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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7. 2023

포기하고 싶을 때 '이것'을 내린다

죽죽죽 내려보자

최근 매일 글쓰기를 하면서 글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기사를 써야 할 때는 자주 '쓰기 싫다 ‘는 생각을 해댄 것 같은데, 글쓰기가 월급의 조건이 아닌 상황이 되니 오히려 쓰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내 일상이, 즉 기록할 만한 일들이 흐르는 속도보다 내 글쓰기의 속도가 느렸기에 항상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아기가 잠들면 바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아기는 낮잠을 하루 3차례, 귀신같이 35분만 잔다. 그 때문에 아기에게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이따가 35분이 있을 때 뭐뭐를 써야지'라는 생각이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계획을 해둬야 35분 동안 미친 듯이 집중을 해서 뭐라도 써놓을 수 있다.


며칠 전엔 남편이 '2~3시간 정도 나 혼자 볼 테니깐 나가서 커피 먹고 와~'라고 말했다. 이전 같으면 냉큼 친구를 만나거나, 마사지 어플을 통해 가성비 좋은 마사지를 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짬이 생기면 무조건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간다. 그동안 못쓴 글을 쓰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글감을 정리하기도 하고, 글쓰기 온라인 강의도 듣는다.





이 정도로 갑자기 글쓰기에 열정을 다하는 시기가 오니, 또 한편으로는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인세를 받는 작가가 아닌데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이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써서 떡이 나오나 뭐가 나오나?'


그날도 카페에서 글쓰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짧은 찰나, 마치 10년 전 어느 날의 내가 떠올랐다. 기자가 되겠다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읽고, 논술 글쓰기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던 나날들이었다. 그때도 머리를 대충 묶고 화장도 하지 않고 꼬질한 차림이었다. 육아를 하면서 짬을 내 카페에서 글을 쓰고 돌아오는 지금 나의 몰골과 정확히 일치했다. 한마디로 후줄근했다. 슬픈 일은 지금은 10년 더 늙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10년 전이랑 바뀐 게 뭐지? 그렇게 열심히 변화하고 성장하려고 했는데 10년 전이랑 난 비슷한 것 같아.'


물론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10년 전 나보다 달라진 것이 많긴 하다. 그때와 비교하면 직업도 있고 내가 만든 가족, 남편과 아이도 있고 나의 자산들도 있다.


그러나 카페에서 노트북을 들고 별로 반응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점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짓을 도대체 언제까지 하려고 할까? 내 인생은 변한 듯 변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해서 SNS 어플을 켰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인스타툰이 올라왔다. 이 작가도 육아를 하면서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표현력이 좋은 그림, 인스타툰이지만 육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 들어간 에세이 형식의 인스타툰을 보고 있자니 '이 작가는 참 재능이 많구나. 요새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인스타툰 속 아기는 30개월 정도가 된 아기였다. 갑자기 이 아기가 7개월 일 때 작가는 어떤 툰을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스크롤을 죽죽 내렸다.


카카오톡 askup 에서 그려준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는 사람 그림. 진짜 세상 좋아졌네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그래, 아예 맨 처음 피드엔 뭐가 있는지 한 번 봐보자'는 마음이 들어 맨 처음 피드가 나올 때까지 스크롤을 내렸다. 생각보다 스크롤은 엄청나게 길었다.


그 작가의 맨 처음 피드엔 아기가 있기도 전, 신혼 생활 모습을 담은 일상툰이 담겨있었다. 맨 처음 올린 그 피드는 컷도 4개였고, 그림체도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스토리 라인도 매우 짧았고 내가 좋아하는 성격의 에세이 느낌도 들지 않았다. 현재 그가 그리는 인스타툰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그가 그리는 인스타툰은 10컷이 모자랄 듯한 스토리라인에, 한컷 한컷 포인트가 있는 귀여운 그림, 피드를 보지 않아도 가끔 생각나는 웃기고 찰진 드립, 마음에 드는 색채 등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물론 첫 피드의 만화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지금 작가가 그리는 창작물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뛰어나 보이는 작가도 처음 인스타툰을 올릴 땐 이런 모양이었구나. 정말 점점 발전한 게 보인다. 그림도, 글도 계속하다 보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는데 나는 왜 더 글을 쓰면서 실력을 연마할 생각은 않고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 좋아하는 인스타툰 작가의 첫 피드까지 내려가보자.


스크롤을 죽죽 내리면 그 작가가 쌓아온 여정이 보일 것이다.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그림체에 '계속하면 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보다는, 차이가 확연하게 보이는 만화나 인스타툰의 첫 화를 보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그렇게 스크롤을 죽죽죽 내린다.


성실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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