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 있을지도 모르는 세렝게티 동물의 ’진짜 이름‘
처음 탄자니아에 촬영하러 왔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동물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 힘들었다. 라이언, 엘리펀트, 레오파드, 여기까진 쉬운데 ‘누우’ 이렇게 간단한 걸 와일드비스트라고 불러야 하는 것부터 슬슬 혀에 제동이 걸렸다. 코뿔소가 라이노, 기린이 지라프, 얼룩말이 지브라.. 기린이랑 얼룩말은 생긴 거부터 너무나도 다른데 촬영 현장에서는 마음이 급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헷갈리는지.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이 생긴 뿔 달린 사슴들도 뿔 모양과 털색에 따라 톰슨가젤, 그랜드가젤, 임팔라, 토피, 워터벅, 하트비스트 등등 다양해서 이를 구분하는 것도 오래 걸렸다. 우리가 세렝게티에서 흔히 사슴이라고 생각하는 동물들은 실제로는 영양류라고 하던데, 난 사슴과 영양을 영원히 구별 못할 거 같다.
모든 동물을 that! that one! 이러던 과도기를 거쳐 스와힐리어로 나름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게 됐을 무렵 같이 촬영을 다니던 운전수들이 자연스럽게 현지어로 동물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스와힐리어로 치타는 두마, 표범은 츄이, 코끼리는 은도부, 하마는 키보코, 버팔로는 냐띠다. 하나같이 낯선 이름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부를수록 동물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전무한데 내가 현지어로 부르면 나한테도 잘해줄 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치타가 사는 곳에서 치타가 ‘두마’라고 불리는 걸 알 때, 그래서 나도 평생 치타라고 알고 왔던 아이를 ‘두마’라고 부르게 될 때, 치타는 한층 더 가까워지고 마냥 사랑스럽고 귀엽다. 동물뿐만 아니라 탄자니아도 귀여워진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던 트위가 호텔, 템보 카페, 키보코 슈퍼마켓이 각각 기린 호텔, 코끼리 카페, 하마 슈퍼마켓이란 뜻인걸 알게 되니 그렇게 이름을 붙인 탄자니아사람들도 귀엽게 느껴져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곤 한다.
촬영을 한 지 1년쯤 지나고 나서는 운전수들끼리 사용하는 은어도 배웠다. 야생동물에 관해서는 베테랑인 운전수들과 우리끼리만 아는 단어를 쓰며 대화하니 이제는 나도 이 야생의 초원 위에서 일원이 된 기분이 든다.
운전수들이 은어를 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다른 운전수들과 무전기로 대화할 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영어가 아닌 스와힐리어를 써도 심바 같은 단어는 라이온킹 때문에 여행객들이 잘 안다. 그리고 현지 맥주 이름인 은도부(코끼리)처럼 브랜드에 자주 쓰이는 단어는 더 눈치채기 쉽다. 옆에 있다가 심바라는 단어가 들리면 관광객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어디에 사자가 있다고 하냐, 우린 언제 사자를 보냐 같은 질문을 쏟아낸다. 아직 사자를 발견하지 못한 운전수들은 그야말로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쉽게 올 수 있는 관광지도 아니다 보니 흔히 꼭 봐야 한다고 하는 ‘빅 5’ 그중에서도 사자를 보느냐 못 보느냐에 따라 여행의 성패가 갈리고 더 중요하게는 운전수들이 받는 팁의 액수도 크게 갈린다. 그래서 특히 중요한 동물들은 은어를 많이 쓴다. 세렝게티 사파리를 간다면 이제부터 소개할 단어들을 운전수들이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보시라.
운전수들 사이에서 숫사자는 ‘샤루부’라고 불린다. 샤루부는 콧수염이라는 뜻으로 사자의 갈기털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사실 세렝게티 초원에서 갈기를 흩날리는 숫사자는 생각보다 보기 힘들고 보통은 갈기를 풀밭에 비벼대며 낮잠을 자기 일쑤지만 샤루부라고 하니 무슨 족장 이름 같기도 하고 묘하게 멋져 보인다. 솔직히 듣기에는 ‘심바’보다 ‘샤루부’가 더 위엄이 느껴지는 거 같다.
새끼사자는 ‘짜파티’라고 한다. 짜파티는 음식 이름으로 우갈리와 함께 탄자니아의 주식 중 하나이다. 잘 알려진 인도음식 ‘난’처럼 얇게 펴서 부침개 크기만 하게 구운 밀가루 전병인데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커다란 반점처럼 그을린 곳이 부분 부분 있다. 새끼사자는 온몸에 갈색 반점이 있는 채로 태어나는데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몸통부터 반점이 옅어지고 다리에 조금 남아있다가 어른이 되면 전부 없어진다. 이렇게 얼룩덜룩 갈색 부분이 있는 게 비슷해서 짜파티로 불린다. 새끼사자들은 사이즈도 짜파티만 하니 정말 잘 어울리는 별칭이다.
표범과 치타를 부르는 은어는 서로 세트다. 표범은 ‘와주’, 치타는 ‘와치니’라고 불리는데 와주는 위에, 치타는 아래에(또는 바닥에)라는 뜻이다. 표범이나 치타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야생에서 둘이 발견되는 곳은 전혀 다르다. 표범은 주로 나무 위에 있는 걸 볼 수 있고 치타는 보통 나무 아래, 그러니까 바닥에서 발견된다. 표범을 발견하면 위에 있다! 라고 하고 치타를 발견하면 차에서 아래를 가리키며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게 아닐까?
좀 얄궂은 별명으로 불리는 동물도 있다. 티몬과 품바에 나오는 품바는 혹멧돼지인데 키티모토라고 불린다. 스와힐리어로 키티모토는 구운 고기, 바베큐라는 뜻이다. 아무리 보호받는 야생동물이라도 돼지는 돼지라서 먹을 걸로 보이는 걸까? 참고로 키티모토 가게는 킬리만자로 부근이 최고라고 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동물은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물론 훈련된 반려동물은 주인이 말하는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지만 탄자니아 국립공원에 있는 야생동물에겐 택도 없다. 내가 표범을 ‘레오파드’로 부르든 ‘츄이’라고 부르든 내 앞의 표범은 달라질 게 없을 거다. 하지만 내 마음은 크게 달라졌다. 눈으로만 쫓던 대상이 갑자기 마음에 와닿고 더 잘 살펴보게 되고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진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던 야생동물이 마당 앞 고양이 같은 존재로 변한다랄까. 이름은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