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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Sep 14. 2023

집밥이라는 욕심

 게으른 내가 집밥을 해먹는 이유

함께 걷는 사람들로부터 대부분 "너처럼 걸음이 느린 사람은 처음 봐."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외출 전 부모님이나 애인으로부터는 "빨리빨리 하자 제발.."이라는 소리를 거의 매일 들었다. 기자를 하겠다고 하니 "너처럼 게으른 사람이 기자를 할 수 있을까?"라는 소리를 (실제로) 들었다.


천성이 느리고 게을렀지만 욕심이 많았다. 퇴근 후 녹초가 됐지만 집에 와서 집밥을 차려 먹고 싶었다. 반찬통 그대로 올려서 먹는 집밥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귀여운 집밥을 차려먹고 싶었다. 살림도 깨끗하고 정갈하게 해 놓고 살고 싶었다. '바쁜데 언제 그렇게 차려먹었어?'라는 타인의 칭찬도 듣고 싶었다.  


가장 좋아하는, 아침 식사 차리기.


일만 해도 넉다운됐지만 아이도 낳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상에 허덕이고 싶지 않았다. 육아 중에도 역시 배달 음식보다는 집밥을 해 먹고 싶었다. 아기와 함께 하는 시기임에도 나를 위한 독서와 글쓰기도 놓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집밥을 차리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그토록 하기 싫어서 울면서 설거지를 했던 시절이 무색하게 청소와 살림도 즐겁게 해나가고 있다. 서점에 가서 '이런 책은 도대체 누가 읽지?'라고 생각했었던 정리정돈, 살림법 등의 책을 구매하는 나를 발견한다. 살림에 진심인 사람들의 새로운 꿀팁과 귀여운 아이디어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이런 책을 누가봐?’ 라고 생각했었던 살림 관련 서적. 요즘엔 ‘살림 코너‘의 거의 모든 책들을 섭렵하고 있다. (왼쪽) 살림책에서 발견한 꿀팁 중 가장 놀라운 꿀팁 (오른쪽


독서만큼은 폭넓게 했다고 자신했지만 내가 들여다보지 않았던 살림법, 육아서, 소아의학과 과학, 교육 관련 서적도 읽게 되면서 나의 편협한 독서 습관을 깨닫기도 했다. 세상만사에 시큰둥했던 나였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하루 내가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들로 가득하다. 서른 넘어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매일 하게 되는 일이 육아 외에도 있을까 싶다. 글쓰기 소재 역시 넘쳐난다.


얼마 전 이유식 만들기에 대해 육아 선배인 친구에게 상담을 했다. 친구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넌 요리를 잘하니 이유식은 쉬울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내가 요리를 잘한다니 새삼스럽다. 이외에도 요즘에는 가끔 '넌 부지런하잖아'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부지런하다고? 언제부터?'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요리와 살림, 육아와 같은 일은 나의 일과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선택과 집중을 위해 버려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혹은 '느리게 돌아가기'와 같이 '굳이' 성장과 억지로 붙여놓는 것인 줄 알았다.  


물론 지금 내가 엄청난 살림의 고수가 됐다거나 셰프급 요리실력을 갖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요리를 해 먹고 내 살림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통해 분명히 성장했다. 나만의 루틴으로 꽤 깨끗한 집을 유지하고 있고 웬만한 배달음식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만들 줄 안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을 하기 전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다. 일상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며칠 전의 브런치. 간단하지만 ‘일상을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한 접시.


돌이켜보면 게을렀지만 내 마음속 욕심이 있었기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었다. 완벽한 점수는 아니더라도 내가 목표한 바를 대부분 이루어왔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물론 '나이를 먹어서'(=철이 들어서)라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일을 나도 똑같이 겪은 것이다.


느리고 게을렀지만 '꼴에'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어 내 욕심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넌 욕심이 참 없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게으른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 욕망이 없던 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내 분수를 아는 태도라고 착각했다.  




나이를 먹은 것 외에 내 안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면 '적어도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내가 욕심이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 나 역시 타인들처럼 속물적인 욕망이 있고 그것을 이루고 싶어 한다는 것. 그 욕심을 인정하니 욕심이 없던 척했던 나날들보다 더 편안하게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남들이 다 원하는 것에 초연할 수 있겠나.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나 역시 다 원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남들도 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 욕망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사랑, 가족, 안정을 위한 돈, 건강, 성장, 타인의 인정 등 나 역시 수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똑같이 원했다.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속이지 않기로 다짐하니 오히려 (느리지만) 행동하게 됐다. 남들이 다 원하는 것을 나 역시 원하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느려도, 완벽하지 않아도, 비효율적인 것 같아도 일단 '하기'.  


하나씩 꾸역꾸역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손에 익고, 스트레스 없이 지속가능하다. 물론 세상엔 생각도 빠르게 하고 실행력도 빠른 사람들이 넘쳐나기에 내가 게으르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에 허덕였던 내가 이 정도의 자신감을 갖게 된 것만으로 뿌듯하다.


이제 '게으른데 욕심은 많네'라는 말은 더 이상 나에게 욕이 될 수 없다. 욕심이라도 있어서 다행인 것이니까.


요즘 꽂힌 야채찜과 오리고기로 차린 집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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