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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리기

'따거' 주윤발에게 배운 근성

느리더라도 한 발, 한 발 성장하는 러너가 될 수 있길

by 정진영
photo_2024-11-04_23-19-07.jpg 주로에서

"마라톤을 한 지 이제 7년입니다. 저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살고 있어요. 그 챕터에서 저는 7살입니다."


지난해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주윤발은 이렇게 말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하게 돼 한국을 찾은 그이지만, 주윤발은 이제 "배우로서 자신을 원하는 사람이 그다지 있을지 모르겠다"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주윤발은 유명한 러닝계 인사다. 지난해 68세의 나이로 홍콩 주하이-마카오 대교 하프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21.0975㎞를 완주한 그는 지난 1월에도 또 한 번 하프 마라톤을 뛰어냈다. 한국 나이 칠순에 이뤄낸 성취다.

부산에 있는 동안에도 주윤발은 아침마다 해운대에서 조깅을 했다. 뛰다가 자신을 알아 보는 시민이 있으면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어준 것으로 알려진다. 영화 '영웅본색'으로 아시아를 쥐락펴락 했던 스타라는 무게는 내려놓고 정말 자연인이자 러너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거(큰 형을 의미하는 중국어 '따 그어(大哥)'와 주윤발의 현지 발음 저우룬파(周润发)의 이름 끝 글자를 합친 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 역시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면 꼭 근처 조깅 코스를 미리 알아보곤 한다. 달리는 루틴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새로운 지역을 두 발로 누벼보고 싶은 욕심의 발현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파거'의 "7살" 발언도 이해된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와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것은 앉아서 머리만 굴리던 인간이 몸을 굴리기 시작하면서 마주한 변화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photo_2024-11-04_23-18-55.jpg 어떤 운동이든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고 늘려나간다는 데서 비슷한 점이 있다

몸을 쓴다는 감각은 정말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여러 운동에 관심이 생겨 필라테스, 발레, 웨이트 등을 했는데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다. 육체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고통. 그건 야생에서 생존에 내몰릴 일이 좀처럼 없는 현대인이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운동량이 부족한 인간이었느냐 하면 한 번은 웨이트를 하다 토를 한 적이 있을 정도다. 트레이너 선생님의 말로 객관적으로 물이한 운동량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정도 운동 강도도 버텨내기 어려울 정도의 몸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운동이란 게 아주 재미있다. 문제집을 계속 풀면 문제풀이 능력이 향상되는 것처럼 몸도 그렇다. 아니, 몸의 반응은 더 직선적이다. 입력값을 넣으면 그대로 출력값이 나온다. 한 러너는 "일이나 인생이 달리기만 같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운동만큼 운이 작용할 요소가 적은 것도 없다.


그것이 너무 귀찮고 힘들어도 운동화를 신고 나가게 되는 이유 같다. 일단 힘들어도 한 시간, 두 시간씩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하고 의욕이 생긴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운동을 하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돼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의사들은 우울증 치료를 위해 운동을 병행할 것을 추천한다. 한만큼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변화한다는 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하면 할수록 활력이 생기니 다른 일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달리기 5년차. 그럼 나는 이제 5살 정도가 됐다고 봐도 될까. '파거' 주윤발은 첫 하프 마라톤에서 규정 시간을 불과 2분여 남기고 결승선에 당도했다고 한다. 앰뷸런스를 바로 뒤에 두고 결승선을 통과해 본 입장에서 얼마나 마음이 조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근성이 멋지다. 마라톤 7년차엔 나도 더욱 근성있는 러너가 돼 있을 수 있길. 그리고 계속 러너로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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