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동안 고민해서 결론 낸, 내가 일을 해야 하는 4가지 이유
6월 25일 자로 복직했다. 작년 3월부터 한 해 휴가 + 출산 휴가 4개월 (법정으로는 3개월인데 우리 회사는 4개월 나온다) + 육아휴직 11개월을 써서 총 16개월, 즉 1년 4개월 정도 쉴 수 있었다. 그동안 아기는 15개월이 되어 어린이집을 다닌 지도 4개월 차가 됐다. 아기는 어린이집에 아주 잘 적응해 주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출산과 육아 휴직 동안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아기를 키워놓은 게 제일 큰 소득이다. 참 값진 시간이었다 생각하는데 그 이유를 적어보겠다.
육아휴직 중 첫 1년은 정말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복직 직전엔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지난 1년 동안 미친 듯이 고민했고 웬만한 고민을 다 끝내놨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면서도 아기 낮잠 시간 틈틈이, 또 11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생긴 시간에 나의 인생 목표나 커리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려고 노력했다. 복직동안 한 생각을 아주 크게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뭘 하는 사람인가?
시간이 나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구나.
아기가 자거나, 등원한 시간(10시~3시 or 4시)에 나는 무얼 했나. 보통 블로그 글을 쓰거나 에세이를 쓰는 등 글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일을 안 해도 어차피 일을 할 때랑 비슷하게 사는구나 나라는 사람은'. 그걸 깨달았다.
2. 어차피 글을 쓸 거면 돈 받고 글 쓰자.
넌 왜 이렇게 돈돈 타령하느냐?라고 하면 할 말이 많다.
내가 9년간 비평 매체에 다니면서 힘들었던 점은 매번 비슷한 비판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비평하고 비판해도 해마다, 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결국 도돌이표로 돌아갔다. 매번 비슷한, 거의 똑같은 기사를 써야 했다.
그렇다면 왜 잘 안 바뀔까? 돈되는 기사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회수가 잘 나오는 기사를 써야 한다. 돈 되는 기사 말고 윤리적인 기사를 쓰자고 해봤자 돈을 벌어야 하는 언론사가 변할 이유가 없다. 가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언론사가 있는데,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 회사가 여유가 있어야 한다. 기자들도 시간이 있어야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다.
사실 한국에 돈이 없어도 좋은 기사를 쓰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곪아있다. 그 매체 기자들 중에 우울증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렵다. 혹은 매우 이상하게 꼬여있는 정의의 사도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우리 모두 우울증 걸리면서까지 윤리적인 기사 쓰자! 돈은 못 벌어도 그러자! 이렇게 말하는 게 미안했고 미안함을 넘어 어쩌면 비평 매체 기자로서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그런 기사를 쓰는 게 참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그래서 내 최대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좋은 콘텐츠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다. 이 질문은 일적인 관점에서의 고민뿐 아니라, 내 개인적 삶에서도 중요한 고민이다. 이를 위해 콘텐츠 산업 취재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러나 취재할 수록 돈은 콘텐츠 말고 다른 일로 따로 벌어야 하는 것 같다..)
외신 중에서도 탐사보도를 잘하거나 퀄리티 높은 기사를 쓰는 곳은 돈 나오는 곳을 잘 만들어놨거나 (뉴욕타임스는 퍼즐이나 게임) 돈이 많고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은 대표(워싱턴 포스트의 제프 베조스 같은 경우인데 최근 WP도 대규모 인력 감축을 했다)가 있어야 한다. 넷플릭스가 짱짱한 콘텐츠를 뽑을 수 있는 이유도 제작비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에서 KBS가 사극이나 다큐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도 전 국민에게 억지로 걷는 수신료 때문이었지 않나. 여하튼 이런 사례는 줄줄이 말할 수 있다.
결론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안정적인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는 말이다.
매체처럼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돈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참 길게도 이야기한다.)
안정적인 체제가 있어야, 불행하지 않게 일하면서 내 나름 좋은 콘텐츠를 만드려고 노력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블로그에 도전하지만 꾸준히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영향력을 미치기도 어렵고 돈도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사이거나 시나리오 등 특정한 형식을 가진 글이 아닌 글은 돈이 잘 안 된다. 에세이나 블로그로 돈을 벌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치킨값 정도나 벌 수 있는 게 현실 아닐까. 그러므로 어차피 쓸 거면 돈 되는 형식의 글을 쓰자는 것이 첫 번째 결론이다.
이런 생각이 나의 큰 전제였고, 더불어 나는 자존감이 참 낮은 사람이라 '돈을 못 버는 나'가 그렇게 좋아지지 않았다.
큰돈은 아니더라도 월세와 각종 생활비, 부모님 용돈, 아기에게 내가 사주고 싶은 것, 내 옷과 잡동사니 정도는 스트레스 안 받고 낼 수 있을 정도로 고정비가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남편이 준 돈'일 때는 자존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고 나와 다른 생각이어도 존중한다.
