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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Oct 20. 2023

그 좋은 아로마오일, 저한텐 바르지 마세요

큰 호사를 누리려면 작은 호사를 포기해야 하나보다

아기가 6개월이 되자 낯을 가리고 분리불안이 생긴 것이 눈에 보였다. 아기는 자신의 시야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울었다. 아기는 생후 40일부터 6시간 통잠을 자고, 낮잠도 하루 3번씩 1시간씩 규칙적으로 자 주었기에 오히려 6개월 이전에는 내 시간이 넉넉하다 느낄 정도였다. 독서도, 글쓰기를 위한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생후 6개월이 되자 밤잠을 잘자던 아기가 내 옆이 아니면 잠들지 않았다. 잘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 내가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보이면 다시 잘 잠들었지만, 내가 보이지 않으면 잠에서 깨 울었다. 낮잠 역시 비슷해서 1시간도 넘게 자던 낮잠은 내가 옆에 없을 경우 15분으로 줄었다. 낮에 내가 옆에서 누워있을 경우는 이전과 같이 1시간을 잤다.


6개월 이전에는 아기가 잠들면 방문을 닫고 나와 노트북을 만지작 거릴 수 있었지만, 이제 아기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보는 정도였다. 아기의 옆에서 노트북 타자를 치면 소음 때문에 아기는 금방 잠에서 깨고 말았다.


글쓰기 시간은 조금 포기할 수 있었지만 일주일에 2번, 1시간씩 가는 요가는 포기하기 어려웠다. 출산 이전에도 뒤틀어진 내 체형 때문에 일주일에 3번, 1시간씩 요가를 해왔다. 요가를 하지 않으면 귀신같이 허리와 골반 통증이 심해졌다.


일주일에 2번, 1시간씩의 운동 시간도 나에게는 매우 적은 시간이었는데 아기는 그 시간에도 나를 찾았다. 물론 이 분리불안 시기도 곧 지나갈 것임은 알기에 심정적으로 크게 절망하지는 않았다. 요가 시간을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 그렇게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통증 때문에 오히려 나머지 육아 시간의 질이 낮아졌다. 일주일에 2~3번 1시간 정도는 아기가 나를 찾으며 울어대도 운동은 해야 했다.




내가 없으면 바로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내가 운동에 가면 남편은 보통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했다. 아기가 유모차에서 세상구경을 하면 꽤 오래 얌전했기 때문이다. 자기 침대에서는 잠을 잘 자지도 않으면서 유모차에서는 1시간 정도 잠을 잘 때도 많았다. 그 정도로 유모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기에 엄마가 없는 시간, 아빠는 아기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때문에 남편은 내가 요가에 가면 15분 정도는 아기 밥을 먹이고, 나머지 시간은 아기를 어르다가 도저히 안될 때는 유모차를 태우고 산책을 하고, 내가 다니는 요가원 앞으로 마중을 나오곤 했었다.


유모차에서 세상구경하면 잘 안 우는 아기. 저 유모차에서 30분 넘게 자는 적도 많다. 




그날 요가 수업은 기존의 선생님이 휴가를 가게 되어서 다른 선생님이 대체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이 날따라 요가를 듣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 6명이 함께 요가 수업을 했다. 대체 수업을 맡으신 선생님은 요가 학원 원장님의 친구였는데, 보통은 1:1 수업만 진행하는 강사셨다. 이 강사님은 자신이 1:1 수업만 하다가 단체 수업을 하니 감회가 색다르고, 수업을 듣는 내내 수강생들의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요가 선생님은 엄청나게 친절했다. 요가 마지막 사바아사나(시체 자세, 요가 수련 마지막에 누워있는 자세로 마무리하는 것) 자세를 할 때 한 명 한 명에게 다가와 목 부근에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를 해주시기까지 했다. 보통 단체 요가 수업에서는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그저 오일을 발라준 것이 아니라 목 부근을 마사지해주시기까지 하셔서 내 얼굴 주변에선 온통 레몬그라스 오일의 향이 맴돌았다.


단체 요가 수업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나는 너무나 행복했고 며칠 동안 쌓인 육아의 피로함까지 싹 날아간듯했다. 그렇게 신나고 가볍게 집으로 나섰다.




호사의 요가를 하고 나오니, 남편과 아기는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아기는 내가 1시간 동안 안 보여 기분이 상당히 나 빠보였다. 인생 6개월 차 아기임에도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너무나 명확하게 구별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 일정이 있어 아기를 황급히 나에게 넘기고(?) 떠났다. 나는 이제 아기가 나와 함께 있으니 다시 컨디션이 좋아질 것이라 예측하고 아무 생각 없이 아기를 안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기는 평상시와 달리 마치 내가 없어진 것처럼 울어재꼈다. 거의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이었다. 남편이 말하던, 내가 없을 때 보이는 상태가 이것이구나 처음 느껴보았다. '얘가 왜 이러지?' 하면서 생각해 보니 '혹시 아로마 오일 때문인가?'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아기들은 엄마를 시각적으로도 느끼지만 냄새로도 느낀다고 했던 것을 수차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기를 내려놓고 목 주변의 오일을 씻어내려고 하니 아기가 너무 울어댔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아기는 울 때 바닥에 내려놓으면 더욱 심하게 울어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아기를 안고 화장실에 가서 목 주변을 바디워시를 묻히면서 빡빡 닦아댔다. 아로마오일의 특성상 아무리 닦아도 쉽사리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기는 계속 울어대고.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아기를 넘기고 달래라고 하고 오일을 깨끗하게 닦아낼 수 있을 텐데.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한 손으로 목을 닦아대도 오일향은 매우 끈덕지게 남아있었다. 물로 닦다 수건으로 닦다 물티슈로 닦다 아무튼 내 목이 벌게져서 거의 닳을 때까지 닦아대고, 나의 체취(?)가 심하게 남아있는 티셔츠로 갈아입으니 그제야 아기는 울음을 멈췄다.


  



요가 선생님이 베풀어준 아로마오일이라는 친절이 이 정도로 난감한 결과를 낳을 줄이야. 만약 다음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저한테는 아로마오일을 바르지 마세요'라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그 상황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호사를 누리지 못함이 너무나 아까웠다. 나를 아로마오일의 멋짐을 모르는 깐깐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해서 아마 그런 상황이 와도 어물쩍거릴 것 같았다.


그 좋은 아로마 오일을 바르지 말라고 부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니 인생은 참 모르는 일이다. 아기의 사랑이라는 가장 큰 호사 덕분에 다른 작은 호사들은 당분간 포기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집에 있는 아로마오일도 사용하지 못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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