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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Oct 23. 2023

엄마 된 후 바뀐 일을 보는 관점

노동자로서의 대체불가능성 vs 엄마로서의 대체불가능성

그러니까 몇 년 전쯤이었을까. 일에서 나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사람이란 걸 알아버린 날 말이다. 사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겠어!'라고 다짐하며 매우 치열하게 몰두한 적도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나름 '회사 이름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일하고 싶다'는 전제 위에서 고른 업종이었다. 하루하루 일한 발자취가 회사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적히길 바랐다. 내 이름이 적힌 기사들이 쌓여가고, (물론 회사 이름이 더 크게 들어가지만) 가끔은 취재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기도 하는 나날이었지만 어떤 분야에서나 그렇듯 나는 '즉각적으로 대체가능한' 인력 수준이었다.


언제든 대체가능한 인력 정도의 수준인 것은 나의 특별한 잘못이라기보다 90~99%의 인력이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하다. 아마 대체불가능한 1%의 인재라면, 그는 회사가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회사를 다니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브랜드가 이미 있을 것이다. 이 업계에선 일종의 '스타 기자'였을 것이다. 그런 인력은 그저 '아직' 회사를 나가지 않았을 뿐이다.


1%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센스 있는 일잘러'라면 회사에 있는 것보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면 회사에 있는 것보다는 더 끈질기고 꼼꼼하게 열정을 쏟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편이 회사에 남는 것보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기에 언급하기도 지겨운 '퍼스널 브랜딩'의 시대가 온 것이겠지.




사실 저런 생각을 할 때쯤 나는 임신을 준비했다. 일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새벽에도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내일 쏠 기사에 두근두근했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다. (상사는 안 믿겠지만, 가끔 그럴 때도 있었다.)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가족 구성원을 늘리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약간 '주객전도'처럼 느껴졌다. 내가 일을 하고 싶은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응원받고 싶은 마음, 그들과 즐거운 생활을 영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일을 하기 위해 나를 응원해 주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가족 만들기를 포기하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임을 안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입사한 지 6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결혼한 지는 3년 정도 되었을 때다. 그때부터 난임 병원에 다녔고 입사한 지 8년 차에 출산으로 인해 장기 휴직에 들어가게 된다.


일도 중요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에 하나 더 추가하는 일도 나에게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거나 아기를 만드는 것이 무조건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일을 가진 채 아기를 가진 것이 중요했다는 이야기다. 어느 정도 일에도 푹 빠져 살아보고, 일에 시들해져도 보고 난 후 계획을 세워서 아기를 가진 것이 나에겐 좋은 선택이었다.


누구나 다 하는 말이겠지만 사랑과 일, 나와 가족의 '균형'이 중요했다. 안다. '균형'이라는 말이 가끔은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으라는 말과 같다는 것. 그러나 언제나 나에게 중요한 것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뻔한 말이지만 중요한 것들의 균형을 잡는 일이 삶의 중요한 기술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렇게 나름 즐겁고 우울하지 않게 육아를 할 수 있는 이유도, 회사라는 소속을 두고 출산휴가급여와 육아휴직급여를 받으며 육아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크다. 통장에 쓸만한 생활비가 적어도 몇 달은 꽂히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했거나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이 돈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대체로 행복한 육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육아하면서 정말 힘에 부칠 때는 '아기를 위해 희생을 하고 있다'라는 마음가짐보다 '나는 지금 육아라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벌고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됐다. 프로페셔널한 마음(?)으로 육아를 하니 아기의 징징거림에 거리를 두고 '허허' 웃을 수 있었고 기분도 나아졌다. 역시 프로페셔널리즘은 돈에서부터 나오는 것.


일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정부에서 주는 부모급여와 아동수당 정도만 받을 수 있는데 주는 기간도 짧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이렇게 육아를 일종의 '일' 관점으로 생각해 보니 이전에 저출생에 대한 취재를 하다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보육 자체를 도와주는 일도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아이를 낳고 이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우선 아이를 낳고도 많은 부분의 육아 시간을 포기한 후 일을 나간다면, '내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두고도 일을 나가고 싶은 직장'이어야 한다. 물론 월급이 200~300만 원 이상을 훨씬 웃돌고 2~3배 이상 된다면 조금 더 쉽게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을 나가는 동안 고용할 시터비 등(250만~350만 원 선)을 충당하고도 현금이 훨씬 남는다면, 일을 할 동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월급이 시터비보다 훨씬 웃돌지 않고 비슷할 경우다. 이 경우 일을 해도 아이 돌봄비로 월급이 고스란히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럴 때, 굳이 아이를 남에게 맡기면서 일을 할 동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커리어'가 끊기지 않기 위해, 월급을 모두 시터비로 쓰면서도 일을 선택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시터비로 모두 월급을 내느니 그냥 내가 보는 게 낫지'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미래의 커리어'를 도모할 수 있는 일이냐. '양질의 일자리'가 여성 경력단절을 막을 수 있는 키워드가 되는 과정이다.  




처음 말했던 '대체불가능성'을 위주로 일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많은 인력은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나 육아라는 일에서는 엄마라는 자리가 거의 대체불가능하다. 물론 조부모나 보육 교사, 시터 등 보육을 대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엄마라는 존재를 대체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다른 무언가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이 크게 남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 한 언론사에서 '문화 콘텐츠 분야를 쓰는 기자'라는 일에서보다 '엄마'라는 분야에서의 대체불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기자로서 나는 97% 대체가능하다고 해보자. 100%는 너무 슬프니깐 3% 정도는 나만의 쓸모가 있다고 봐주자. 엄마라는 영역에서는 아마 5~10% 정도만이 날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같이 아기가 어릴 때는 어쩌면 대체가능성이 0% 일수도 있고.  


여하튼 일에서보다 육아에서 나의 '대체불가능성'이 확연히 높기 때문에 엄마들은 일보다 육아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듣기엔 뭔 당연한 말을 이렇게 줄줄이 소시지처럼 늘어놓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는 글이지만, 사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요즘 세상에 아이를 낳았다고 왜 일을 그만두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계속하려면 직장에서 나의 대체불가능성이 어느 정도는 높다고, 즉 직장에서 내가 '쓸모 있다'라고 느껴지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널리 퍼지기 때문에 요즘 많은 엄마들이 '퍼스널 브랜딩'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스널 브랜딩에서 나는 대체가 불가능하다. 자신이 브랜드가 되어버리니까. 이런 일인 경우 육아나 또 다른 사정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월급이 천만 원쯤 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은 읽을 필요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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