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였다는 말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결혼에 큰 기대가 없는 사람이었다.
연애는 좋았지만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혼자가 좋았고
혼자로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오빠와의 연애는
이전의 연애들과 많이 달랐다.
설레지 않아서 오히려 편했고
맞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다.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됐고
내 의견을 말해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연애가 맞는지 아닌지
혼자서 괜히 고민한 적도 있었다.
내가 편하다는 건 상대방이 맞춰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어느 순간
이 사람이랑 있으면
평생 재밌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지 않게
머릿속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가볍게 부딪혀보는 편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얼마나 모았는지,
결혼 준비 같은 걸 해봤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적인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하지는 않았다.
자격지심이 없었고
시키는 건 잘하는 사람이었다.
진심 반, 농담 반으로
결혼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준비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우리의 준비는 아주 단순한, 저축이었다.
사귄 지 2년쯤 되었을 때
오빠에게 말했다.
한 달에 50만 원씩 이체하라고.
나도 같은 금액을 모았다.
매달 100만 원.
1년이면 1,200만 원.
결혼을 확정하기엔 부족했지만
결혼을 상상하기엔 충분한 숫자였다.
나는 얼마를 모았는지보다
어떻게 모으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나는 통장에 쌓이는 숫자보다
손에 남는 감각을 믿는 편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그 방식을 온전히 나에 맡겼다.
그래서 저축을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기로 한다.
사실 결혼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집 때문이었다.
그냥 심심해서 들른 부동산에서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났다.
시기 또한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오빠의 계약 종료 시점과
집 입주 시기가 딱 맞았다.
타이밍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대출을 알아보면서
우리의 한계도 분명해졌다.
신혼부부 전세대출
을 위한 혼인신고.
결혼을 미루는 이유보다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해버렸다.
어차피 결혼할 거면
혼인신고 먼저 해도 되지 않겠냐고.
그 말을 한 뒤로
모든 게 빠르게 흘러갔다.
부모님과의 대화,
상견례, 결혼식 날짜까지.
겁이 없었다기보다는
피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에게 결혼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다.
겁먹을 만큼 거창하지도 않았고
로망을 증명해야 하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이 사람과 인생의 2막으로
함께 넘어가도 되겠다는 판단 그게다였다.
결혼을 결심한 뒤 모든 준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다.
우리는
4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