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하루
29살의 막바지였다.
20대를 잘 묻어주려고 혼자 애쓰던 시기였다.
나는 그걸
‘20대 제사를 지낸다’고 표현했다.
지나간 내 모습을 다시 보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역시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저 평소 소중하게 여겼던 언니를 만나
조금 하소연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언니가 운동하는 곳에 놀러 갔다.
그곳에는 코치님이 있었다.
지금의 신랑이다.
그때는
신랑이란 그런 단어가 입혀질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서비스업을 오래 했다.
그래서 과잉친절이 몸에 배어 있다.
운동을 마치고 나서
체육관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습관처럼 디엠을 보냈다.
‘오늘 수업 잘 들었습니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요.’
영혼은 없었고
예의만 남은 인사였다.
답장은 짧았다.
‘네,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그게 끝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 스토리를 올릴 때마다
서로 한마디씩 얹게 됐다.
나는 시비였고
그쪽은 받아치는 쪽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원래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나는 괜히 오기로 받아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몇 달 동안
디엠으로 뜨문뜨문 연락을 주고받았다.
피씨톡이 편하다고
전화번호도 자연스럽게 교환했다.
글자로는 세상 편한 친구였다.
스몰토크를 하다 보니
서로 이상형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이성적으로 설렐 부분이 없다는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볼링 레슨이 갑자기 취소됐다.
집이 멀어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문득 떠올랐다.
‘이 근처가 언니네 체육관이었지.’
그에게 연락했다.
놀아달라고.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가 좋다고 했다.
맥주 한 잔을 했다.
우리는 사는 이야기, 일 이야기를 했다.
알고 보니
그도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그가 다르게 보였다.
코치님이 아니라
오빠가 될 수 있는
틈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연락의 빈도가 잦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하고 있었다.
이성적인 설렘보다는
인간적인 호감이 먼저였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비혼주의자라는 틀에 갇혀있었지만
연애는 괜찮지.
그래도 혼자 결정하지는 않았다.
그를 나보다 오래 알고 지낸 언니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조금 궁금한 사람이 생겼다고.
언니는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난다면
나는 너무 좋아. 대찬성이야.’
그 말이
이상할 만큼 크게 와 닿았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8년의 연애와
수많은 소개팅을 거치며
그렇게 믿게 됐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로
다시 눈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그 자신감으로 나는 곧장 들이댔다.
그때의 나는, 정말 생각보다 용감했다.
그렇게 코치님과 만나게 되었다.
다섯 살 많은 그는
자연스럽게 오빠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만남이
내 비혼주의 철학까지
흔들어 놓을 줄은.
설레지 않아서 괜찮다던 연애가
내 인생을 가장 많이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