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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Mar 04. 2022

당신은, 소년범을 혐오합니까?

넷플릭스 <소년심판>



<소년심판>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을 당시, 나를 단숨에 사로잡은 대사가 있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

.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그 애의 연갈색 파마머리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풍겼다. 그 애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야자를 빠졌다. 그 애는 6교시에 책상 위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그 뒤에 숨어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마스카라를 했다. 그런 아이들이 몇 있었다.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반에 들어가도 그런 부류의 아이들은 꼭 있었다. 누구는 돈을 빼앗겼다고 하고, 누구는 체육복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했다고들 했다. 어떤 언니에게는 뺨을 맞았다 하고 어떤 언니들에게는 돌아가며 욕을 먹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제 나이에 맞지 않는, 일종의 제도를 거스르는 아이들을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가정이, 그리고 환경이 소년에게 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나 다양한 선택지 중 범죄를 택한 건 결국 소년입니다.”


범죄는 그들의 선택이다. 그런 그들에게 엄중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러나 <소년심판>은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정확히 짚어준다. 사회, 가정의 무관심과 허술한 시스템. 아이들을 둘러싼 주변이 행하는 무관심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보호 센터의 열악한 환경, 보호소년들을 관리하는 감독관들의 인력 부족 등의 미흡한 시스템을 언급하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가정폭력과 집단 성폭행, 살인, 시험지 유출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현실을 보여주고 방향을 제시한다. 극본을 쓴 김민석 작가가 4년 동안 준비를 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사회가, 국가가 간과한 부분을 예리하게 통찰했다. 작품의 주제가 명확하고 민감한 만큼 자칫 균형을 잃으면 소년 가해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기거나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었을 테지만, 중립을 잃지 않고 여러 측면을 비추었다. 게다가 작품은 단 한 번도 피해자를 잊지 않는다. 법원이 촉법소년 편을 들어주면 피해자의 편은 누가 들어주는가? 반문하며 법관이 지켜야 할 선, 의무를 수면 밖으로 꺼낸다. 그간 죄질에 맞지 않는 판결을 받은 이들을 많이 봤다.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는 이유로, 초범이라는 이유로, 술에 너무 취해 있어서, 나이가 어려서. 그러한 이유로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를 주어도 되는 걸까. 그들 앞 정의의 여신상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소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법원은 더욱 냉엄해야 하며 면죄부를 쥐여줘선 안 된다.



극 중 심은석이 말한다.


“보여 줘야죠. 법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가르쳐야죠. 사람을 해하면,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자기 새끼 아깝다고 부모가 감싸고 돈다면 국가가, 법원이 제대로 나서야죠.”



* 촉법소년: 형벌 법령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다.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

작품 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심은석(김혜수). 지방법원 소년부에 부임한 판사로서 소년범들을 항상 냉철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재판에 임할 때는 항상 피해자 사진을 앞에 두고 판결하는, 항상 피해자의 시선에서 가해자들을 바라보고 범죄와 처벌을 결정하는 직업의식이 투철한 판사다. 이 작품에는 심은석을 포함해 총 네 명의 판사가 등장한다. 각자의 개성과 가치관이 뚜렷하다. 거기서 심은석과 정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이 차태주(김무열) 판사다. 그는 과거 소년원 출신으로 항상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주장한다. 처음에는 소년들에게 유독 차갑게 구는 심은석과 갈등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이해한다. 이 둘의 첫 만남도 상당히 인상 깊다. 그가 심은석이라는 이름만 듣고 남자인 줄 알았다며 오해한 것을 사과하는데, 심은석은 “남자 판사가 아니라 실망한 건 아니고?” 라며 따갑게 쏘아붙인다. 드라마는 초장부터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여 대본을 써 내려갔는지 보여준다. 과거 김명민, 이선균이나 남궁민 같은 배우들에게 주어졌던 냉혹하지만 유능한 선임 캐릭터를 김혜수에게. 박은빈, 한지민, 박민영과 같은 배우들에게 주어졌던 인정 많고 현명한 후임 캐릭터를 김무열에게 부여하여 작품 자체를 신선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이렇게 은근히 획일화되어 있던 남녀 캐릭터 자체를 뒤바꾸며 차별로부터 한 발자국 멀어지는 드라마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 반가울 따름이다.


부장 판사인 강원중(이성민)과 나근희(이정은)도 임팩트가 강했다. 강원중은 여기저기 사건을 들쑤시고 다니거나 부장 판사들 앞에서 맞는 말을 일삼는 심은석 때문에 화를 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지만, 사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청소년을 위해 일을 하는 판사 중 하나였다. 정계 입문 제의를 받으면서 그의 견고하고도 따스했던 직업윤리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는 게 보여 안타까웠다. 그에게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안 뒤로, 그의 갈등과 선택이 납득되기도 했고. 강원중과 차태주의 관계성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강원중이 판사 생활을 하며 소년들에게 기대했던 갱생의 가능성. 그 자체가 바로 차태주일지도. 또 다른 심은석의 상사 나근희 부장 판사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난 소년재판은 속도전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법정을 운용하며 신속히 일을 처리하려는 인물로 사사건건 심은석과 대립하며 극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하지만 실제 전국 소년부 판사의 수는 약 20여 명이라고 한다. 판사 한 명 당 배당받는 사건의 수는 증가하는 추세고 사건을 처리할 인력은 충원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작가가 왜 나근희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거기다 소년부 판사는 재판이 종결되면 끝인 형사, 민사 판사와 달리 재판 후까지 책임져야 한다. 현역 법관과 판사들의 업무량이 과중되고 업무의 폭이 방대한 건 사실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는 뜻도 돼.”


정의가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대신 우리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될 때까지, 우리는 과연 옳았는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소년범을 혐오하는가? 예, 혐오합니다. 죄짓지 마세요.


<소년심판>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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