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경 Nov 06. 2023

하나를 비우니 세 곳이 깨끗해졌다

비움에도 디드로 효과가 적용된다

기저귀 갈이대를 당근마켓에 팔았다. 이제 아기는 200일이 조금 지났는데, 사실 기저귀 갈이대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1~2달 전이었다.


맘카페를 살펴보니 뒤집기를 시작하자마자 기저귀 갈이대를 팔았다는 사람, 아이가 뒤집고 나서도 쓰다가 짚고 일어서자 너무 위험해 보여서 팔았다는 사람, 바닥에서 기저귀를 갈기엔 허리가 많이 아파서 그냥 아기를 붙잡고 돌까지도 썼다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나 역시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하자마자 '이걸 팔아야 하나?'싶은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래도 어차피 기저귀를 갈 때는 내가 아기를 붙잡고 있으니 떨어지진 않겠지 하면서 계속 미련을 두고 있었다.


아기가 무언갈 짚고 일어설 때가 되자 더욱 불안해졌다. 그래도 '맘카페에서 돌까지 쓰는 사람도 있다던데.. 목욕시키고 로션 바를 때 편하긴 한데.'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고 있었다.


이처럼 사용 시기가 끝나가는 육아용품 하나도 비우기는 쉽지 않았다. 무언가 꼭 '언젠가 꼭 필요할 것 같은데..'와 같은 마음과 '막상 팔았는데 필요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제는 새 주인을 만난 기저귀 갈이대.

비움을 결정한 것은 아주 작은 사고들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한 때였다. 아기가 200일이 가까워지자 활동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고 내 생각보다 힘도 세졌다. 운동신경도 빠르게 좋아졌다.


어느 날 아기침대에 낮잠을 재워두고 거실로 나왔는데 아기가 침대를 짚고 일어서서 내 침대에까지 이동해 있었다. 다행히 내 침대 위에서 놀고 있었는데 잘못했으면 아기가 성인침대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경우여서 아찔했다. 그 외에도 (아래쪽에 매트를 깔아 두어서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소파에 혼자 올라갔다가 떨어지기, 의자에 머리 부딪히기 등 작지만 여러 번의 부딪힘이 있었다.


집 대부분의 바닥에 매트를 깔아 두었고, 이제는 낮잠도 매트에서 재우면서 위험 요소를 많이 없애려 노력했다. 침대나 소파 밑은 매트를 깔아 두어 떨어진다고 해도 푹신했지만, 기저귀 갈이대는 침대나 소파보다 훨씬 높고, 낙상을 하면 바로 바닥이기 때문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기저귀 갈이대를 당근에 내놓았다.


생각보다 기저귀 갈이대는 빨리 팔렸고, 생각보다 하나의 비움이 남긴 빈 공간은 컸다. 


기존의 기저귀 갈이대가 있던 위치에 안방에 있던 수납함을 놓으니, 안방의 수납함 공간도 저절로 비워졌다. 그 수납함 공간에는 청소기들을 수납했다.


기저귀 갈이대가 있던 곳에 안방에 있던 수납함을 꺼내 정리했다. (왼쪽) 기존의 수납함이 있는 공간에는 청소기들을 수납했다.

하나를 비우니 두 공간이 깨끗해진 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 공간이었다. 기저귀 갈이대가 있던 곳, 기존 수납함이 있던 곳, 기존에 청소기들이 널브러져 있던 공간까지.


하나의 물건을 구입한 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제품들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을 디드로 효과라고 부르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이 효과는 비움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하나의 공간을 비우니 그 공간에 어울리는 다른 물품을 놓게 되고, 다른 물품이 원래 있던 곳은 또 비워지고, 그곳에 어울리는 또 다른 물품을 놓고...


이왕이면 또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 디드로 효과가 아니라 비움의 디드로 효과를 누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왜 '황혼육아'가 아니란 말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