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게으른 맹수, 사자의 진짜 모습

by 요나

“죽은 거 아냐?”


사자가 움직이지 않는다. 새벽같이 나와서 헤매다가 겨우 찾았는데 몇시간째 누워만 있다.


"돌 던져볼까?"


절반은 진심이 담긴 농담을 했다. 촬영장비로 꽉 차 다리를 펼 수도 없는 차 안에서 저 나무 아래 꿈쩍도 않고 있는 사자를 보고 있으려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돌이라도 던지면 놀라서 일어날까? 움직이긴 하겠지? 물론 당연히 하면 안 되는 일이고 해봤자 사자가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고 갑자기 멋진 액션을 취해줄리도 없다. 그렇지만 몇시간째 불편하게 앉아있다보니 몸이 힘든것도 힘든거지만 정신적으로도 초조하고 힘들어진다. 솔직한 심정으로 내가 왜 여기 이러고 있나, 쟤 때문 아닌가, 왜 안움직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짜증도 난다. 오늘 쓸만한 컷이 하나도 나오지 않은게 사자 잘못도 아닌데 애꿎은 곳에 화풀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쟤도 좀 움직이겠지 싶어 샌드위치를 천천히 씹어 먹어보았지만 택도 없었다. 사자는 여전히 누워있다. 어쩜 저렇게 오래 누워있을 수 있지? 다시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사자를 유심히 보니 통통한 배가 오르락내리락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죽은 건 아니었다.



사자는 진짜 게으르다. 세렝게티에 오기 전에는 사자들이 갈기를 바람에 마구 휘날리며 초원에서 용맹하게 뛰어다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수년간 있었지만 사자가 뛰는걸 가까이서 본건 정말 손에 꼽는다. 5번도 채 안된다. 매일 같이 벌러덩 누워있기만 하니.. 일어나 한 발자국 걷기만 해도 고마울 때가 많았다. 실제로 사자는 하루에 최대 20시간 까지 잔다고 하던데, 이런 수면시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거다.


너무 지루하고 피곤해서 나도 벌러덩 누워있다가 사자가 일어나면 그때 일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부터 찍으면 이미 늦기 때문이다. 만약 사자가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켜 앉는다고 하면, 그걸 보고 나서 녹화버튼을 누르면 사자가 앉아있는 상태밖에 못 찍는다. 앞부분이 없다. 물론 사자는 매일같이 누워있으니 비슷한 장면을 찍어서 붙여도 되지만, 그렇게 두 컷으로 나뉘는 거보다는 누워있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머리를 들고 다리를 움직여 고쳐 앉는 연속된 동작을 찍는 게 훨씬 좋다. 화면 안에서 동작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훨씬 생동감이 느껴지고 이 다음엔 어떤 행동으로 연결될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증도 생기면서 더 몰입하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눈을 뗄 수가 없다. 아무리 사자가 가만히 있더라도 계속 보고 있어야 한다. 갑자기 귀를 이리저리 돌리거나 눈을 꿈뻑이는 등 움직이려는 낌새가 보이면 카메라맨에게 신호를 주거나 촬영 버튼을 미리 눌러 놓는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나온 운전수들도 기다리는 게 고역이다. 대부분의 운전수들은 사파리 회사 경력직들인데 운전수들은 사파리에 나서면 ‘빅 5(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팔로)’라고 불리는 꼭 봐야 할 동물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세렝게티를 누빈다. 저 다섯 동물을 보여주는 것과 아닌 것엔 팁 차이가 크고 그 결과는 운전수들의 노력과 직결된다. 그래서 쉬지 않고 열심히 계속 돌아다닌다. 사파리 차량이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는 촬영팀의 5배도 넘는다.


이렇게 항상 새로운 동물을 찾아다니는 습관이 있는 운전수들은 사자 한 마리 앞에서 5시간이고 6시간이고 긴 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걸 너무 지루해하고 자꾸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처음엔 무전기로 다른 회사 운전수에게 동물 위치를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수다를 떨기도 하지만 이내 꾸벅꾸벅 졸고 만다. 그러는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 번갈아가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깨워주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왠지 모를 동지애가 싹튼다. 같이 불침번을 서기 때문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기약없이 보고 있어야 하는걸까? 무작정 사자만 쫓아가서 버티면 기회가 올까? 사냥 장면을 찍으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사냥하는건 순전히 사자들 마음이라 언제일지 100% 확정적으로 알수는 없지만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바로 사자의 배를 보면 된다. 처음엔 잘 분간이 안되지만 나중엔 배만 보고 그날의 촬영을 점칠 수 있다. 사자의 배가 막 걸음마 하는 애기들처럼 빵빵하게 튀어나와 있으면 어제저녁에 사냥을 했다는 뜻이다. 배가 터질만큼 배불리 먹었으니 앞으로 적어도 3일간은 사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자를 찾아다니다가 이렇게 배가 통통한 사자 무리를 만나면 촬영팀은 입맛만 다시며 자리를 뜬다. 어차피 움직이지 않을 사자 떼 앞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느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자 무리를 찾아보는 게 낫다. 그러다가 배가 홀쭉하고 뱃가죽이 허리에 붙은 거 같은 사자들을 만나면 신경을 곤두세우고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한다. 당장 사냥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굶주린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는 주로 해 질 녘에 사냥을 하지만 이렇게 배고픈 사자들은 대낮에도 얼룩말을 향해 돌진한다.



