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이 있는 곳에서
강릉에 오기 전
닭볶음탕을 배달로 시킨 날이 떠오른다.
저녁이 다되도록 주말 없이 뛰어 일하시는 어머니와, 출장을 가신 아버지와, 지쳐있는 오빠를 위해 이 날도 배달어플을 열었던 날이었다.
집에 있을 때 30일 중 못해도 5번은 온라인으로 저녁을 주문해 먹었다. 간편하게 손가락 터치만 두들기면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다.
사실 나는 배달어플에 따라오는 배달비가 너무나 아깝다. 그래도 가족이 좋아하니까, 라며 내 생각을 잠시 미뤄두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식당은 포장 손님이 많다.
배달로 시키는 사람이 있지만 여전히 포장이 조금 더 많다.
일을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음식을 바로 포장해 오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걸.
나만 느낀 게 아니구나,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후줄근한 운동복에 모자를 쓰고 편한 옷차림으로 직접 들고 온 가방에 음식을 포장해 가는 손님이 가끔 부럽다.
가게 알바생인 나는 고모, 고모부의 손을 거쳐 함께 포장되는 음식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한다.
동시에 바라기도 했다. 언제 만나서 이야기해도 편안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나름대로 옷을 꾸며 입고 함께 밥 한 끼를 먹으러 가는 것을.
우리는 언제부터 잃어버리는 걸 아까워하지 않고, 소멸되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을까.
점점 배달 어플을 쓰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걸 안다.
나도 사람인지라 간혹 편리함을 추구하고 싶어지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TV 리모컨 잡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소파에 누워 TV 보는 걸 포기하고 자 버릴 때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도 배달 어플을 자주 이용하는 중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배달 어플이 인기가 많아진 후로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일이 줄었다.
그러나 나는 직접 나가서 먹는 것이 조금 더 좋다.
번거롭지만 반가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며 다시 내 일을 반복한다.
그때 우리 집에서 주문한 식당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다음엔 닭볶음탕을 주문한 가게에
번거로운 준비를 하며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싶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주문한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 사장님의 취향이 담긴 작은 음악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기다리고 싶다.
나는 번거로운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알바를 끝내고 본집에 돌아가는 날에는 아직 쓰지 못한 민생회복소비쿠폰으로 가족들과 분주한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더욱이 그리운 날을 오늘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