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쓰는 중이다. 뭐든.
돈 없는 대학생 시절에도 나는 동기 언니와 같이 도서관을 찾곤 했다.
그러다 벽보에 붙은 도서 학습 프로그램을 보고서 책을 펼치고, 글을 읽는 기분이 좋아서 항시 참여 하곤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실습을 마치고 친구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받았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셨습니다. 20만 원을 받으실 계좌와 성함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메일로 보낸 '자유론'의 서평 글이 심사를 거쳐 촤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그저
에이 설마 되겠어?
싶은 생각과
나의 덕후 기질을 마음껏 뽐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상금을 받는 건 내 시나리오에 없던 일이었는데 내가 애정하는 걸로 용돈을 번거다!
나에겐 해소의 욕구만 있었을 뿐, 인정 욕구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후로는 글과 책이 점점 더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마음을 콩닥콩닥하게 만들어 줄 책을 찾아 열심히 도서관을 다니게 되었다.
오늘의 나와 과거에 내가 만든 쓰임새의 글을 한 명의 독자로서 탐독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아직 나에게 찾아오지 않은 우연 혹은 필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빠의 제안으로 자본주의의 영향과 나의 풍부한 경험을 위해 강릉에서 약 3개월 간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전 나의 첫 알바처는 한 관광지의 대형 카페였다.
지원하는 사람들 중 내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었고, 제과제빵 학과를 나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면접 당시 우리 집은 대형카페와 1시간이 떨러 진 거리에 있었다.
점장님이 내게 질문했다
"거리가 집에서 꽤 멀죠? 근무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나의 대답은
"저는 대학 다닐 때 2시간 거리를 통학했습니다! 지각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붙는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통보되었고 난 결국 그곳에 얼떨결에 붙어버렸다.
정말이지 첫 근무날에는 죽을 것 같았다. 너무너무 긴장되었고 내가 실수를 하진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결과를 낳았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나의 하루에는 변수가 없었다.
정해진 시나리오라도 있는 거 마냥
예상 그대로 실수에 실수를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당연하다. 경험이 없는 무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였다.
그렇게 나는 약속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곳을 자의로 나오게 되었다.
너무나 속상했지만 나를 위해 했던 최선의 선택이었고, 세상의 이치였다.
그때의 기억을 뒤로 한채 강릉으로 일을 하러 왔다. 나의 몇 친구들은
"거기까지 알바 하러가?"
"너 인스타에 강릉 가는 거 올라왔을때 깜짝 놀랐어. 좀 의외였달까" 라고 말했다.
난 오히려 그 말들이 의외였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돈 벌러 타지에 온 알바생일 뿐이다.
내가 원한 선택이고, 여행이자, 어쩌면 남다른 길을 가려는 것일 수 있다.
허나 분명한건, 나의 선택을 믿기에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 임시독립을 해보고.싶었던 거다.
이번에 내가 하게 될 일은 음식을 손님에게 갖다주고, 홀을 관리하는 업무이다.
두려운 기억은 잠시 내려두고,
풋풋한 마음으로 발자취를 남기려 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책과 영화를 찾아 쉬는 날마다 일정을 홀로 잡는다.
내 마음을 위해서. 그 무엇도 아닌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돌아다닌다.
굳이 무언가를 쟁취하려 노력하기 보단
공백을 채워줄 " " 속의 !를 기다린다.
어느 날은 침대에서, 또 어느 날은 독립영화 극장에서 만나고 어제는 아주 조용한 공간샘 스터디 카페에서 만났다. 그때의 나는 꽤 행복하고 평온했더라.
좋아하는 책에 메모지를 붙이며 쓰는 생각이 좋다. 그리고 메모장에 쓰이는 생각이 좋다.
나의 시간에는 여전히 공백이 있지만 공백을 느끼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리프레쉬를 하는 중이다. 그리고 최대한 오랜 시간 길고 긴 메모의 마라톤을 지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