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지 마
안다.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찾으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을. 그리고 필요하다는 것을.
아기를 낳고 키우는 사람이 느끼는 신비함, 귀여움, 사랑스러움은 동시에 버거움과 지침이 뒤섞여있어 '나'를 찾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안다.
그런데 종종 육아와 집안일에 힘들어 필요한 '커피 한 시간' 혹은 '산책 한 시간'의 시간을 굳이 '나를 찾는 시간'으로 말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지 못해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냥 쉴 시간,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나를 찾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압박이 된다. 육아를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나까지 찾아야 하니 더 헐떡 거린다.
나를 찾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기가 자거나 누군가 아기를 돌봐줄 기회가 생겼을 때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나를 찾으려면 뭘 해야 할까?'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보통 나는 그때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거나, 그것도 못하는 컨디션이면 책이라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여하튼 그 짧은 찰나의 시간을 매우 생산성 있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당연히 그저 핸드폰만 보는 것보다 생산성 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은 힘들어도 다시 육아에 투입됐을 때 이전과 다른 에너지가 나긴 하지만, 매번 그러기는 힘들다.
'세상에 너를 소리쳐!'라는 책 제목처럼 무언가 나만의 성과를 내지 않고 세상에 나를 드러내지 않으면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특히 요즘처럼 육아를 하는 주부이면서 SNS 활동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쌓아가고 있는 능력자들, 인플루언서들을 보면 '나는 뭘하고 있는 걸까' 죄책감과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나 없는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기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할 때 집중하는가?' 등등 나를 찾기 위해 질문하라는 그 많은 질문들을 다 뒤엎어 놓는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날을 만든다.
물론 다른 날, 평상시에 이러한 질문들을 치열하게 해 나가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매일매일 그런 질문을 하고 그에 맞는 행위를 해나가고, 더구나 육아와 집안일까지 하려면 버거운 하루가 되어간다.
육아와 집안일만 온전히 하는 하루를 보내면 '나'를 잃는 것인가? 육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집안을 청소하는 '나'는 '나'가 아닌 것인가? 아기를 낳고 키우고 있는 나 만을 좀 대견하게 여기면 안 되는 걸까?
어떤 글을 써야지, 어떤 게시물을 업로드해야지, 나아가 어떤 일을 해야지! 라고 머리 한켠으로 생각하지 않은 채로 하는 육아는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아기가 자지 않아 짜증이 확 올라올 때는 '아기가 자면 이것저것을 해야지'라고 계획해 둔 상황에서였다.
머리 한 켠에 계획이 없는 날은 오히려 아기가 안 자면 뒹굴뒹굴 같이 놀기도 하고 그다지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이틀은 그냥 육아와 집안일만 하고 '나'도 찾지 않고, 남는 시간은 온전히 휴식하는 날을 보낸다.
'다 괜찮아~'류의 에세이 같은 글이긴 하지만 유독 육아나 집안일에 대해서는 '나'를 잃는 것이라 보는 시선이 너무나 많다. '일을 하는 나'일 때도 정작 상사 눈치 보기, 클라이언트 눈치 보기 등 적확히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닐 때도 많은데 일을 할 때는 '나'임에 더 관대한 것 같다.
당연히 '나'를 찾는 것에서 큰 보람과 스트레스 해소를 느끼는 사람은 그대로 나를 찾으면 된다.
나를 찾으라는 나를 위한 말에도 이상한 압박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만이라도 '나'를 미뤄두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또한 동시에 생산적이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보내고, 그저 쉬고 있는 나도 '괜찮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