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10월호 '읽히는 글쓰기' 정지우와 샌드라 거스의 상반된 관점
톱클래스 10월호 '읽히는 글쓰기'를 읽었다. 10월호는 작가 정지우, 교수 이상원,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샌드라 거스, UX라이터 전주경, 이상민책쓰기연구소 이상민 대표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글쓰기 방법을 소개하며 '읽히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잡지를 만들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매거진이다. 이번 호를 읽고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다. 바로 정지우 작가와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는 샌드라 거스의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두 작가가 하는 이야기가 비슷한 듯 매우 상반됐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우선 정지우 작가의 인터뷰부터. 정지우 작가는 최근 가장 주목받고, 가장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나도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글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적이며, 그렇다고 해서 알맹이가 없는 것도 아닌 글이라 좋아한다. 또한 육아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말로 잘 표현해 주는 덕분에 나의 육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더욱 선호하게 됐다. 정지우 작가는 이 인터뷰에서 글쓰기의 비법으로 솔직함을 강조했다.
글을 쓸 때는 솔직하고 정확하게, 디테일을 담아야 합니다.
솔직함이 가장 중요해요.
글쓰기는 재능보다 숙달의 영역입니다.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많이 썼느냐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 소재가 없다기보다 '그걸 써서 뭐 하나?' 같은 질문이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마다 '이 소재는 너무 자잘하지 않나?' '이걸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볼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굉장히 공감 갔던 문장이었다. 왜 사람들이 이 같은 생각을 하며 글쓰기를 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정지우는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이죠. 평가에 대한 두려움. 글은 어려서부터 평가 대상이었어요.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고,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고. 글쓰기는 놀이처럼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구를 만나 수다 떨듯 백지에 옮겨놓을 수 있어야죠. 대화나 글이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사실 이 부분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왜냐면 대화는 휘말 돼 날아가지만 글쓰기는 박제된다. 정치인들이 몇 년 전 썼던 칼럼이 문제가 되거나, 연예인들 중에서도 몇 년 전 아무 생각 없이 쓴 인터넷 글 때문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몇 년 전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올린 SNS게시물 때문에 조리돌림을 당하는 일반인들도 많다.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너무 간단히 치부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인터뷰를 계속 읽어보면 정지우 작가는 이러한 두려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글을 쓰려고 하면 마치 교장 선생님이 쳐다보고 있듯 윤리적인 얘기를 하게 돼요.(...) 솔직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솔직함 주파수를 찾으면 감동을 일으키는 글이 됩니다.
사실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다. '솔직하면서도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이렇게 하려면 다양한 사람이 불편해하는 매우 다양한 양상을 많이 알아둬야 한다.
정지우 작가는 많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20대 동안 책만 읽고 글만 썼다고 밝혀왔는데, 아마 그의 20대 때 읽은 독서와 글쓰기 등이 다양한 불편한 지점을 뛰어넘게 만드는 내공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꾸준히 쓸 수 있는 요령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며칠 전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마음이 들었다가도 글로 안 써두면 내 안에서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매일 한편씩 쓰다 보면 다음날 머릿속이 백지가 돼 새롭게 쓸 수 있는데, 미루면 생각과 글감이 쌓여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걸요. 오히려 안 쓰는 게 힘들어요.
또한 그는 퇴고도 별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일 쓰지만 퇴고를 거의 안 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쓰는 습관이 중요해요. 속발음이라고 하잖아요. 눈이 아니라 속으로 글을 읽으면서 쓰면 퇴고할 필요가 없어요.
재미있는 인터뷰이긴 했는데 사실 정지우 작가의 책 '우린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읽었던 내용과 비슷하긴 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데 이 책에 대한 리뷰도 올려봐야겠다.
이제 샌드라 거스 인터뷰로 넘어가 보자. 정지우 작가는 매우 노출 빈도가 높은 작가이기에 다른 인터뷰도 많이 보았지만 샌드라 거스 인터뷰가 있어서 조금 놀랐다. 샌드라 거스는 '내 글이 작품이 되는 법'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인데 '묘사의 힘', '시점의 힘', '첫 문장의 힘'이라는 번역본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재미있는 것이 정지우 작가의 인터뷰에서는 '많이 쓰고 꾸준히 쓰면' 글쓰기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샌드라 거스의 인터뷰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인용한 구절 바로 앞 질답에서 샌드라 거스는 꽤 단호하게 '많이 쓰는 작가들도 작법을 잘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다', '많이 쓴다고 해서 글이 좋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저 많이 쓰는 것보다 피드백을 받고, 원고를 수정하라고 조언한다.
중요한 건 '성실한 연습과 노력'이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핵심입니다. 무조건 많이 쓸 게 아니라, 자신이 쓰는 글의 강점과 약점을 피드백받고 그 피드백을 활용해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합니다. 작가의 삶이란 마음을 열고 끊임없이 배우는 삶이에요.
좋은 작법서를 가능한 많이 읽고, 작가를 위한 작법 사이트를 찾아보세요. 여기서 배운 것을 기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둘째, 배운 것을 적용해 글을 씁니다. 셋째, 쓴 글을 시험 독자와 편집자에게 피드백받으십시오. 그 피드백을 참고해 원고를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훌륭한 책을 쓰는 진정한 비법은 글을 어떻게 쓰는가에 있지 않아요. 어떻게 고치는 가에 달려있습니다. (...)
좋은 작가란 계속해서 자신의 기술을 갈고닦는 사람입니다.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는 이렇게 말했어요. '프로 작가는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은 아마추어 작가다'.
이 시대 작가는 양면성을 안고 있어요. 온갖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대여서 작가가 되긴 쉽지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퇴고와 노력을 강조하는 샌드라 거스이지만 또 너무 완벽하게 이상적인 조건에서 글을 쓰려고 하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준다.
전업 작가이기 때문에 글을 쓰는 완벽한 시간과 장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으려 주의합니다. 이상적인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다가는 한 줄도 쓰지 못할 테니까요.
마지막 부분 샌드라 거스 책에 실린 '글을 팽팽하게 조여 쓰는 요령'이라는 부분도 도움이 됐다. 불필요한 세부 사항을 추려내고,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정지우는 많이 쓰면 는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쓰라, 퇴고는 안 한다는 식인데 샌드라 거스는 작법서를 쓴 작가라 그런지 작법 공부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고 작법 공부를 하며 쓰는 것과 피드백과 퇴고를 매우 강조하는 작가였다.
두 작가 모두 유명한 작가인데 이렇게 상반된 이야기가 나란히 실리니, 아무래도 글쓰기에 왕도는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