에어컨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이 초라한 자리에 앉아 우리에게 이 상황을 전하기 전까지 얼마나 큰 고민과 후회를 했을까...


업체 사장의 집에 찾아가도 별 다를 것은 없었다. 사장 명의의 신축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모님은 사장과 별거 중이니 이딴 일로 찾아오지 말라며 우리 모자를 단지 내에도 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를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그녀를 볼 수 없는 아파트 정문의 게이트 앞에서, 내 어머니는 다시 한번 울었고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멀뚱히 서 있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한 달 내내 이 돈을 받기 위한 우리 모자의 일상은 반복됐다.


내가 알바를 가는 날엔 알바 가기 전 일찍, 알바를 가지 않는 날엔 조금 늦은 오후에 그곳에 찾아가며 나는 왜 돈을 빌린 이들이 돈을 돌려 달라는 우리에게 짜증과 경멸이 섞인 시선을 던지는지, 그리고 한때 나의 어머니를 누님이라 부르던, 아버지의 동업자이자 친우였던 그는 왜 내 아버지의 건강을 한 번도 묻지 않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땀과 함께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더위 속에서 나름 남자라는 이유로 어머니를 혼자 보낼 수 없어 이름 모를 아파트 게이트 앞에서 한 번만 얼굴보고 얘기하자고, 한 번만 문을 열어달라고 애걸하는 자기 자식 또래의 어린 청년에게 한 번 더 찾아오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는 그녀의 매정함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뿐인 외동아들 잘 키워보겠다고 강남 학원에, 재수 학원에, 대학 학비까지 아낌 없이 대주며 남 부럽지 않게 키웠던 아들이 자신의 실책으로 인해  한 여름에 돈을 받으러 다니는 것을 누워서 볼 수 밖에 없는 내 아버지의 슬픔과 무력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찐득한 더위가 태풍과 함께 조금은 씻겨 나갈 때쯤 아버지의 수술은 끝났고, 압류와 소송은 시작되었으며, 나는 친구와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들도 나름의 지킬 것이 있기에 차갑고 매정해져야 했음을, 사회에서 친구를 포함한 인간관계는 내 자신의 영달에 비해선 보잘것없음을, 어린 나이는 보호막이 아닌 약점일 뿐임을 조금씩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후로 나는 조금은 차갑고, 덜 상처 받고, 누군가에게 덜 마음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항상 바람 부는 광야에서 내 두 다리로 단단히 서서 고난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견뎌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런 어른으로 사는 게 생각보다 훨씬 외롭고 지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꿈이 생겼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남을 배신하고 편법과 속임수를 당연한 듯이 저지르는. 그러고도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그게 '똑똑한' 일이라고 말하는 어른이 아닌, 편법과 속임수를 쓰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고 나보다 어리고 약한 누군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렇게 4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힘든 취준 끝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대기업에 취직했으며, 파리에서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났고, 30대가 되었다.


31살이라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30대라는 강을 확실히 건너버린 나이 앞에서 나는 과연 25살의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는지, 또는 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는 과연 내가 되고 싶었던 좋은 어른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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