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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리카 마치 Jan 15. 2019

16.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사람들

2018년 8월 31일 ~ 9월 6일

AFP / 그 전날, 모로코의 항구도시 탕헤르 근교에서는 이민자들이 경찰을 피해 숨기 위해 숲속을 걸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마치의 단상-



사진 밑에 설명을 보지 않으면 이 사진 속의 상황을 절대 떠올릴 수가 없다. 그냥 보면 한 무리의 남성이 등산을 하나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난민이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는 장면이라니. 나에게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고, 앞으로도 경험할 일 없으리라 다짐하고픈 일이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진이나 기사들을 보게 되면 난민에 관한 것들이 상당히 많다. 타국에서의 삶만큼 힘든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자국에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면 저렇게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 건지 의아하기만 할 뿐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미디어를 통해 주워들은 이야기, 즉 독재정권의 횡포로 인한 정치적 문제와 빈곤문제, 종교 갈등으로 인한 내전, 테러에 대한 위협, 이상기후로 인한 생존 문제 등이 원인이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독재정권에 내전이 수시로 발발하고 세계 최빈곤국가로 이름난 콩고민주공화국의 내 친구들은 별 불만 없이 잘 살던데?라는 의문도 든다. 아니다, 이국인인 내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에게 불만이 없고, 다른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욕구가 없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한국에 왔던 그들이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라고 얼마나 많이 찬사를 보냈던가.  그 말을 하며 짓던 그들의 미소에 희미하게 배어있던 씁쓸함을 나는 놓치지 않았었다.


사실 아프리카는 빈부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난하니 당연한 현상이겠다. 그만큼 아프리카의 부유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부유한데, 혹자는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대체 그 부가 어디서 나왔는지, 무엇의 결과인지 생각하고 말하는 건지 묻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는 우리나라의 친일파처럼 자국의 자원을 제멋대로 팔아넘긴 매국노, 국민의 삶은 살피지 않은 채 자신과 자기 가족의 안위만 살핀 독재자가 아니면 부자가 되기 힘들다. (물론 아프리카 부자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지위가 조금이라도 손상될 기미가 보이면 언제든지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을 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현실을 놓고 볼 때, 아프리카 국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삶이 아주 만족스러운 사람 아니면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어 마지못해 남아있는 사람, 두 부류일 것이다. 이렇게 불안정하게 난민으로 떠도는 사람들은 그나마 떠날 수 있는 돈이 있었기에 용기 내어 탈출을 감행한 것일 테고 말이다. 분명 인간적인 삶과 권리를 찾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탈출에 성공하고도 경찰을 피해 다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한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할까? 그들과 비교할 때 그 누구도 부러울 것 없는 세상 편한 안락함에 젖어있는 내가 감히 궁금해할 뿐이다.


나이지리아의 작가, 환경운동가, 인권투사로 활발히 활동하다 처형된 켄 사로 위와(Ken Saro-Wiwa)의 딸 누 사로 위와(Noo Saro-Wiwa)가 쓴 <Looking for Transwonderland – Travels in Nigeria(트랜스원더랜드를 찾아서 - 나이지리아 여행)이 있다. 책에는 이탈리아 난민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불법이민이 적발되어 추방된 한 나이지리아인과의 대화가 나온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나이지리아인 특유의 강인한 생활력으로 돈을 벌었지만, 이탈리아 아이들은 거리를 걷는 그에게 혐오감의 표시로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나이지리아와 이탈리아 중 어느 곳을 선택하겠느냐는 작가의 물음에 주저 없이 이탈리아를 선택한다. 


어느새 우리나라도 난민들이 피난처로 삼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자신의 나라를 뛰쳐나와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국이 아닌 타국을 선택하는 냉정한 판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체 왜?라고 계속해서 질문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저 한 인간으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바람은 그들을 감싸 안을 넓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며 사람들에게 질책을 받을 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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