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아기를 먹이고, 우리 엄마는 내 반찬을 만들고
우리 엄마는 내가 임신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은 손주를 돌보는, 즉 '황혼 육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방송을 통해 선언했기에, 나 역시 엄마에게 손주를 봐달라는 부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엄마의 '황혼 육아 거절 선언'은 이전에 브런치에 자세하게 써둔 적이 있는데 꽤 인기 있는 글이 되었다.
https://brunch.co.kr/@after6min/130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시기 아기를 낳은 친구의 집에 방문했다. 당시 5개월이던 나의 아기와, 태어난 지 50일 정도 된 친구의 아기를 두고 우리는 육아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친구의 어머니가 갑자기 친구의 집에 방문하셨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고 계셔서 한 번씩 친구의 집에 들러 아기를 보고 가시는 모양이었다.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우와, 진짜 너무 부럽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몸이 좋지 않고 70대인 우리 엄마에게 황혼 육아를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는 엄마아빠의 도움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움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나의 어린아이 육아를 직접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황혼 육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왜냐면 나는 거의 한 달에 1~2번 부모님을 만났고, 아기가 어려 만나는 시간은 2~3시간 정도로 짧았지만 한번 만날 때마다 꽤 많은 양의 음식을 공수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몇 가지 물어보신다. 만나는 당일날의 메뉴와 함께 냉동으로 만들어 둘 반찬 메뉴도 물어보신다. 보통 만나는 당일 날의 메뉴는 엄마가 편하신 대로 하시라고 별다른 말을 얹지 않지만, 냉동으로 가져올 반찬은 나도 꽤 고심해서 전달하는 편이다.
보통 냉동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반찬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이후, 냉동으로 보관하기 좋은 반찬들은 불고기, 제육볶음, 사골 국물, 김치찌개로 좁혀졌다. 그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인 우엉조림과 어묵볶음 등을 주문(?)했지만 냉장보관을 해야 하는 터라 싸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끼니는 매번 챙겨 먹기 어렵고 배달 음식도 자주 먹기 때문이다. 혹은 시리얼이나 찐 고구마 등으로 대충 때우는 일도 많다.
이제는 엄마가 '어떤 반찬 해줄까?'라고 물으면 불고기와 제육볶음, 사골, 김치찌개를 지퍼백에 넣어 얼려달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엄마가 지퍼백에 얼려둔 반찬들을 쟁여 놓이면 일주일 정도는 내가 밥을 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집밥'을 먹을 수 있다.
이때 냉동으로 만들어둔 반찬들 외에도 엄마는 홈쇼핑에서 사놓은 젓갈류나 김치류 등을 싸주기에 한번 집에 갈 때마다 일주일~이주일 치의 음식들을 받아온다. 친정에서 한 번, 시댁에서 한번 이렇게 음식들을 받아오면 사실 내가 집밥을 하는 날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된다. 시부모님은 직접 농사를 지으신 유기농 야채들과 김치를 담가 주신다.
나는 나의 아기를 먹이는 일에 신경 쓰고, 우리 엄마는 직접 손주를 돌보지 않더라도 나를 먹이는, 즉 엄마의 아이인 나를 먹이는 일에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왜 '황혼육아'가 아니란 말인가.
이 생각을 하니 엄마라는 존재는 평생을 나의 아이 먹이는 일을 신경 쓰는 사람인 것 같다. 많은 엄마들의 삶이 이러니 포털 사이트에서 요리 카테고리가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테다.
엄마가 나의 아기를 돌봐주는, 즉 '황혼육아'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육아를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밥 먹는 일에 대해 엄마에게 빌붙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마치 당연히 엄마가 내놓아야 하는 것을 내놓으라는 식의 태도로 반찬을 부탁한다. 엄마의 육아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일까.
70대가 되어도 아이가 좋아할 음식을 만들고 얼려서 보내주는 삶이라니. 나의 아기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조금 섭섭함을 느낀 내가 어이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반찬을 공수해 오겠지. 이런 나를 생각하니, 아이가 조금 크면 육아가 끝날 것이라 예상한 나의 짧은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조금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