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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4. 2023

‘후킹 문구’가 부르는 공포심의 지긋지긋함

심지어 오타를 내라는 조언도 있더라

육아를 하면서 나의 SNS 피드는 육아와 관련된 정보로 가득 찼다. 육아와 관련해서 올라오는 글들 중 굉장히 많은 콘텐츠들이 엄마의 불안과 위기감, 공포심을 부추기는 것들이었다. '~절대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고 있다면 그러지 마세요', '아직도 ~하고 있나요?' 등등.


SNS 상에서 이런 불안과 위기감을 부추기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SNS 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집 복도에 세워져 있는 유모차 위에 A4용지 몇 장이 놓여있다. 유아동 학습지 회사에서 놓아둔 A4용지들이었다. 종종 유용한 정보를 주는 학습지 회사도 있기에 '오늘은 또 무슨 내용일까'하고 살펴봤다.


그 A4용지에는 어떤 책에서 발췌된 지도 모를 정보들이 쓰여있었다. "자폐 증상을 보이는 아기들은 기기 과정을 생략하고 먼저 서려고 한다"가 주된 주장이고 그 외 발달 지연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는 내용이 가득 찬 종이들이었다.


@pixabay




안 그래도 나는 불안이 높은 성격의 엄마인데 '헉, 우리 아기가 배밀이는 잘하지만 네발 기기는 아직이고, 소파를 잡고 먼저 계속 일어서려고 하는데.. 소파를 잡고 일어서지 못하게 하고 네발 기기를 하도록 계속 유도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조급함이 찾아왔다.


불안과 조급함이 찾아올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관련된 서적들을 찬찬히 찾아보는 일이다. 그것이 육아가 됐든 나의 정신건강이 됐든 커리어가 됐든 관계가 됐든 말이다.


김수연의 아기발달백과 7~10개월 부분에는 이런 글이 있다.


엎드려있다가 하체를 움직여서 스스로 앉은 다음, 기지 않고 소파를 잡고 일어서는 것을 즐기는 아기들이 있다. 이런 아기들에게는 굳이 기기를 하도록 강요할 필요는 없다.

물론 기다가 소파를 잡고 일어서는 동작을 하는 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앉은 자세에서 놀다가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고 해서 굳이 일어서는 동작을 막을 필요는 없다. (...)

기다가 잡고 서서 걷는 것도 정상 발달 과정입니다. 기다가 스스로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집안에 소파나 책상, 의자 같은 가구들이 있으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잡고 일어나서 옆으로 걷는다면 그냥 두셔도 좋습니다. (김수연의 아기발달백과 179p)


물론 뇌에 문제가 있는 아기들의 대부분이 기기 동작을 하기 어렵다는 유인물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기가 늦거나 조금 순서가 바뀐다고 해서 모두 발달 지연인 것은 아니었다. 또한 기기 순서 외에도 다른 것을 체크해 보고 판단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있었다.


뇌의 운동 발달 영역에 심한 손상을 입은 아기의 경우 기기 동작을 하기가 어렵고, 뇌 전체의 성숙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아 역시 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순히 기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해서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발달장애가 있을 것으로 진단해서는 안 된다. 기지 않는 아기를 관찰할 때 함께 살펴봐야 하는 것이 있다. 단순히 기기 동작만 가능하지 않은 경우인지, 손 조작이나 언어 이해력도 떨어지는 경우인지 확인해야 한다. (...)

아기가 기기 동작을 잘하지 못할 경우 먼저 손 조작을 관찰해 보고, 만약 손 조작도 늦어진다면 전반적인 발달 검사를 받아서인지 발달 능력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김수연의 아기 발달 백과 191p)



우리 집에 오프라인으로까지 날아온, 엄마의 공포심을 조장하는, 어떤 책에서 발췌한 것인지도 모를 그 유인물과 이 책의 다른 점은, 기어가기 순서가 바뀌었다면 다른 어떤 점을 체크해봐야 하는지, 몇 개월까지 기지 않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인지 등 설명 유무다.  


우리 아기는 아직 7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배밀이를 하고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고 나는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역시 유인물이나 SNS에서 보이는 정체 모를 정보를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하나 육아서를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불안증은 꼭 육아에 대한 것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거의 모든 콘텐츠들이 '~절대 해선 안 되는 이유', '~하지 마세요' 등의 문구로 시작된다.


요새 육아휴직을 하면서 블로그와 브런치, 인스타그램을 좀 활발하게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블로그 글이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을 타고 조회수를 많이 내는 게시물을 만드는지에 대한 영상이나 글들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그런 조언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위기감을 조성하는 후킹 문구를 써라'라는 것이다. 위기감과 불안, 공포심을 조성하면서 부정적인 어구를 써야 사람들이 많이 클릭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부러 오타를 쓰라는 조언까지 있었다. 사람들이 그 오타를 지적하기 위해서 몰려든다는 것이다.


애초에 불안이 많은 나 같은 기질의 사람이 이런 콘텐츠를 보고 올라가는 불안과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크다. 그러므로 적어도 나는 이런 식의 스트레스를 주는 '후킹 문구'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기사를 쓸 때 나 역시 그런 제목을 많이 발행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됐다. 물론 기사 제목을 뽑는 것은 기자 보다 데스크의 권한이 더 큰 일이긴 하지만, 이런 부분을 유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정말 위험을 알리는 정보이거나, 정말 필요할 때는 이런 후킹 문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의도치 않게 오타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러 조회수를 노리기 위해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 내가 흔들리고 보니 굉장히 불쾌했다.


나 역시 조회수 많이 내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낸 공포와 불안감 조성에 흔들리는 콘텐츠 소비자이기도 하다. 이런 후킹문구를 보면 궁금증이 생기지만 클릭을 하지 않는 노력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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