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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 마치 Jan 15. 2019

17.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분쟁역사에 마침표를 찍다

2018년 9월 7일 ~ 13일

AFP / 화요일, 에리트레아 여성이 에티오피아로 넘어온 뒤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년 넘게 이어진 두 나라의 전쟁이 종결된 뒤, 두 나라 사이의 국경 일부가 재개방되었다.



-아프리카 마치의 단상-



20년간 국경분쟁을 벌였던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현지시각으로  2018년 9월 16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아프리카 뿔’에서 앙숙으로 지내던 두 나라가 1998년 시작된 무력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한 것이다. 


국경을 마주하는 이웃인 두 나라는 얽히고설킨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본래 에티오피아의 영토였지만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과 함께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이 본격화되던 중,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1890년에 공식적으로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반면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군을 무찔러서 독립국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가 패전하면서 1951년까지 영국의 피보호 상태였던 에리트레아는 영국이 떠나자 국제사회의 고민거리가 되었고, 1952년에 미국 정부의 압박과 UN의 제안으로 에티오피아의 연방이 된다. 


그러나 1961년  에티오피아의 철권통치자 하일리 셀라시에가 에리트레아를 무력으로 강제 합병하자, 에리트레아 주민들은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을 결성하고 이웃 아랍국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무려 30년에 걸친 무장 독립투쟁을 불사한다. 결국 1993년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협력관계로 발전했지만, 1997년 에리트레아가 화폐개혁으로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자 에티오피아가 이를 양국의 통화연합을 파괴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1998년   시작된 국경분쟁은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2000년까지 7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2002년 국경위원회가 접경지역인 바드메(Badme)를 에리트레아령으로 편입하자, 에티오피아는 이에 불복하고 양도를 거부하며 국경 재협상을 요구했고, 에리트레아는 이 결정을 즉각 수용하라고 에티오피아를 압박했다. 2004년, 에티오피아의 멜레스 제나위 총리가 2002년 결정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포함한 ‘신평화 원칙 5개 안’을 제안했고, 이에 국제사회가 환영 의사를 표시했지만, 에리트레아는 이를 공식 거부하고 국경선 획정작업을 즉각 시행할 것을 촉구했다. 국경에 양국의 대규모 병력이 배치되었고, 긴장이 고조되었다.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분쟁 지역 '바드메'



2005년 케냐에서 열린 군사조정위원회가 양국의 병력 철수를 결정하면서 긴장이 완화되었지만, 에리트레아가 UN 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제지한다. UN 안보리는 에리트레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발표하고, 에리트레아는 자국에 주둔했던 유럽 국적의 UN 평화유지군을 추방하기에 이른다. 이는 국경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 에티오피아에 대해서는 압력을 행사하지 않으면서 평화유지군의 활동을 제지했던 자국의 조치를 철회하라고 압박한 국제사회에 대한 저항의 표시였다. 2008년, 활동이 종료된 UN 평화유지군이 퇴거하자, 양국 군대가 직접 대치하는 긴장상황이 재현되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18년 9월,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는 모든 군사활동을 종식하는 평화협정, 즉 종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1세기가 넘는 양국의 복잡한 국경분쟁 역사를 아주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두 나라가 위치한 ‘아프리카 뿔’은 지부티를 비롯하여 군사요충지로서 중요한 양상을 띤다. 그런 만큼 외세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간섭이 한 나라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고 두 나라 사이를 이간질시켜서 일어나지 않아도 될 분쟁과 희생을 불러오는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두 나라가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니 앞으로는 좋은 관계를 잘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내가 사는 한반도로 돌아오자. 어제, 2018년 9월 18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시작되었다.  열강들의 대리 각축장이나 다름없는 한반도는 타의에 의해 둘로 갈라졌고, 반세기 넘게 그 상태가 지속되며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전쟁 위기설로 긴장하며 시작했던 2018년에 뜻밖에도 소통의 물꼬가 트이면서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가자’는 메시지를 남북정상이 던지고 있다. 남북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이 시점에서 내가 우려하는 건,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우리 운명의 밧줄을 움켜쥔 미국이  보일 태도이다.  그리고 가장 마음 아픈 건 남북관계 개선, 나아가 통일을 반대하는 우리 안의 목소리다. 


오늘자 뉴스에 따르면 미국은 전향적 자세를 보이는 북한에게 여전히 FFVD(비핵화)만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이 내심 바라는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서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에 강대국이 최빈국이 가진 핵이 그렇게도 무섭냐고 비웃어주고 싶을 정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남북이 ‘비핵화 방안’을 합의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우리 손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경제협력을 하며 통일까지 이를 수 있다면 너무나 환상적이겠지만, 아직 미국, 그리고 다른 열강들과의 관계 정립과 그들의 승인 아닌 승인이 남았다. 요충지에 있는 나라의 설움이라 하겠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처럼 말이다. 아니, 그 두 나라와 비교하기에 우리의 설움과 억울함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에티오피아 국경을 넘은 뒤 노래 부르는 사진 속 에리트레아 여성처럼, 우리도 열강들이 마음대로 그어버린 분단선을 자유롭게 넘어 기쁘게 노래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그때, 신기하게도 한 맺힌 분단선은 자유와 평화의 상징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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