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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Sep 01. 2021

아버지

오래 사세요

마곡사의 하늘

 남자는 가난했고, 발 디딜 틈 없는 자본주의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바쁘게 톱니바퀴를 돌리느라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돈을 모았다. 그때 부러진 손가락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아직도 삐뚜룸하다. 그러나 남자는 어리석은 인류에 불과했으므로 제가 가진 것이 밑 빠진 독인 줄도 모르고 품고 살았던 것이다. 정작 그 안에 채워진 건 마음의 빈곤이었다. 두려울 것 없던 청춘은 이제 죽음이란 공포를 목에 맨 채 세월에 고개를 조아린다. 그의 삶에도 분명 희망이란 싹이 자라났으나, 그는 그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고 살았다. 무조건 대지 안에 황금을 메우고 커다란 건물을 세워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어미와 아비의 노고가 컸다. 그들은 그에게 손에 쥔 것이 많아야만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가르쳤다. 교묘하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뽑아갔다. 그는 이젠 쥘 게 없어 바짝 말라 나뭇가지 같은 손아귀에 이기심을 쥐고 버틴다. 그것을 생명이라 여긴다. 더 이상 풍성해지지 않고 곪아 썩어가는 것들을 생명이라 굳게 믿는다. 



해탈: 자유 또는 해방. 몸과 마음의 고뇌와 속박의 원인인 번뇌로부터 해방되는 것, 또는 벗어난 상태. 불교에서는 고뇌를 낳는 근본으로서의 무명을 멸함으로써 해탈의 도가 달성된다고 한다.



 지난주, 가족들과 찾았던 공주 마곡사 극락교에는 많은 이들이 남기고 간 황금빛 소원지들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은 바람이 부드럽고 볕이 따뜻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걷는 걸 힘들어했다. 깡 마른 다리는 짧은 거리를 걸을 때에만 제 역할을 다했고, 그 이상으로는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은 것처럼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하루 종일 사막을 걸어온 사람처럼 목이 마른 얼굴을 하고서. 하지만 절을 나오기 전에 소원지에 소원을 적자고 했다. 반짝이는 금빛으로 칠해진 나뭇잎 모양의 종이 조각 하나가 5천 원이나 하는 것을. 아버지에게도 소원이 생긴 게 기쁘면서도 안쓰러웠다. 여태 아버지는 어떤 소원을 빌며 살아왔지.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지난 세월을 원망하거나 후회할까. 혹은 억울해서 가슴을 치고 싶을까. 그가 언제부터 긍정의 힘을 믿었는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 신을 믿었는지 알 수 없다. 신의 존재는 명백한 난제다. 믿는 이들에게는 희망으로 존재하고 절망한 이들에게 원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 거취를 알 수 없는 그들의 역할일 터다. 오층 석탑 앞에 앉아 있던 아버지도 극락왕생을 꿈꾸고 있었을까. 해탈문을 지나면서 아버지의 번민과 후회도 조금은 사그라들었을까. 문 하나 지난다고 삶이 바뀌는 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푸른 청춘을 물질적인 욕망을 이루는 데에 사용했다면 이제는 삶의 연장선을 위해 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평범한 인간에게 ‘무소유’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욕심을 가져야 삶을 살아갈 활력을 찾을 수 있으니까. 거기에 삶 전체, 나 자신을 좀먹혀서 문제인 것이다. 끝내 아버지가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실체 없는 욕심일까. 아버지는 돈이 있어야만 군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정에서 돈을 쥔 자신이 신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그게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여기고 있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했다. 속으로 그는 억울하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어리석다 생각하면서도 연민한다. 불쌍한 남자. 그의 무지는 그가 자라온 환경으로부터 세습되어 온 결과물이다. 그의 가족들 그 누구도 그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도리만 강요했다. 도리를 다하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라 세뇌했다. 한 편으로 그를 안쓰럽다 느끼는 건, 그에게 닥쳐온 불행이 과거에 저질렀던 불찰들로부터 비롯됐다고 치부하는 나와 가족들 때문이다. 신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그들은 아버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는 걸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비이면서도 좋은 아비가 아니었다. 그의 인생에 술은 떼어놓을 수 없는 친우이자 적이었고 그런 친우를 등에 업은 남자는 가정에서 폭군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가족애라는 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주 울었다. 나와 동생은 아버지를 동정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면서도 존경하지 않는다. 그는 자식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올바른 관념을 갖지 못했고, 반대의 경우를 몸소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을 보며 자란 나와 동생은 나름 바르게 자랐다. 그것도 아버지 덕분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올려야 할까. 무지한 나목의 뿌리가 이 세대에서 단절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그를 닮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는 아직도 물질적인 욕심과 군림하고자 하는 고집을 버리지 못했다. 아마 평생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게 아버지의 자존심이고 자긍심이니까. 나는 아버지가 병들었음에도 슬픔을 느끼지 않는 나 자신을 의심하고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모른다. 엄마는 안다.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나에게 아버지는 불완전한 가족 같기도 하고 완벽한 타인 같기도 하다.



 그는 분명 나을 것이다. 징그러운 세포를 몸 안에서 녹여내고 그는 악착같이 버틸 것이다. 여태 그렇게 살아왔듯이, 그는 불친절하고 너저분하게 제2의 삶을 살아낼 것이다. 나는 그의 생명이 연장되기만을 바란다. 그가 어떻게든 살아내기만을 바란다. 정반대의 경우를 상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의 피붙이인 내가, 그와 같은 성을 쓰고 있는 내가 어떻게 증오의 편에 설 수 있을까. 가족이란 알 수 없다. 그를 응원하고 사랑한다. 모자란 남자. 아아. 갈피를 잡지 못한 마음이 아버지를 종종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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