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에서 겪는 매우 다양한 감정들
난임병원은 꽤 다양한 감정이 오가는 곳이다. 많은 이들이 난임 병원에는 임신을 하지 않은 (아직 하지 못한) 사람들만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임병원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기를 빨리 갖고 싶다’ , ‘왜 나는 아기가 생기지 않지’와 같은 초조함이나 슬픔, 혹은 아기가 생길 것이란 희망 정도가 대부분의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난임 병원은 초조함과 슬픔, 희망과 함께 질투와 우월감, 나아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까지 겪을 수 있는 곳이었다.
난임 병원에는 임신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만 또 다른 환자(?) 타입으로 임산부들이 있다. 보통은 난임 병원에서 시술이 끝나면 일반 산부인과로 옮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내 경우만 해도 거의 16주 가까이 됐을 때가 되어서야 일반 병원으로 옮겼다. 시험관 시술 임신의 특성상 꽤 오랫동안 임신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임신을 하고도 난임병원에 다닌다. 난임 병원에서 일반 산부인과로 옮길 때 비로소 ‘난임병원을 졸업한다’는 말을 쓴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을 한 후 잠깐 찾아온 아기가 화학적 유산이 됐을 때, 다시 난임 병원을 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두 번째 시술의 경우는 가장 힘든 과정인 과배란 과정을 다시 거칠 필요가 없고, 이미 첫 번째 과배란 과정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수정란만 삽입하면 되는 쉬운 과정이었음에도 마음적으로 힘들었다.
첫 번째 화유 후 두 번째 시술 날짜를 잡기 위해 두 달 정도 더 난임 병원을 들락날락해야 했는데, 그때 난임병원에 검진을 오는 임산부들을 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들도 몇 주 전에는 나와 똑같은 상황이었을 텐데, 그들은 이제 임신에 성공을 했고 아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마치 그 기분은 고3 수험생 시절 나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데, 게다가 모의고사를 망쳐서 절망스러운데, 옆자리의 누군가는 수시 전형으로 이미 좋은 대학을 합격한 모습을 봐야 하는 것과 같았다.
난임병원에서 임산부를 보는 일보다 힘들었던 것은 첫째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오는 사람을 보는 일이었다.
임산부들이야 일반 산부인과에 가기 전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오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첫째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더욱 옹졸한 마음이 생겼다.
‘아기도 있으면서 참 욕심도 많으시네’와 같은 생각을 했다. 나아가 ‘여기는 아기가 안 생겨서 힘든 사람이 많은 병원인데 첫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은 좀 눈치가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옹졸한 마음이다. 당시에는 언제 나의 임신이 성공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너무나 초조하고 불안했다. 예민함이 극치로 올라가 둘째를 원하는 마음 역시 첫째를 바라는 마음만큼 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기를 키우다 보니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병원을 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또 굳이 난임 병원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나의 아이를 떼놓고 올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안다.
한편으로는 이런 감정을 겪고 ’내가 정말 아기를 갖고 싶구나‘라고 확신하게 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나도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난임 병원에 다시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첫 번째 시험관 시술 당시 수정란 4개를 만들어 얼렸었고, 2번째 시술에 아기가 생겼으니 남은 2개의 수정란 보관을 위해 사인을 하고 보관료를 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임신을 하고 난임 병원에 갈 때는 또 다른 옹졸한 마음으로 어떠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임신 초기라 크게 티가 나지는 않지만, 결제를 위해 카운터에 갈 때 ‘임산부 수첩’을 내미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또한 진료실 방향이 아니라 ‘초음파실’ 방향으로 걸어 들어갈 때 나 혼자 아기를 품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선시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감정선이다. 마치 어떤 첩이 첫 번째 부인보다 먼저 임신이 되어서 신난(?) 장면에서 본듯한 감정선 말이다. 황당하지만 난임 병원 내에서는 이런 감정선이 나도 모르게 생겼었다. 물론 성숙한 시민들은 이런 감정 없이 쿨하게 난임병원을 잘 다녔겠지만..
아마 난임 병원을 다녔던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예민하고 극성맞았던 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론적으로는 첫째를 데리고 난임병원에 가지 않았다.
수정란 보관을 위해서는 부부 모두가 동시에 사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데려갈까도 생각했지만 남편과 내가 교대로 다녀오는 걸 선택했다. 꼭 난임 병원에 있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다른 사람을 배려(?)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사정이 그렇게 풀려서 진행됐다.
만약 내가 둘째 결심이 생겨 난임 병원에 가게 된다면 첫째를 데리고 난임 병원에 가게 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 무신경한 사람처럼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아기를 기다렸던 내가 첫째를 데리고 온 사람을 그렇게 봤던 것처럼.
세월은 참 빠르고, 사람의 상황 역시 빠르게 변하며, 사람의 감정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