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갈라포라스김의 전시
나의 부전공은 예술학이다. 예술학이라는 학문이 생소한 이름이긴 한데, 미술사나 박물관학, 미학 등 미술 이론을 공부하는 학과라고 보면 된다.
대학교 때 철학 텍스트를 읽는 걸 좋아했다. 사실 책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읽다 읽다 보면 결국 철학책을 읽게 되는 것 같긴 하다.
대학 때 미학 수업을 하는 선생님 강의가 재미있다는 평을 들은 후 교양 수업으로 듣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타 학과의 수업을 듣다 보니 조금만 더 들으면 부전공 교과 이수를 할 정도의 학점이 쌓여서 부전공을 하게 된 케이스다.
미학공부가 사실 텍스트 위주이고 미술과 관련된 학문이긴 하지만 오히려 철학에 관련된 학문처럼 느껴지긴 했다. 미술사나 현대 미술 전시를 자주 봐야 하는 학문이긴 했지만 난 텍스트에 몰입했었다. 그래서인지 미술사에 젬병이긴 하다. 다만 현대 미술 전시에는 관심이 조금 있었는데 그 이유가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이 글을 잘 써서이다.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어쩌면 회화나 조소처럼 기술을 자랑하기보다 재미있는 기획과 자신의 기획을 설득할 수 있는 신선한 발상과 텍스트가 있어야 먹히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텍스트로 기획을 표현하는 것', '텍스트로 사람을 설득하는 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미술 중에선 현대미술에 좀 더 관심을 두게 된 것 같다.
현대미술 전시를 자주 보긴 하지만, 동시에 현대 미술에 회의적인 마음도 있다.
현대 미술 중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던지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건드리는 사회 이슈들 대부분이 소수자성에 관한 것들이나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 된다.
사실 이런 윤리적 이야기는 언론, 책에서도 이미 자주 접하기에 미술 작품으로서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힘들었다. 특히 나는 기자 일을 하면서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매일 접하다 보니 미술 작품에서도 비슷한 것을 건드리는 작품을 보면 '남들은 글로 하는 이야기를 미술로 표현했구나' 정도의 감명만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윤리적으로 올바를 수는 있겠지만,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긴 어려웠다는 말이다.
많은 작품들이 이미 '사회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문제들을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는 느낌만 받았다.
무언가 조금 더 인상 깊은 전시들은, 내가 지금까지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문제로 짚어주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모르는 새로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줄 때, 그 전시가 인상 깊었던 것이다. 물론 그 문제가 좀 사소하고, 어쩌면 한가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는 있겠다.
이번 주말에 별생각 없이 현대미술관에 갔는데, 마침 '올해의 작가상'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를 보려고 간 것은 아니었고 나와 남편은 연애 때부터 현대미술관에 곧잘 가곤 했다. 아기가 생기고 나서도 수유실이 있는 쾌적한 공간으로서 현대미술관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으면 전시를 봤는데 이번 전시는 꽤 오랫동안 현대미술전에 관심이 없었던 찰나, 오랜만에 감명을 받았다.
특히 올해의 작가상 작가 중 '갈라포라스 김'의 전시가 재미있었다.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느껴지긴 하지만, 갈라포라스 김은 과거의 문명에 관심이 많은 작가다. 고대의 유적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전시되는 상황에서, 그 보관 상황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도 하고, 보관된 유물과 관련해 실제로 박물관에 연락을 해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 전시를 보면서 그가 미술 작가이면서 액티비스트, 글쓰기 작가이기도 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 갈라포라스 김은 LA와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로 언어학과 역사학, 유물 보존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는 고대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에 편지를 보내 유물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을 모아 빗물을 만나게 하고, 물에 잠겨 있던 유물들에 대해 어떻게 하면 더 잘 보관될 수 있는지 제안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어떤 편지를 보내 액티비스트처럼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내가 대학생 때.. (2000년대 초반) 좀 유행하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요즘 트렌드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식의 작업방식이긴 하다.
사실 나 같은 텍스트 중독자들은 미술 전시에서도 얼마 없는 텍스트들을 꼼꼼히 읽을 것이다. 이 전시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점은 그가 작업을 하면서 박물관 측에 보냈던 편지들도 모두 공개되어 있다는 것이다.
편지는 우리말과 영어 모두 전시되어 있었다. 지독한 실용주의자인 나는 이 전시를 보면서 '어머 이 영어 편지 나중에 인터뷰 같은 거 할 때 보면 너무 유용하겠다. 완전 실용 영어다'이러면서 봤다.. 여하튼 하나하나 편지를 읽어보는 재미도 있다.
또 굉장히 흥미로웠던 것이 오래된 유물을 보관하는 박물관 내 곰팡이를 전시한 작업이었다. 곰팡이 자체가 유물과 함께 뒤섞여있고, 그것이 소장품의 보관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곰팡이 자체가 작품이 되어버렸다는 관점이다.
사실 이런 관점은 현대미술에 대해 조금만 공부해도 획득할 수 있는 관점이긴 하다. 가장 큰 예로 미술관 흰 벽 자체가 굉장히 인위적인, 작품의 일부가 되어버린 모습을 지적한 작가들이 있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는 작품 외적인 것들을 작품으로 보게 하는 관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곰팡이를 그 안에 들여놓은 것은 신선했다.
아마 작가가 문제를 제기하는 보존에 대한 관점에서 곰팡이까지 작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기에, 뜬금없지 않아서 긍정적으로 느낀 것 같다.
또 다른 인상깊었던 한 작품은 이집트 시기 한 형제의 우애를 찬송하는 찬가에 대한 작품이었다. 이집트 학자가 관련한 찬가를 만든 것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전시 작품 앞에 서면 그 찬가가 들려오는데, 천장을 바라보니 이렇게 스피커가 달려있었다. 약간 불교의 불경 외우는 소리같기도 한 음악이었는데 이렇게 전시와 함께 음악도 들려주어서 재미있었다.
그의 작품은 매우 어렵거나 철학적인 용어를 남발하지 않아도 자신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잘 설명했고, 그 문제의식을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행동 차원의 노력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 작품들 하나하나가 정말 나의 취향저격이었으며 신선한 발상과 함께 역사학자이자 고대학자이자 글쓰기 작가이자 미술작가이자 액티비스트와 같은 그의 세계에 완전 경탄을 하고 나왔던 전시이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본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