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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an 27. 2022

인생 드라마를 싫어하게 되기까지

하 박사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 글은 지난해 9월 출간된  ‘WESEE 콘텐츠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라는 콘텐츠를 다루는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잡지의 주제는 '당신의 인생에도 레퍼런스가 있나요?'였다. 주제를 받고 떠오르는 콘텐츠들이 너무 많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에 대해 썼다.



하 박사님,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을 싫어한다. 대표적 용례로 ‘여당이나 야당이나’, ‘남자(여자)는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주전자 주둥이 하나에도 그 예쁨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렇게 내 삶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대상들이 ‘거기서 거기’ 일리가 없다. 우리 모두 비슷한 모습일 거다. 스팸 덮밥을 배달시켰는데 ‘스팸’이 아니라 ‘런천미트’가 들어있었다는 커뮤니티 글에 분노의 논쟁이 벌어지는 세상이다. 다들 이렇게 디테일하면서 ‘거기서 거기’라니.      


‘거기서 거기’는 대상들이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말이 아니라, 정답을 찾길 포기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스팸과 런천미트의 차이를 가리긴 쉽지만 여당과 야당의 차이, 이 남자(여자)와 저 남자의 차이, 이 직장과 저 직장의 차이, 내 인생이 가야 할 길 등의 답을 알려면 고민을 열심히 해야 한다. 때문에 흔히 답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답이 없다’고 하는 건 아닐까.


적어도 여러 선택지 중 나은 답이 있다고 믿고 싶다. ‘삶에 정답은 없어’라는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믿게 된 것은 미국 의학 드라마 ‘하우스’(House M.D.)의 영향이 크다. 그 외에도 내 생각의 뼈대를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드라마다. 하우스의 대사는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잡지 'WESEE' 2호에 실린 원문 사진.


#1. 체이스 : 틀린 답은 없어요. 왜냐하면, 삶에 정답은 없거든요
하우스 : 틀렸어. 우린 그냥 정답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것뿐이야.

#2. 환자 : 그냥 얘기하고 싶어요.
하우스 :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관해 얘기를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걸.
환자 : 변할 수도 있죠. 시간이 있잖아요. 시간이 모든 걸 바꿔줄 거예요.
하우스 : 사람들이 그렇게 믿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무언가 해야 변화가 생기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모든 걸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 뿐이야.     

#3. 조수 의사 : 애국심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우리가 안전할 수 있도록 우리 민족에 기대잖아요. 사회에 도움이 돼요. 사회 구성원들이 그 사회에 긍정적 감정이 있다면 말이죠.
하우스 : 이란 여자들은? 우간다의 드랙퀸들은? 애국심이란 영토에 대한 충성일 뿐이네. 그 땅이 800개의 문화와 800가지 정권에 의해 800번씩 정복당했는데도 신기한 건 말이지, 매번 자기네가 정의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이 드라마에서 어떤 대사들이 오가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난 이 드라마를 대학교 3학년이었던 2010년부터 보기 시작해서 2012년 종영까지 챙겨봤다. 8시즌에 총 178부작, 한 에피소드가 45분인 걸 감안하면 난 이 드라마에 내 인생 8000분 이상을 투여한 셈이다. 사실 ‘WE SEE’ 2호의 주제를 받아 보고선, ‘하우스 이야기를 드디어 할 수 있구나’ 싶어서 흥분했다. 언제가 한 번은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털고 갈 기회가 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말해서 미안하지만, 지금 와서 하우스를 다시 정주행 하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난 이제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 깊게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나에게 여전히 최고의 드라마인 점과, 하우스의 가르침(?)에 여전히 감사한 것과 별개로.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거칠게 요약해보겠다. 우선 주인공 설정이 ‘우울한 천재’다. 이 설정 때문에 드라마 전반은 우울에 대한 옹호, 비참함에 대한 미화가 짙다. 물론 하우스의 동료 의사들로부터 이러한 우울들을 비판하는 대사와 장면도 많이 나오지만 하우스라는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해서 보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드라마에서 흐르는 노래들도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라든가 데미안 라이스, 엘리엇 스미스 등 우울한 노래들이 태반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우울함을 즐기게 된다.      


하우스는 사고로 인해 한쪽 발을 전다. 그는 통증을 잊기 위해 마약에 의존한다. 동료들은 그에게 수술을 권한다. 그러나 하우스는 자신의 우울함, 비참함 즉 통증이 사라지면 자신의 뛰어남도 사라질 것을 우려한다. 행복한 상태에서는 뛰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복을 두려워한다.    


  

대학 시절, 나는 이 세계관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일부’ 운동권 선배들의 말이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선배가 하우스에 대해 ‘하 박사님’이라고 부르며 찬양했던 게 하우스를 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내가 그 선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는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순전히 내 시각에서의 해석이다. 그 선배와는 솔직히 긴 대화를 나눈적도 별로 없다.) 사회운동을 하는 삶에 대해, 기업에 취업을 하고 나를 위한 일, 돈버는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굳이 운동가로 살면서 돈과는 먼 삶을 살고, 세상의 비참한 면을 직면하면서도 그것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라고. 어쩌면 우울하고 비참해야, 이 사회를 제대로 직면한 삶이라고.        


나는 당시 이런 관점에 동의했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이 드라마를 마치 특정 사상처럼 떠받들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핑계였다.

      

이 드라마에 빠졌던 2010년~2012년 즈음 나는 우울했고 길을 잃었다. 재수가 없더라도 똑똑한 말을 해주는 상대가 필요했다. 그때는 우울함을 멋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나의 현실에서 똑똑한 말을 해주는 사람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거기에 주눅 들었기 때문에 혼자서 똑똑함을 연마할 콘텐츠가 필요했다. 나는 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집과 번역본 등을 내려받고, 드라마 해석을 위해 ‘하우스 갤러리’ 같은 곳을 들락거렸으며 FOX TV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드라마 삽입곡 리스트를 전부 내 아이팟에 때려 넣고 이 드라마의 사상을 주입했다. 드라마 대사를 외우고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런 세계관에 동의하기 힘들어졌다. 결정적으로, 나는 우울함과 비참함이 있어도 그처럼 뛰어난 능력은 없었다. 하우스는 뛰어난 능력을 위해 우울함과 비참함을 수단으로 사용했지만 나 같은 인간은 오히려 내가 펼칠 수 있는 조금의 능력도 우울감 때문에 펼칠 수 없게 됐다.      


지금 나는 내가 저런 ‘우울한 천재’와는 굉장히 큰 간격이 있음을 인정했고, 우울함이 조금이라도 찾아오면 최대한 빨리 떨쳐내려 노력한다. 나는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시시하게 웃고 떠드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뛰어난 삶이 아니라도 내 삶에 충분히 만족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는 매번 변한다.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다.      


이것들을 인정하고 나서야 난 이 드라마에서 겨우 벗어났다. 예전에는 당당하게 ‘하우스’를 추천했고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시니컬함을 즐기길 바랐지만, 이제는 이미 하우스를 본 사람과 하우스에 대한 욕을 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 욕은 애증을 전제로 한 욕이다.

      

하우스가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콘텐츠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아리아나 그란데가 전 남자 친구들에게 그동안 많은 것을 가르쳐줘 고마웠다며, 외쳤던 말을 하 박사님께 남기고 싶다.

“Thank u,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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