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의 비밀 마을 ‘키지지(kijiji)'

by 요나

‘키지지(Kijiji)’는 스와힐리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세렝게티에서 ‘키지지’에 가자고 하면 어느 ‘키지지’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딱 한 곳, 세로네라에 숨겨져 있는 단 하나의 마을을 향해 운전대를 돌린다. 이곳은 그 어느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아주아주 작은 마을이다. 세렝게티에서 나름 꽤 오래 있어야 알 수 있는 마을이라 그런 걸까? 나만 알고 있는 '비밀 아지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끝없는 지평선만 이어지는 초원을 달리다가 관목으로 가려진 좁은 길을 따라 요리조리 뚫고 들어가면 갑자기 인공적인 건물들이 나타난다. 슬레이트 지붕이 올려진 매우 낡고 빛바랜 단층 건물이 너댓 개가 있는데, 그 사이의 맨땅을 사람들이 그냥 걸어 다닌다. 방금 전까지 사자를 보고 있었는데..? 마치 웹소설 주인공처럼 이 세계에 툭 하고 떨어진 기분마저도 든다. 근처에 야생동물이 어슬렁거릴지도 모르는데 저렇게 무방비하게 다녀도 되는 건가? 너무 막무가내 아냐?! 머릿속으로는 이렇게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동물들이 잘 안 오는 걸 알지만, 저 멀리 움직이는 게 혹시 사자인가 하고 눈에 망원경을 딱 붙이고 있다가 온 나로서는 갑자기 맨눈 앞에 펼쳐진 생경한 광경에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렝게티 중심인 세로네라 지역에 있는 이 마을은 야생의 세렝게티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사람 냄새를 풍기는 곳이다.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작지만 게스트하우스부터 식당, 약국, 슈퍼마켓, 그리고 학교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세로네라에 올 때면 급한 물건은 이곳 슈퍼에서 사기도 한다. 참 아담한 사이즈면서 천장까지 가득 물품이 차 있는 이곳은 사바나 속의 편의점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출장을 온 지금 현장에서 고생하고 있을 스태프들을 위해 간식을 사곤 했는데, 과자와 탄산음료를 고를때면 마음이 풍족해지는 기분이다. 세렝게티가 도심과 7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라 그런가? 사소한 간식을 사는 건데도 손에 잡힌 과자봉지의 촉감에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든다. 도시의 냄새, 킁킁.







세렝게티 국립공원 관리본부는 국립공원 안에 있다. 다른 국립공원들은 관리본부를 인근 도시지역에 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렝게티는 탄자니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중요한 국립공원인만큼 현장에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은 까닭이다. 촬영 허가서를 제출할 때나 본부장과 미팅이 있을 때면 어디서 촬영을 하고 있든 세로네라로 향한다. 먼 길을 달려서 가야 해서 피곤할 때도 은근한 기대감이 앞서곤 했는데 바로 키지지의 식당 때문이다!



메뉴는 딱 두 가지, 닭고기 아니면 소고기다. 그날 들어온 고기에 따라 메뉴가 정해지고 양념은 늘 똑같은 토마토 베이스의 걸쭉한 소스다. 여기에 쌀밥과 콩, 그리고 양배추 볶음이 곁들여진다. 도시에선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별 특색 없는 메뉴이지만 촬영하면서 매일 같은 차가운 샌드위치만 먹던 나에게는 미슐랭 식당 그 자체였다. 윤기가 흐르는 밥에 따듯한 소스를 한 스푼 덜어서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일이 있어서 세로네라에 갈 때면 업무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잘 끝내고 키지지에 가서 기분 좋게 밥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밥을 먹기도 전에 기운이 솟아났다.


한 번은 제대로 회식을 해보자며 ‘야마초마(소고기, 양고기 등을 석쇠 위에 굽는 탄자니아식 고기구이)’를 주문했는데, 생고기를 굽기 시작하는 요리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도시에서는 길어도 한 시간 안쪽으로 기다렸는데 여긴 고기가 없었는지 어쨌는지 두 시간이 다 되어서야 검게 그을린 고기가 식탁에 올라왔다. 턱이 아플 정도로 질긴 고기를 씹으며 세렝게티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주변을 둘러봤다. 식당 안에는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맥주 한 병을 조금씩 홀짝 거리는 현지인 한두 명뿐이었다. 문틀에 기대어 있거나 콜라병을 들고 밖에서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이 우릴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모두들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인 거 같은데 우리만 희희낙락하는 듯했다. 촬영팀으로 올 때는 운전수들과 캠프사이트에서 같이 자며 그들의 고단함을 옆에서 봤다. 그런데 여행자로 왔을 때는 나를 태워준 가이드가 밤에 어디서 눈을 붙이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초원의 낭만을 즐기느라 그 낭만을 만드는 사람들의 잠자리는 내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세렝게티의 야생은 저절로 유지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게이트 화장실을 닦고, 누군가는 폭우로 유실된 도로를 정비하고 행정 업무를 본다. 우리가 야생 한복판에서 겪는 '너무 크지 않은 불편함'은 사실 이들의 수고로운 손길 덕분이다. 가이드나 운전수들, 그리고 국립공원의 노동자들은 키지지의 낡은 게스트하우스에 몸을 뉘인다. 거기서 사바나의 먼지를 씻어내고 다음 날을 준비한다.



누군가의 낡은 잠자리와 단조로운 식사, 그리고 지루한 기다림.. 이렇게 소박하고 고된 일상들이 쌓여 국립공원의 거대한 질서를 지탱한다. 내가 세렝게티의 웅장한 모습에 빠져있을 때 실제로 야생의 초원 굴러가게 하는 힘은 이 작은 마을 '키지지'에서 묵묵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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