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 23일
어느샌가 영국 왕실의 결혼식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었다. 사람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매스컴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부추기기 때문일 것이다.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 발표 이후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나왔가.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이들의 결혼식에 매스컴이 쏟아붓는 정성은 한심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결혼식이 한국에서 TV로 방송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걱정을 하게 된 건, 한국에서도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방송해주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을 TV로 시청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왕자님과 공주님의 동화를 많이 읽었던 꼬마 소녀는 동화 속 환상을 현실로 만든 그들의 결혼식을 이 세상 일이 아닌 듯 부럽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하겠지?’ 그들이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결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훗날 그들에게 닥칠 파국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판잣집에서 한 소녀가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TV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다. 불과 10살에서 12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 옆에는 아기가 누워있는데, 설마 소녀의 아기는 아닐 거라 믿고 싶다. 워낙 조혼이나 원치 않는 임신이 많다는 말에 노파심이 들어서 말이다. 어쨌든 저 소녀는 영국 왕실 결혼식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눈빛이 살아있는 저 소녀는 TV 속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현실을 암울하게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반드시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