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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6. 2023

유모차 끄는 동시에 에세이 써봤다

혼잣말 빌런의 육아 중 글쓰기

회사에 다닐 때 혼잣말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회사에서 혼잣말하는 동료가 너무 싫습니다' 따위의 글을 본 날, 혼자 찔려서 혼잣말을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런데 아기를 키우고 보니 혼잣말을 잘하는 것이 빌런이라기보다 아기 키우기에 유용한 기술이란 것을 알게 됐다. 많은 육아서에서 공통적으로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많이 해주면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육아서를 보면 유모차로 아이와 산책을 하면서도 '애기야 이것 좀 봐~ 이건 나무야~ 녹색이네~ 붕붕~ 자동차가 지나가네~ 어제 우리도 아빠랑 자동차 탔었지?~ 오늘은 날씨가 춥네~' 따위의 말을 계속하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상대가 아예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혼잣말을 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 나처럼 혼잣말 빌런이어도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 혼잣말도 알아들어줄 상대가 있어야 하게 된다. (그렇게 치면 '진짜' 혼잣말은 아닌 셈이다.)


이 방법은 앞보기를 할 때보다 마주보기가 되는 유모차를 사용할 때 더 좋은 것 같다ㅎㅎ 사진은 앞보기 유모차를 끄는 모습..


혼잣말 빌런인 내가 최근 굉장히 재미 들린 놀이가 있다. 아기와 함께 유모차로 산책을 하면서 하는 글쓰기 놀이(?)다.


이 방법은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들려줄 수도 있고 동시에 나의 글쓰기 생산성까지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녹음기로 에세이를 쓰는 방법이다.


녹음기를 켜고 말로 에세이 내용을 주절 거리는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1~2가지 생각에 대해 주절거려 놓으면 된다.


그다음 집에 와서 아기가 자는 시간 등을 이용해서 그 녹음을 '클로바노트' 어플 등으로 텍스트화를 시킨 다음, 문단 배치나 수정을 하면서 에세이를 완성하면 된다.


밖에서 아기와 산책을 하면서 에세이 내용을 녹음해둔다. (왼쪽) 집에와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시키는 어플을 사용해 음성 기록을 텍스트화 한다.(오른쪽)
음성 기록을 나의 카카오톡으로 다운로드하고, 카카오톡에서 텍스트 파일을 받아 컴퓨터에서 글을 쓰면 된다.


물론 길을 가면서 이렇게 혼자 길게 말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다. 옆에 누가 지나갈 때마다 창피한 느낌도 있다. 그러나 옆에 누가 지나갈 때는 조용히 했다가 인기척이 사라지면 그때 다시 말해도 된다. 어차피 음성을 텍스트화할 때 좀 쉬면서 말해도, 아주 느리게 말해도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느리게 말한다고 해서 (...) 같은 기호가 들어가거나 쉬었다 말한다고 해서 ', ' 같은 기호가 적히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 이 방법이 엄청나게 신박한 방법도 아니고, 아주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이 방식으로 나름대로 창작을 해왔을 것이다.


가수 스팅은 정원이 딸린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저택 곳곳에 녹음기를 설치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원을 걸으면서 흥얼흥얼 하는 소리를 녹음기에 녹음해 놓고, 나중에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 녹음들을 함께 들으면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당연히 내가 스팅 급의 어떤 대단한 창작물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기와 함께 유모차 산책을 하는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로 소개해 본다.


이 글 역시 유모차 산책을 하면서 녹음한 내용을 수정하면서 쓴 글이다.


이 방법으로 글을 쓴 지 일주일 정도가 된 것 같은데 산책하는 동안 아기에게 여러 가지 말도 들려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굉장히 신이 났다. 역시 나는 혼잣말 빌런이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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