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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9. 2023

실력은 싸가지와 반비례한다?

성격 안 좋은데 일잘 vs 성격 좋은데 일못

이번 주말에 사랑니를 뺐다. 임신 전에도 사랑니를 뺐었는데, 그때는 아주 난이도가 낮은 사랑니 빼기여서 아무 치과나 가도 뺄 수 있었고, 평소 스케일링을 하던 치과에서 5분도 안되어 뺐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의 아래 사랑니는 누워있는 사랑니에 매복 사랑니여서 해당 치과에서 뺄 수 없고, 대학병원에 가서 빼라고 했다. 그래서 또 한 번 미뤘는데, 사실 이 누운 매복 사랑니 빼기를 미룬 것은 거의 10년이 됐을 정도다.


지난주에는 이 매복 사랑니 주변까지 아파와서 치과를 가려했는데 평소에 가려던 치과가 휴무일이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치과에서 검진만 받으려 했다. 그런데 가보니 이 치과는 임플란트 전문 치과로, 꽤 복잡한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치과였다. 그래서 나의 사랑니를 보더니 바로 발치 예약을 잡자고 나서는 것이었다.


내 마음은 두 가지였다. '아니 다들 대학병원에서 빼라고 하는데 이곳 원장님은 자신감이 있으신가?'라는 마음이 첫 번째였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 사랑니를 빼려고 하는 건가? 매복 사랑니를 잘못 빼면 신경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데 내가 돌팔이를 만난 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그러나 대학병원에 가서 예약을 하고 사랑니를 뺄 정도의 귀찮음을 감수할 자신은 없었기에 '빼준다고 하니깐 뺄 수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예약을 잡았다.





예약 당일이 됐다. 마취를 하고 15분을 기다리는 동안 벼러별 생각을 다했다. 시간을 또 흘러 치과 환자 의자에 앉았다. 마취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고, 눈이 가려졌다. 눈은 가려졌지만 '위잉'하는 소리와 나의 이빨들이 갈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소름 끼치고 지금 내 의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끔찍해서 '으으'하는 소리를 계속 낼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으으하고 소리를 내지 말고, 아프면 왼손을 드세요.'라고 말했다. '아프진 않을 거고 긁혀나가는 느낌이나 조금 시릴 순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아픈 느낌보다 시린 느낌이 계속 들어 고통스러웠는데 시린 것은 아픈 것으로 분류되지 않다니 이상했다. "시려요. 시려요"라고 반복해서 말해도 똑같은 행위는 계속 진행되어서 왼손도 들고 '으으'하는 소리를 계속 냈다.


의사 선생님은 '으으 소리를 내지 마세요. 손을 드세요. 으으 하는 소리를 내면 시술 못합니다'라고 반복했다. 나는 '도대체 왜 으으 소리를 내면 안 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조금 있다가 '고생을 안 해보셨네. 이 정도면 정말 수월하게 뽑은 건데'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때까지 교정을 했어서 치과에서 하는 고생이라면 거의 모든 고생을 해본 사람이었다. 신경치료도 했었는데.. 게다가 6개월 전 13시간 진통의 자연분만을 했는데. '뭔 고생을 안 해봐요? 전 4년 동안 교정도 하고 얼마 전에 자연분만도 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였기에 속으로만 생각했다.  


매복 사랑니는 15분 만에 빠졌다. 시술이 끝나고 뽑힌 사랑니를 보니 3조각이 나있었다. 생각보다 조각조각 나지는 않은 모습이어서 '꽤 수월하게 빠졌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쌩하니 가버렸고 간호사는 '정말 운이 좋으신 거예요. 보통 임플란트 위주로 하시지 사랑니는 안 뽑으시거든요.'라고 말했다. 나는 '네. 빨리 뽑혀서 좋네요. 다음번에도 여기서 뽑아야겠어요'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아, 으으 소리를 너무 내셔서 안 뽑으신다 하던데, 하하. 여긴 임플란트 전문이에요'라고 말했다. '고생 안 해보셨네'라는 말보다 한술 더 거든 셈이었다.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무서워서 소리를 내는 것이 이렇게 잘못이었던 걸까. 내가 공짜로 사랑니를 뺀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검진을 받고 나서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해서 예약을 했고 4만 원을 내고 시술을 받은 건데 고생도 안 해봤다는 소리와 운이 좋았다는 소리도 들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10년 동안 고민해 온 일을 해결해 줬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이빨을 빼고 나서도 계속 '고생을 안 해보셨네' '다음엔 안 뽑으신대요'라는 말들이 귀에 맴돌았다. 내가 '으으' 소리를 낸 것이 너무 잘못한 일이어서 왠지 다음번에 좋은 기회를 놓친 생각마저 들게 했다.




친구에게 이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더니 '보통 실력은 싸가지와 반비례하지'라고 말했다. 하나가 증가하면 다른 하나는 감소하는 관계. 실력이 증가하면 싸가지는 보통 감소한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일을 하면서 실력이 좋았던 사람들의 성품을 떠올렸을 때도 저 말은 대체로 맞았다. 반대로 성품이 좋았지만 일처리가 정말 답답하고 이상한 소리를 해대서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경험을 하기에 종종 밸런스 게임에도 '성격이 안 좋은데 일잘' vs '성격 좋은데 일못'이라는 선택지가 나오는 것일 테다.


@gettyimagesbank


도대체 왜 다들 이 진리를 따르고 있는 걸까? 자신이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성품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어차피 나랑 다시 일하고 싶겠지'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배려나 서비스는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그 치과의 대기실을 떠올렸다. 내가 처음 그 치과에 검진을 갔을 때 사랑니를 빼주겠다고 해도 '뭔가 잘못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가 대기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랑니를 빼보니 이곳은 확실히 실력이 있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적었다. 물론 예약 위주의 치과이기 때문에 사람이 적었을 수도 있지만, 두 번 방문했던 때 모두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을 보면 완전히 좋은 소문이 난 치과는 아닐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무언가 찝찝함을 느낀 나 같은 환자들이 몇몇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일 잘하고 싸가지가 없는 것'이 '일 못하고 착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 못하고 착한 사람'이 되느니 '일 잘하고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보기가 '밸런스 게임'에 나온다는 뜻은, 두 가지 보기가 대등하다는 뜻이다.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결국 우월한 상태는 '일을 잘하고 배려심 있는 것'일 테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나 역시 종종 '차라리 일 잘하고 싸가지 없는 게 낫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에 정리해 봤다.


이 생각은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는 극단적인 게임의 설정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괜히 선택지 안에 생각까지 갇혀 버린 것이다. 종종 우리는 현실에도 두가지 선택만이 있다고 착각한다. 현실은 게임과 달리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극단적 선택지 게임에서 벗어나 현실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분명 일도 잘하고 성품도 좋은 캐릭터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 치과를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긴 하겠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더 쉬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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