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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3. 2023

웃는 것도 낯가림이랍니다

'어머, 아기가 낯도 안 가리네'라는 말의 찝찝함

아기와 함께 밖에 나갈 때, 의외로 많이 듣는 소리가 "어머, 너무 잘 웃네. 낯도 안 가리나 봐."라는 말이다.


아기가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100일 즈음되었을 때 우리 엄마가 집에 왔을 때였다. 1시간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오신 엄마를 보고 아기는 매정하게 계속 울어댔다. 우리 집에 산후도우미도 2주 정도 다녀가셨었고, 나의 친구와 남편의 친구들이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방문했던 시기였다. 낯선 사람을 보고 울지 않는 시기였어서 아직 낯가림이 없는 시기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 즉 외할머니를 보고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나도 처음 보는 울음의 종류였어서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울어도 배고프거나 기저귀가 축축한 상황이 아니면 내 품에서 둥기둥기 해주면 금방 울음을 그쳤는데 그날은 거의 30분이 넘도록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엄마도 당황, 나도 당황.


엄마는 "아직 애가 낯가림 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네. 오늘은 내가 일찍 가야겠다."


집에 온 지 1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엄마는 다시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돌아가야 했다.




시댁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는 150일 정도가 됐을 때였다. 아기는 새로운 환경을 두리번거리다가 시어머니를 봤을 때부터 자지러지게 울었다. 참 신기한 것이 할아버지나 삼촌과 놀 때는 멀뚱멀뚱 있거나 잘 웃어주다가도 할머니들을 봤을 때만 미친 듯이 울어댔다. 시댁은 차로 40분 거리인데 이날 역시 1시간 30분 정도만 머물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할머니들은 할아버지나 삼촌들과는 달리 아기를 안아보고 싶어 하고, 더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했기 때문에 아기가 놀라서 운 것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들에겐 전형적으로 (?) 낯가림을 해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의외로 아기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주민이나, 백화점에서 만난 점원들에게는 생글생글 잘도 웃었다.


아기와의 외출. 아기들이 낯선 사람을 관찰하고 계속 쳐다보는 것도 일종의 낯가림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좀 웃어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기본적으로 웃음기가 없는 스타일이라 나와 하루종일 있는 아기가 '웃음이 많은 아기'라는 것이 조금 생소했다.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기가 웃음을 보이면 사람들은 '어머, 아기가 낯도 안 가리고 생글생글 잘 웃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아기가 할머니들에게는 낯을 가리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 특히 짧게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서는 너무 잘 웃어서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 아이가 낯도 안 가리네?'라는 말은 아마 '아기가 참 순하고 착하네'라는 말의 의도이겠지만, 무언가 찝찝함을 남기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그렇지 않겠지만 '보통 제대로 발달하는 아이라면(=혹은 똑똑한 아이라면) 낯을 가릴 때인데, 네 아기는 낯을 안 가리네'라고 들리는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처럼 비비 꼬인 엄마 한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아기 발달에 매우 민감하니, 비비 꼬이지 않아도 이렇게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여하튼 무언가 아기 발달에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할 건덕지를 줬다. 


잘 웃어주는 아기. 무뚝뚝한 엄마도 웃게 된다.




어느 날 아기장난감도서관에 들렸다가 '김수연의 아기발달백과'라는 책이 있길래 빌려보게 됐다. 아기의 장난감을 2주에 한 번씩 바꾸러 가는 곳인데 그곳은 엄마아빠를 위한 도서도 대여하고 있었고, 아기장난감도서관이라는 특성상 아기 발달과 관련한 서적과 육아서가 많았다.  


이 책은 은근 내가 궁금하거나 의아했던 것들을 콕 집어 알려주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3~6개월 발달 부분의 낯가림에 대한 설명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보고 우는 것도 낯가림이지만, 웃는 것도 역시 낯가림, 즉 새로운 사람에 대한 반응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대부분 주양육자가 아닐 때 울음으로 반응하므로 낯선 사람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여야 부모와의 애착형성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보 부모의 경우 자신과 애착 관계 형성이 잘 되지 않아서 낯선 사람을 더 선호한다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기가 낯선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것 또한 매일 접하는 가족과 구별한다는 뜻이므로 아이의 비언어 인지발달 측면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김수연의 아기발달백과 110p


아기가 새로운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그러다 웃는 것 역시 '낯가림'의 일종이라는 설명. 그렇구나, 웃는 것도 낯가림이구나. 사실 생각해 보면 어른들도 사회생활을 할 때 낯선 사람에게 웃어야 하는 일이 많다. 어른이나 애나 웃음 역시 낯가림의 일종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밖에서 '아기가 참 잘 웃네요. 낯도 안 가리네요'라고 말할 때마다 느꼈던 찝찝함이 사라졌다. 모르는 사람에게 '아니에요. 웃는 것도 낯가림이에요.'라고 설명할 필요는 없고 그저 속으로 생각하면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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