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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 Dec 20. 2021

이래도 아기 거미를 안 사랑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지난주 금요일, 삼월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보고 왔다. 나는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 큰 관심이 없었고, 스파이더맨을 처음 접한 건 톰 홀랜드가 피터 파커로 등장한 <스파이더맨 홈 커밍>이었는데 실상 말 많고 산만한 어린 히어로에게 별 다른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하물며 마블 영화도 띄엄띄엄 봤던지라 이번 스파이더맨은 나에게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였다. 반면 삼월은 어릴 적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을 아버지와 극장에 가서 봤으며 그 뒤로 이어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쭉 섭렵했다고 한다. 참고로 스파이더맨 첫 번째 이야기는 2002년에 개봉했다. 초딩 삼월이 자라 어느덧 서른을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도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스파이더맨은 정말 우리의 다정한 이웃.....



스토리의 중심 사건 발단은 이전 작품 파 프롬 홈의 빌런이었던 미스테리오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폭로하며 시작된다. 사실 나는 미스테리오가 누군지 모른다. 듣기로는 이미지 메이킹을 상당히 잘해서 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인물인데, 스파이더맨이 그를 처치하면서 오히려 스파이더맨이 나쁜 놈으로 몰린 것이다. 오프닝부터 혼돈의 도가니였다. 정체가 탄로 난 피터는 모두의 표적이 된다. 순식간에 두터워진 편견의 벽이 피터와 주변 인물들까지 괴롭힌다. 이들의 안전과 일상까지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르자 피터는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잊게 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다 주문이 꼬여버린 것이 화근이 되어 피터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차원의 모든 인물들을 불러들이게 된다.


이 사실을 인지했을 때, 그들을 모두 본래의 차원으로 돌려보냈으면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 것을!


중반부만 해도 나는 피터가 답답했다. 그들에게도 갱생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피터에게 닥터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원래부터 죽을 운명이었다고. 나도 동의했다. 빌런들의 사정이 딱하긴 했다. 그들은 자의적으로 악당이 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떤 사고가 발생했고, 그것이 그들을 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악행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던가.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나는 피터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기로 했다. 그게 스파이더맨이었다. 피터 파커라는 인물 자체가 그렇다. 세계관에서는 이 인물에게 가난한 가정환경, 가족의 부재, 따돌림 등 온갖 불운과 불행을 치렁치렁 달아준다. 그러나 그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서사를 빌런에게서 흔히 봐 왔다. '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 없었어. 세상이 날 이렇게 만든 거지. 죽어라 나를 미워하는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니? 그래서 난 악독해진 거야.' 그러나 피터는 끝까지 선(善)을 잃지 않는다. 우리의 지구라는 현실, 우리의 세계관은 너무도 혹독하고 잔악하지 않는가. 이 세계의 캐릭터들 일부는 도의를 망각하고 정의를 우습게 여긴다. 엇나가라고 주문을 거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꼿꼿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선함은 몇 번이나 짓밟힌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 선함을 잃지 않는 게 스파이더맨의 본질이 아닐까. '그럼에도'라는 말이 참 중요하다. 피터는 그럼에도 인간을 믿고 그럼에도 인간을 돕고 그럼에도 인간을 지킨다. 다른 어벤저스 히어로들이 악당을 무찌르는 영웅이라면, 스파이더맨은 사람을 돕는 영웅이라는 점이 스파이더맨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동안  번째 스파이더맨 캐릭터에 대한 비판이 있던 걸로 안다. 온갖 사고는  치고 다니는 철부지 고등학생 히어로. 뒷수습은 유사 아버지 같은 토니 스타크의 몫이고..... 그러니까, 이전 스파이더맨들이 그들이 지닌  힘에 상응하는  책임을 감내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 아마 내가 스파이더맨  커밍을 보고도 스파이더맨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이유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어느새 토니 같은 염세적인 어른이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심지어  웨이  중반부까지도  사고뭉치, 쯧쯧... 하며 혀를 찼으니 말이다. 그런데 후반부 영화는  힘의 무게를  배는 키워서 작고 어린 피터 어깨에 , ,  얹어주었고 나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우리의 영웅을 잊지 못해 다음의 피터 파커도 보러 가게  것이다.


시리즈를 다 보고 관람할걸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벼락치기하듯 시리즈를 다 보고 갔더라도 그 속에 숨어있는 작은 대사나 표정의 이유들을 알 수는 있었겠지만 오랜 팬들이 느끼는 벅차오름까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근 20년간 스파이더맨을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연말은 해리포터 대신 스파이더맨 보면서 보내야겠다. 기다려라, 거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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