이 결론으로 가는 과정도 꽤 길었고 독서리뷰 형식이었지만 비슷한 글도 쓴 적은 있다.
https://brunch.co.kr/@after6min/243
3. 일상 글이나 에세이로 돈을 벌려면 기똥차게 잘 쓰던가, 유명인사여야 한다.
나는 아직 기똥차게 잘 쓰는 단계는 아님을 이번 휴직 때 글을 써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기똥차게 잘 쓰는 사람이 아닌 내가 글로 월급 정도를 버는 일은, 운 좋게 잡은 기자일이다.
게다가 이 일은 일을 하면서 글쓰기 실력도 연마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지속해야 한다.
어쩌면 이 부분이 육아휴직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아닐까?
굉장히 많은 기자들은(어쩌면 나만 그랬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기자이고 매일 글을 쓰기 때문에 나름 글을 잘 쓴다고 착각을 한다.
기사라는 형식은 취재가 주이고, 마치 퍼즐처럼 글의 형식이 정해져 있다.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취재를 하고 취재가 완성되면 그 형식에 맞게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매일 글을 빠르게 완성하고 노트북을 두드리다 보면 마치 기자인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인 것처럼 착각을 하기가 매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육아 휴직을 하고 일주일에 2~3편 정도 에세이를 썼다. 잘 나간다는 에세이들을 읽어보고, 기자 시절 별로 읽지 않았던 베스트셀러를 엄청 읽어댔다. 베스트셀러는 그 이유가 있었다. 베스트셀러를 읽고 비판하기는 쉬웠지만 그 정도에 버금가는 문장들을 쓰기는 어려웠다.
나는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춘 에세이를 쓸 줄은 아는 정도였지만 에세이로 먹고 살만큼의 실력은 분명히 아니었다. 에세이 쓰기를 실제로 도전해 보고, 나의 레벨을 어느 정도 인식하니, 일을 그만둘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고, 매일 더 좋은 기사를 쓰면서 글쓰기를 연습해야겠다는 결론이 났다.
운이 좋게도 내가 속한 매체는 스트레이트 기사 외 다양한 형식의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더 다양한 형식의 기사에 도전해 보면서 나의 글쓰기 레벨 자체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 만약 '경제적 자유'를 얻어 전업 주부가 됐다고 치자.
그럼 글을 아예 안 쓸까?
그때도 나는 어차피 에세이류의 글을 쓸 것 같다.
그렇다면 기사를 쓰면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매일 기사도 쓰면서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인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
첫 번째 이야기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모순일 수도 있음을 알지만 풀어보겠다.
나는 돈이 안 되는 글을 계속 쓸 자신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돈이 있을 때 글을 안 써도 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안정적 기반을 위해 일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월급을 위한 글'만 써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경제적 자유를 이뤄서 월급을 벌지 않아도 될 때,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제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한다고 한다.
내가 경제적 자유를 얻었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해 봤다. 육아휴직을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에 한 권 정도 책을 읽고 글 한두 개를 쓰는 삶이지 않을까.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을 두었기에 해외에서 글을 쓰는 삶 정도가 내가 꿈꾸는 경제적 자유 이후의 나의 모습 아닐까. 내가 쓰기 싫은 주제의 글은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기자로서 일할 때와는 다른 점일 테다.
또한 아이가 컸을 때 멋진 엄마로 보이려면 어느 정도의 사회적 위치를 갖추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이것 역시 육아휴직 때 글을 쓰면서 낸 결론이다.
이렇게 휴직 때 하나하나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고민을 차근차근할 수 있어서, 깔끔하게 복직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https://brunch.co.kr/@after6min/237
남은 문제는 노동시간이었다. 딱 10~4시 정도만 일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만약 10시부터 4시까지 일하는 직장이 많아진다면 저출생 문제가 많이 해결되지 않을까.
당장 1년은 법정으로도 2~3시간 단축이 가능하고 그 시간 월급을 정부가 일정 정도는 보전해 주니 가능하겠지만 1년 후가 문제다. 월급이 줄어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싶다. 최근 저출생대책을 보면 단축근무 기간을 늘리는 추세이니 기대를 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여자들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관련한 고민은 이전에 한번 글로도 썼었다.
https://brunch.co.kr/@after6min/144
육아휴직 동안 나의 일과 엄마됨, 복직, 워킹맘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놓으니 오히려 복직 시점에는 잡생각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육아휴직 때 치열하게 고민해 고민을 끝내놓은 만큼, 이제 당분간은 고민하기에 시간을 쓰지 않고 더 좋은 기사를 쓰고, 집중해서 4시 전에 마감 치고, 4시 이후엔 아기와 퀄리티 높게 놀아주면서 살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