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당근 기능은 바로..
당근(구 당근마켓)을 하며 느낀 기쁨과 슬픔을 열거하라면 책 한 권이 만들어질 것이다. '당근 만인보' 같은 에세이를 써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아무튼 당근마켓'과 같은 책이 나와버렸기에. 그리고 '내가 당근 마케터도 아니고 뭐 그런 글을 쓰겠어' 라며 묻어뒀었다.
원래부터 옷을 사고파는 걸 좋아해서 당근을 매우 애용하고 있었지만, 당근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임신을 하고나서부터다. 육아용품의 세계가 끝이 없는 이유가 아기 용품을 3~4달 주기로 바꾸어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3달에 신나게 쳐다보았던 '타이니 모빌'과 같은 장난감은 4달째 아기가 된 이후로 아예 관심에서 사라졌다. '아기 운동장'과 같은 장난감도 마찬가지로 4~6달 때는 신나게 가지고 놀더니 이제는 관심사에서 사라졌다.
장난감뿐 아니다. 신생아 때부터 3달 정도까지 잘 쓴 '리안 드림콧' 아기 침대라든가, 역류방지 쿠션이라든가. 혹은 수유 쿠션이라든가. 혹은 출산 후 내가 사용할 도넛 방석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새것을 사기엔 아까울 뿐 아니라, 당근으로 사면 육아엄마아빠들의 넓은 마음 덕분에 옷가지들도 나눔 받는 등 좋은 일들이 많았다.
'애 키우면서 당근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어' 일주일에도 두세 번은 당근을 이용하는 우리 부부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당근에서 좋아하는 기능은 몇 가지 있지만, 첫 번째로는 당연히 '키워드 알림'이다. 백화점이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내가 사고 싶은 육아템이나 옷이 생기면 '키워드 알림'을 해놓는다. 잊고 있던 찰나 '알림'에 내가 등록해 놓은 키워드의 물건이 올라올 때의 성취감이란. 그렇기에 나는 항상 키워드 등록창을 매번 삭제하고, 또 등록해 놓으며 애지중지 관리한다.
두 번째는 '모아보기' 기능이다. 이 기능이 바로 내가 오늘 글을 쓴 이유다. 육아를 하면서 육아템의 그 짧은 기능성 때문에 매번 뭘 사야 할지 찾아보는 것도 일이었다. 3개월에 맞는 장난감, 6개월에 맞는 장난감, 시기에 맞는 책은 무엇이고, 또 어떤 장난감이 발달에 안 좋았다더라, 어떤 아이템을 쓰면 이유식을 잘 먹더라, 등등 이런 아이템 관련한 서치 시간만 빼도 하루에 글쓰기를 한 개는 더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 때문에 키워드 알림을 통해 내가 사고 싶은 걸 '매우 구체적'으로 모델명까지 적어두고, 그 반가운 알람이 울리면 판매자의 판매목록을 주욱 살펴본다. 내가 사고 싶은 걸 이미 산 사람이고, 나는 키워드를 매우 구체적으로 등록해 놓기 때문에 대부분의 판매자들이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판매자'를 찾으면 내가 찾던 그 '물건'이 당근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재수가 좋은 경우다. 그러면 나는 그 판매자 목록을 주욱 살펴보면서 이렇게 외친다.
제가 올려두신 거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저거랑 저거랑 다 살게요.
이들의 판매물건들은'이거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하고고심하고 고른 선물인 마냥 대부분의 물품들이 마음에 든다. 마치 나를 위한 큐레이터 같다.
나를 위한 큐레이터는 이미 육아도 나보다 몇 개월 먼저 하고 있는 엄마들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이 이미 고심해서 좋은 아이템들을 공부하고, 고르고, 산 후 더 싼 값에 물건을 내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 내가 미래에 필요한 물건들일 확률이 높다. 게다가 내가 미래에 서치 할 시간까지 줄여준다...(소비자의 합리화인 걸 알지만....)
여하튼 이 당근 큐레이터들을 찾으면 매우 흡족한 마음으로 '모아보기'를 누른다. 그리고 몇 달 뒤 그 모아두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나의 안목을 칭찬한다. '역시. 이 사람 이거 샀을 줄 알았어'.
저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또 살게요 ^^
이미 한두 번의 거래가 오간 사람이기에 그가 보내주는 택배 박스에는 내가 사지 않은 물품들도 '나눔' 돼 온다. 나는 한꺼번에 왕창 물건을 사기에 몇가지 나눔을 해달라고 해도 조금 당당하다(?).
내 취향을 쏙 닮은, 게다가 육아 선배인 큐레이터인 그녀들을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중고 거래의 기쁨을 훨씬 우상향 한다. 나의 큐레이터들에게 언젠가 밥이라도 사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