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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Jun 01. 2022

길가메시, 한국에서 정의를 구현하다

<범죄도시 2>


*길가메시는 영화 <이터널스>에서 마동석이 맡은 캐릭터 이름이다.



범죄도시 2가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한다. 2017년 상영했던 범죄도시 또한 저예산 영화임에 불구하고 관객수 688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요즘 <나의 해방 일지>로 핫해진 손석구가 빌런으로 등장하니 입소문과 맞물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하러 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강해상에 비하면 장첸은 순둥이’ 였다는 평을 읽고 궁금해 밤 시간대로 티켓을 예매해 보고 왔다. 장첸이 약과였다는 평과 달리 영화는 15세 등급을 달고 관객들을 찾아왔다. 글쎄, 15세라기엔 피가 낭자했던 거 같은데…. 어쨌든 슬슬 무더워지기 시작할 무렵 포문을 연 범죄도시 2, 타이밍 잘 잡았다. 여름에는 이렇게 머리 쓰지 않고 꽝꽝 때려 박는 영화가 제일이다. 


범죄도시 1은 2007년 서울 가리봉동에서 활동하던 조선족 조직폭력배를 소탕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마동석은 범죄도시 8까지 시리즈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주인공 마석도 형사의 모티브가 된 윤석호 형사가 겪은 이야기에 픽션을 섞어 스토리가 구상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범죄도시가 저예산 영화인 이유는 대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중심으로 캐스팅해 촬영을 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시리즈의 흥행이 지속될수록 그늘에 가려졌던 배우들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 배우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게 나오는….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영화의 포인트들을 정리해보겠다. 


1. 여성 혐오 없음. 

범죄도시 2는 흔한 조폭, 수사물이라면 필수로 등장하는 여성 혐오적 요소가 없다. 이유는, 여자가 나오지 않아서...(?) 전작에서 금천서 형사들이 장첸 패거리들을 본격적으로 뒤쫓는 계기가 된 유흥주점 팔 절단 사건. 주인공 마석도가 그곳에서 술을 진탕 먹고 기절해 있는 사이 장첸 일당이 방문해 여성 종업원들을 희롱하고 가드의 팔을 도끼로 사정없이 잘라 버린다. 그 사건 외에도 장첸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여성에게 추행, 폭력을 가하는 장면을 열심히 보여준다. 이때만 해도 범죄도시는 흔히 말하는 남성 중심적 '알탕 영화'였다. 물론 2도 남자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되기 때문에 '알탕 영화'라는 타이틀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혐오적인 부분이 조금은 약해졌다. 이것이 제작자의 의도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예의 상 여성을 한 명 끼워 넣었다는 전제 하에  2에 등장하는 단 한 명의 여성 캐릭터는 그나마 주체성을 갖고 있다. 짧은 분량이지만 매력적으로 풀어내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은 있었어도 불편함은 없었다. 앞으로 선보일 많은 범죄도시 시리즈 중 과연 피해자가 아닌 여성은 언제 등장할 것인가. 궁금하다. 작게나마 다음 편에는 마석도 형사를 돕는 인물로 여성 경찰 캐릭터가 투입되기를 바라본다.


2. 빌런.

범죄도시의 훌륭한 점은 악당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고 그들의 악행 위주로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그들은 극악무도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신체 절단, 장기 매매, 납치 및 협박, 갈취까지 행하다 마지막에 처참히 마석도 형사의 주먹에 피떡이 되도록 맞고 쓰러진다. 관객은 그들이 왜, 어쩌다 악의 나락으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다. 알 필요도 없다. 영화는 관객이 빌런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철저히 샌드백 역할에 알맞도록 설계한다. 그들에게 죄의식 따위는 없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손에 쉼 없이 피를 묻힌다. 그들은 최후까지 용서를 구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에도 마석도에게 복수를 예고하거나 화가 치밀어 악을 질러댄다. 물론, 마석도는 그들이 끝까지 말을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한 방에 통쾌함도 배가 된다.


+) 손석구. 그의 이름을 내가 인지하기 시작한 건 <60일 지정 생존자>에서였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비서실장으로 등장해 주인공에 대한 충언과 신뢰를 주는 일명 '킹메이커' 역할이었다. 정치 드라마인 데다 캐릭터 자체가 톡톡 쏘는 성격이라 어려운 정치 용어들을 빠르고 똑부러지게 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눈에 띌 정도로 훌륭했다. 그 뒤로 <멜로가 체질>, <D.P>까지 본의 아니게 그가 나온 드라마들을 대부분 본 듯하다. 나, 손석구 좋아했나? 나는 사실 부리부리한 눈매의 배우들을 좋아해서 손석구를 볼 때마다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남자를 드라마에서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간다. 이상하게....... 매력이 있다. 뭐, 사실 그의 눈매가 악역을 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바 ‘강해상’이란 인물 또한 어색함이 없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 나가는 강해상은 이상할 정도로 돈에 집착하고 자비가 없었다. 어느 한 감정이 결여된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감독 말로는 그가 마약 중독자라고 한다.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음.) 아니, 마약 중독자 가슴이 그렇게 커도 되는 건가. 범죄도시 3 빌런은 우리에게 ‘비밀의 숲’ 조신한 남검사 서동재로 익숙한 이준혁이 맡았다. 조신한 그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짜릿하다. 파이팅.


3. 유머 코드 잘 맞아서 당황스러울 지경.

범죄도시 1은 유머러스함보단 범죄 조직의 어둡고 추악한 이면 위주로 다뤄졌다. 더군다나 어디서 진짜 조선족 범죄 조직원을 데려온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실감 나는 배우들의 비주얼과 연기가 극의 현실성을 살렸다. 하지만 2는 '전 반장과 마 형사의 얼렁뚱땅 베트남 여행'으로 시작하며 코믹적인 요소들을 강조했다. 군데군데 웃음 코드들을 대놓고 심어두었다. 오죽하면 아직도 그 장면만 이야기하면 키득키득 웃음이 날 정도일까. 확실히 무게감을 덜어 영화에 대한 부담감을 없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 최귀화와 박지환의 연기가 인상 깊었다. 특히 전작 '이수파'의 보스 '장이수'로 열연했던 박지환은 마동석의 말 한마디에 2에 합류하게 되었고, 역시나 존재감을 확실히 증명했다. 전편에 비해 대사와 스토리가 단순해졌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열대야가 스멀스멀 고개를 내미는 요즘 같은 계절에 속 시원히 보고 나올 수 있는 영화로서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마동석하면 애드리브 천재로 유명하다. 영화 <베테랑>의 아트박스 사장은 물론 전편에서 '어, 싱글이야.'라는 대사로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심하고 있다가 터진다. 자기 전에 누워서 곱씹다가도 터진다. 


범죄도시 2 결과에 따라 3과 4의 개봉 시기도 앞당겨질 거라는 감독의 인터뷰 내용을 얼핏 보았다. 후속 편은 얼마나 시원하게 악당을 징벌할지 기대된다. 단, 시대 변화에 따라 제작자들의 시선도 변하길 바란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으로 끝내주는 권선징악을 보고 싶을 때, 주인공 죽을 걱정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보면 좋을 영화. 범죄도시 2. 음, 더 짜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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