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연애를 8년이나 붙들고 살았다

첫 연애, 그리고 8년

by 김은빈

내 첫 연애는 대학 시절 대외활동으로 만난 한 남자였다.

우리는 8년을 만났다.

내 20대는 그 사람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그 시절이 나름 아름다웠다고 믿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첫 연애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불태웠다고 믿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낌새는 항상 조용히 온다

사귄 지 6년 차쯤,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확실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는 나름을 설명을 내놓았다.

나는 그저 믿고 싶어 애써 외면했다.

그때부터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남았다.

신뢰는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무너진 신뢰를 붙들어 매고, 우리는 2년을 더 만났다.

총 8년이 되었다.

소소한 다툼이 많아지며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헤어졌다.

하지만 알고 보니 결국 환승이별

나는 인류애가 소멸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사람을 좋아하는 나의 가득하던 인류애가 바닥을 보였다.

지나고 보니 사람은 한 번에 헤어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여러 번 무너졌던 관계였는데,
나는 끝까지 미련하게 붙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 나는 항상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을까

돌아보면, 나는 늘 내가 더 좋아하는 연애를 했다.

항상 잘 보이고 싶었고

항상 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자영업자로서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내 스케줄에 맞춰 놀아주는 그에게 늘 미안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도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나는 늘 을이어야 했을까.


연애에 갑과 을이 생기는 순간

연애에 갑과 을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건 계약서가 아닌 순간들로 만들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순간.

예를 들자면 나는 음주가무와 멀다.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음주가무가 삶의 1순위인 그 사람에게
가짜의 나로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그의 어깨가 좋아서
8년 동안 내 눈을 가리고 살았다.


이 연애가 남긴 것

그와의 연애를 통해 배운 점도 분명히 있다.

먼저 무너진 신뢰는 외면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아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느냐.



지금 누군가 나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현실을 즉시 보길 바란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맞지 않는다면, 관계를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연애에 갑과 을이 존재하는 순간, 그 관계는 이미 건강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나와의 연애를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