그래도 차량 여유가 있으면 차 한 대는 계속 대기하게 한다. 동물들은 계속 돌아다니기 때문에 아무리 어제 있던 똑같은 장소로 가도 거기 있으리란 보장도 없고 다시 찾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주로 사는 지역이 한정되어있기는 그 공간이 엄청 넓다. 세렝게티의 경우 다른 서식지에 비해 물과 먹이가 풍부해 행동반경이 큰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경 20km나 된다. 서울시 면적의 2배 이상되는 크기다. 심지어 길도 없는 곳인데 여길 다 뒤지고 다닐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 앞에 누워서 잘 움직이지 않는 사자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그리고 사자 입장에서 보면 기껏 목숨 걸고 사냥해서 배를 채워놨는데 다시 일부러 움직이며 배를 꺼트릴 이유가 없다. 사냥할때마다 백발백중 성공하는 것도 아니니 배가 든든한 상태를 길게 유지하는 게 이 야생의 초원에서는 이득이다. 알고 보면 사자는 최대로 게으르게, 아주 효율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명의 여지없이 진짜 게으른 부분도 있다. 사자는 정말 더럽다. 세수를 안한다. 고양잇과 중에 가장 더러운 거 같다. 고양이들은 강아지처럼 따로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그루밍을 한다던데 사자는 왜 이럴까?



치타나 표범과 비교해 보면 정말 큰 차이가 난다. 깔끔쟁이 치타는 먹이를 먹고 나서 바로 발바닥을 싹싹 핥고 열심히 고양이 세수를 한다. 표범도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죽은 임팔라를 보지 못했다면 식후라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깨끗한 동물이다. 그런데 사자들은 배불리 먹고 나서 그냥 헉헉대고 있거나 입맛을 다시며 더 먹지 못하는 걸 아쉬워할 뿐이다. 얼굴이며 발이며 온통 피투성이인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냥 이틀째가 되어도 사자의 갈기나 몸통에는 아직까지 초식동물의 피가 불그스름하게 남아있다. 밤새 씻지도 않고 잤나? 이렇게 더러우니 파리가 얼마나 달려드는지 모른다. 머리와 몸통에 바글바글하게 파리를 붙이고 있는 걸 보면 진짜 소름이 쫘악 돋는다. 갈기 색과 비슷한 누런 진드기를 잔뜩 달고 다니기도 한다. 너무 많이 붙어있으니 아무리 꼬리로 쳐대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저런 몰골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밀림의 왕자인거지? 잘못된거 같다. (여담으로 밀림에는 사자가 살 수 없기 때문에 잘못된 말이긴 하다.)


벌레도 또한 자연의 일부이니 내가 소름 돋는건 참는다 쳐도,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벌레가 많이 붙어있는 컷은 쓸 수 없다는 거다. 두세개 정도는 CG 작업으로 지울 수 있겠지만 얼굴과 배에 덕지덕지 붙고 주변에서 십수마리가 날아다니는 걸 수정하려면.. 과연 얼마가 들까? 돈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면 결벽증 있는 사자를 만나고 싶어진다.








태고적 고요함을 간직한 세렝게티의 사자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다가도 마뜩잖은 기분이 든다. 내가 기다리는 장면은 저 평화가 깨어지는 찰나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이렇게 내 의지로 어떻게 할수 없는 거대한 장벽같은 상황을 마주하면 나는 이 초원에서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란걸 깨닫는다. 잠시 스쳐갈뿐인 나는 언제나 방문자인 동시에 항상 방해꾼이다.


묘하게도 이런 점이 위로로 다가온다. 내 욕심이 야생의 초원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못쓴다는 무력감이 오히려 나를 홀가분 하게 만든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이제 다시, 그저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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